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행복한 삶을 담는 집 이야기

아내 같은 집을 지어야 하는데

무설자 2022. 1. 2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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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대학원 선배가 설계해서 직접 공사를 했다는 주택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왔다. 마침 건축주도 같은 학교 대학원 선배였기에 건축을 하는 사람들끼리 의기투합해서 지은 집에서 어떤 느낌을 받고 왔는지 궁금했다. 그 집을 설계하고 공사를 한 사람은 최근 단독주택 쪽으로 설계와 공사를 함께 하고 있어서 건축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그래 어제 하룻밤 지낸 주택은 어떻더노?”

실내 분위기는 마음에 드는데 외관은 좀 과한 디자인이 된 듯했습니다.”.”

 

딸이 찍어온 사진을 보면서 묻는 나의 말투에 긍정적이지 못한 냄새가 묻어나니 딸의 대답에 시선을 피하듯 슬쩍 흘려버렸다. 실내 공간 분위기는 괜찮은데 외관은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는 딸의 대답은 분명 내가 평소에 내세우는 건축에 대한 정의와 배치된다는 쪽으로 억지 대답을 하는 것이렷다. 처마가 없는 주택, 집의 외피의 관리가 어려운 디자인은 설계자의 사견私見이 지나치게 들어간 것이라는 나의 지론에 맞춘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부녀가 전공이 같아서 직업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보니 대화의 주제는 건축에 관한 쪽이 많은 편이다. 말이 대화지 내 말이 일방통행으로 진행되다 보니 늘 딸이 손해 보는 셈이 될 수밖에 없다. 5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석사학위까지 받았으니 자신의 의견도 분명할 테지만 주로 듣는 입장에 서야 하니 힘이 얼마나 들까?

 

집의 외피를 경사지게 만들면서 지붕재가 아닌 벽재를 쓰면 외장관리가 안 될 텐데 왜 이렇게 지었을까? 창도 벽의 경사를 따라 설치했는데 이러면 하자가 생길 확률이 높은데?”

건축주의 동의하에 지었으니 아마 그런 사항은 감안이 되었을 겁니다. 저도 염려가 되는데 제가 건축주와 친하니 지켜볼 생각입니다.”

 

디자인이 독특한 전원주택, 설계자의 창작 의지도 대단하지만 이 디자인을 받아들인 건축주 부부가 놀랍다. EBS 프로그램으로 방영된 집이다

 

이 집 설계자인 사람의 최근작을 살펴보자니 건축적인 사항보다 디자인 우선의 성향이 강해 보였다. 산에 짓는 주택인데 내부와 외부가 단절이 되어 있어서 도심지에 짓는 집과 다름이 없었다. 제주도에 지어진 집은 처마가 아예 없어서 비가 잦은 장마철에는 창문을 열고 여름을 보내는 건 아예 염두에 두지 않은 듯했다..

 

건축주가 동의를 했다고 해도 디자인에 반해서 그럴지도 모르는데 이런 외관을 제안하면 안 될 것 같은데 그쟈?”

이 경사진 외관 디자인 덕택에 삼각형으로 나온 내부 공간이 아주 독특했습니다. 그러면 외관을 좀 과감하게 끌고 가도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집이 펜션이 아니라 단독주택이라면서 처마가 없는 집에 수직벽도 오염이 되거나 창문에 물이 스며드는 하자가 생기는데 경사벽에다 창호도 벽의 일부로 되어 있는 건 설계자의 직무유기가 아닐까?”

그래도 이 선배의 독특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분들이 많아서 일이 밀려들고 있다는데요.”.”

 

아직 실무경력이 오래지 않은 젊은 건축사의 의욕에 넘치는 과감한 디자인이 일이 넘치도록 이어지게 하는 것 같았다.

 

집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바탕을 간과하고 외관으로 드러나는 디자인이 앞서게 되면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 20여 년 전에 방문했던 홍콩의 경사진 유리 지붕을 가진 중국은행빌딩(Bank of China Tower)이 비만 오면 유리천장에서 빗물이 줄줄 새는 바람에 양동이를 받치고 있다는 기가 막힌 얘기를 건물 관리자에게 들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건축가가 설계를 했고 일본에서 최고라는 시미즈건설에서 지었던 건축물이지만 건물을 관리하는 분들에게는 고통을 주고 있었다.

 

어떤 건축사도 설계 작업을 하면서 독특한 디자인에 대한 유혹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집은 쓰기 위한 기능이나 쾌적한 상태로 내 외부가 잘 유지되어야 함은 외피의 디자인보다 우선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건축적인 바탕이 충분하게 검토되어 반영되지 않고 설계가 이루어지면 어떻게 될까? 시공자가 공사 중에 자칫 방심하게 될 때 집이 완공된 후에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필자가 설계한 전원주택인 심한재, 아내처럼 편안한 집이다. 3년 째 이 집에 살고있는 건축주는 아주 만족스럽다며 차 한 잔하러 오라고 초대말을 잊지 않는다

 

건축 설계는 외관 디자인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력이 더해질수록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설계해서 짓는 집들이 사진을 찍어 내놓을 소위 작품’이 되기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나의 이력을 화려하게 보여줄 '작품'이 많지 않아서 수주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건 잘 알고 있다. 디자인으로는 빛나지만 그로 인해 집을 쓰면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그런 집을 설계할 수는 없지 않은가?

 

특히 주택은 사람으로 치자면 겉치장이 멋진 애인 같은 집이 아니라 속이 꽉 찬 아내 같은 집이라야 할 것이다. 다시 딸에게 물어봐야겠다. 그 선배가 설계한 집은 애인 같은 집이었는지 아내 같은 집이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