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220321
보이차와 소확행
보이차를 처음 접했을 때는 마시는 차마다 바로 이 맛이라며 받아일 수 있었습니다. 쓰다 달다 토 달지 않고 손에 잡히는대로 마시는 그 자체가 좋았습니다. 값을 많이 치르지 않은 차였지만 기다려서 받자마자 마시는 그대로 만족하지 않는 차가 없었지요.
보이차 모임에 동참해서 만나게 된 다우들과 함께 마시는 차는 또 다른 향미를 알게 했습니다. 차 모임에서 나눔 받아온 차들은 내가 구할 수 없는 귀한 차였기에 그 향미에 새로운 느낌을 받았지요. 보이차를 통해 알게 된 차 선배님들이 마시지 않는 차라며 나누어준 차들이 제게는 보물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신세계였던 보이차가 시간이 지나면서 호불호가 가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차는 목에 걸리고 쓴맛이 부담이 가는가 하면 닝닝한 맛이 느껴지면 손이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좋은 차 나쁜 차를 가려야 한다는 생각과 내 입에 맞는 차와 그렇지 않은 차가 구분이 되는 것입니다.
차를 가리게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갈수록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건 즐거운 일이 아니지요. 차도 음식인지라 한번 올라간 입맛은 내릴 수 없어서 많은 종류를 가지고 마시는 보이차 생활에서는 참 두려운 일입니다. 점점 면적이 좁아지는 피라미드의 상부처럼 선택할 수 있는 차가 적어진다는 것이지요.
차를 잘 모를 때 구입해 둔 적지 않은 양의 차가 마시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올라간 입맛을 단속하지 못한 걸 탓하게 됩니다. 우리네 삶도 나이가 들어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그 때가 좋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재물과 권세를 얻고 나면 가장 아쉬운 것이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도 지금 마시고 있는 보이차를 보면서 이 차를 얻기까지 마셔온 차들을 생각해봅니다. 어떤 차를 마셔도 만족했던 지난 시간이 좋았던지 가려서 선택한 지금 마시는 이 시간이 좋은지. 하지만 놓지 않으려 애쓰는 보이차에 대한 기준은 깊이보다 넓이로 마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을 그리워하는 건 분명 가진 것이 적어서 얻어지는 모든 게 만족스러웠을 것입니다. 가지면 가질수록 얻어지는 것에 대한 만족감이 덜해지는 건 삶도 보이차도 마찬가지 입니다. 지금 주어진 것에 만족할 줄 모르면 더 많은 것이 주어지더라도 행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잊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 마시고 있는 보이차가 만족스러우신가요?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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