눈으로 보면 현대식 집, 살아보면 한옥인 집
-식구들이 ‘우리집’이라는 소속감을 가지게 하는 계단 홀
나의 설계 작업에서 계단은 각층 영역에서 개별 공간의 독립성을 보장하면서도 식구들 간의 소통을 도모할 수 있는 장치이다. 계단은 기능으로 보면 층과 층을 이어주는 수직 통로의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계단이 위치하는 장소에 따라 디자인이 돋보이는 인테리어 요소로도 큰 역할을 하게 된다. 또 주출입구와 하나 되는 홀과 연계되면 상징적인 공간을 연출하는데 크게 제 역할을 한다.
계단은 단독주택에서 아파트와 다른 깊은 공간을 시각적으로 느끼게 하는 장치
아파트는 아무리 큰 면적을 가졌다고 해도 공간감이 없는 평면적인 집일 수밖에 없다. 단독주택은 설계자의 의도에 따라 층고를 조절해서 깊은 공간감을 줄 수 있다. 특히 계단은 단독주택에서 아파트와 다른 깊은 공간을 시각적으로 느끼게 하는 장치가 된다.
계단이 거실에 있으면 눈길이 가는 인테리어 포인트가 되고 별도의 홀을 두게 되면 상징적인 공간으로 둘 수 있다. 계단실과 연계된 홀은 개별 실을 잇는 동선을 모으는 공간이 된다. 또 계단 홀은 사적 공간인 방과 공용 공간인 거실을 정서적으로 묶어 식구들이 우리가 되도록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 된다.
큰 집이라고만 느끼지 않게 하는 이입재의 계단 홀
이입재는 계단 홀을 가운데 두고 공적공간인 거실동과 사적 공간인 침실동으로 채가 나누어진다. 또 침실동은 일층의 주인 영역과 이층의 아이들 영역이 층으로 구분되어 나누어진다. 이 세 영역이 계단 홀이 있음으로 물리적인 공간은 나누어지지만 심리적인 정서는 이어지게 된다.
이입재의 계단 홀은 두 개 층이 하나의 공간으로 열리고 외부공간인 중정과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하나로 시선으로 이어진다. 현관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서면 만나게 되는 홀은 계단의 상징성이 두드러진다. 이층과 이어지는 공간의 깊이를 계단을 통해 느낄 수 있다.
감추어진 공간인 중정은 계단 홀과 유리벽으로 가르고 시선은 하나의 영역으로 확장되어 풍성한 공간감을 연출한다. 이 계단 홀을 통해 외부에서 느끼게 되는 단지 큰 집이라는 이미지에서 경외심마저 들게 한다. 집이 때로는 사람을 일깨울 수도 있는데 이 공간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본다.
이입재는 하늘과의 수직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는 공간이 있다
계단과 이어지는 중앙홀의 천창은 그런 역할을 하는데
신이 사라지는 이 시대에 필요한 건축적 장치이다
고급 아파트 내부인 경우에도 하늘과의 수직 커뮤니케이션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주택인 경우, 그것이 가능하다. 이입재를 예로 들면 중앙홀의 천창은 그런 역할을 한다. 신이 사라지는 이 시대에 필요한 건축적 장치이다. 옛날 대청마루에는 그것을 주관하는 성주신이 있었다. 그런 흔적 때문인지 중앙홀은 왠지 성스러워 보였다. 아마 그 흔적과 상부에 설치된 천창 때문이리라. 둘의 시너지 효과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거실 천정에 있는 LED 광선 별자리인 은하수는 하늘의 의미를 신비하게 만들었다. 현관 전면의 양쪽 수공간들과 뒷마당의 바닥분수도 일조한다. 물, 별, 빛 신(神)이 거주하는 곳. 이곳은 우리의 상상이 존재하는 신비스러운 곳이다.
-고가풍 주택인 이입재에서 아파트의 풍경을 다시 생각하다 – 이동언
크지 않은 집의 깊이를 더하게 하는 심한재의 계단 홀
우리집이라는 말에는 다른 집과 다르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우리집이라는 소속감이 실종되어 버린 게 아닌가 싶다. 아파트면 다 아파트이지 우리집과 옆집이 다를 게 뭐라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단독주택 붐이 일면서 수십 채를 지어 분양하는 광고를 보게 되는데 비슷한 크기의 필지에 꼭 같은 모양의 성냥갑처럼 지었다. 이런 단지형 단독주택이 아파트와 다를 게 무엇일까?
집을 Home과 House로 구분해서 부른다. 제대로 지은 House는 Home이 되도록 도와준다. 아파트나 단지형 성냥갑 단독주택은 그냥 House일 뿐 Home이 되게 도움을 줄 수 없지 않을까? 식구들이 우리집이라는 소속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집이라면 분명 그만한 집의 얼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식구들이 우리집이라는 소속감을 가지고 있다면
분명 그 집에는 그만한 집의 얼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심한재에서는 그 역할을 하는 상징 공간-signature Space가 내장되어 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만나게 되는 계단 홀이다. 디귿자로 감아 돌아 오르는 계단을 품고 있는 깊은 공간이다.
이 계단 홀은 사적 영역인 일층의 부부 공간, 이층의 아이들 공간과 공적 영역인 거실채를 묶어서 나누고 합치는 역할을 한다. 계단 홀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채 나눔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계단 홀에서 소통시키게 된다. 식구들이 우리집이라고 인식하여 소속감을 부여하기 위한 시그니쳐 공간으로 부족함이 없다고 식구들은 물론 손님들도 엄지 척한다.
지산심한-작은 집에도 계단 홀은 상징 공간이 되는데
경남 양산시 하북면에 지어진 서른 평 규모의 작은 주택에도 계단 홀을 두었다. 거실 영역과 침실 영역을 구분하는 계단 홀은 다락층에 둔 손님방으로 이어지도록 깊이를 가지게 했다. 거실 문을 열고 침실과 손님방을 향해 외치면 대답할 수 있도록 계단 홀에 역할을 부여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작은 공간이지만 세 영역을 구분해서 각 공간에 프라이버시가 확보되도록 했다. 그런데 시공 중에 건축주가 다락 공간을 확장해서 상부로 열린 공간을 막아버려 상징성이 훼손되어 버렸다. 공사 중에 협의 없이 발생되는 건축주의 횡포(?)는 설계자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충격을 주게 된다.
지산심한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단독주택이 가져야 하는 기본 얼개를 충실하게 구현한 나의 역작이라고 할 만하도록 설계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7개월의 설계 기간 동안 고심해서 작업된 설계도가 무시되면 그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실망에 빠진다.
이 시대의 집에도 한옥의 전통을 이어가야만
우리 식구가 다 좋아하는 ‘우리집’이 된다
이 계단 홀은 우리 한옥이 가지는 개별 공간의 독립성과 정서적 소통을 이 시대 단독주택에 구현하는 요소가 된다. 우리 한옥은 사랑채, 안채, 행랑채, 사당채 등으로 고유 기능을 가진 영역을 채 나눔으로 독자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었다. 또 방마다 마당으로 출입하게 되어 있어 방을 쓰는 사람의 프라이버시가 잘 지켜지는 한옥이라는 ‘우리집’만의 특성이 살아있다.
한국인이라는 보편성을 가진 유전자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도 면면히 흐르고 있다. 이성적으로는 이 시대 사람이겠지만 정서적으로는 조상들과 소통되고 있다는 얘기이다. 이 시대의 집에도 한옥의 전통을 이어가야만 우리 식구가 다 좋아하는 ‘우리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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