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이야기

별 맛도 없는 보이차를 왜 마시나요?

무설자 2022. 3. 16.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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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220316

별 맛도 없는 보이차를 왜 마시나요?

 

 

보이차를 마셔보면 별 맛이 없습니다. 단맛은 녹차보다 덜하고 향기는 홍차나 청차보다 못하지요. 단맛이 없지는 않지만 바로 다가오는 맛이 없고 향이 없지는 않으나 딱히 감탄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런데 보이차를 오래 마시다 보면 녹차나 홍차, 청차류에 손이 잘 가지 않습니다. 비 오는 날에는 달콤한 향미가 좋은 홍차, 화창한 날에는 화려한 차향을 즐기려고 청차를 찾지요. 하루 일과를 시작하면서 마시는 차는 녹차지만 다반사로 마시게 되는 차는 역시 보이차랍니다.

 

향도 맛도 뚜렷하게 다가오지 않는 보이차를 왜 하루 종일 마시게 될까요? 이에 대한 답으로 밥이나 국수, 아무것도 넣지 않은 빵이 주식이 되는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밥맛, 국수 맛이나 빵맛이 달거나 향이 진하다면 매일 삼시 세 끼로 먹을 수 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밥에도 입맛을 당기게 하는 맛과 향이 있어서 엄마가 지은 밥을 그리워합니다. 햅쌀로 방금 지은 밥, 가마솥 뚜껑을 열면 김과 함께 올라온 밥 내음만큼 식욕을 자극하는 게 있을까요? 보이차를 마시면 밥맛이 주는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은 충만함이 마음을 편하게 합니다.

 

보이차를 맛으로 녹차와 비교하고, 향으로 홍차나 청차와 우선순위를 가리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건 아마도 집밥과 맛집이나 일류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비교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나 싶습니다. 오늘 저녁밥은 어떤 메뉴일까 궁금해하며 귀가를 서두르는 게 아니라 그냥 정성으로 차린 밥상이면 족한 게 집밥이지요.

 

맵쌀과 찹쌀의 차이, 김치찌개와 된장찌개이거나 구이와 탕이 다른 집밥이라 그 만족함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보이차도 편안한 맛으로 숙차를 마시고 좀 더 깊이를 더해 차향을 즐기려면 생차를 찾아 마십니다. 특별한 날에는 그에 맞는 스페셜 메뉴가 있으니 기분에 따라 분위기에 맞게 선택해 귀한 차도 준비해 둡니다.

 

배 불리 밥을 잘 먹으면 잠깐 만족스럽고 좋은 책을 읽어 얻는 게 있으면 그날은 편안하게 보낼 수 있지요. 밥은 때가 되어야 먹고 책은 마음이 나야 읽지만 차는 물만 끓이면 마실 수 있습니다. 배가 불러도 차가 생각나고 그날 메뉴가 느끼해도 차를 마시고 싶고 마음의 상태에 따라 고르는 차가 달라집니다.

 

보이차는 밥을 잘 먹고 나서 오는 포만감도 들고 좋은 책을 읽고 나서 얻게 되는 충만함도 얻을 수 있지요. 때를 가려 먹는 밥, 마음이 일어 읽게 되는 책과 달리 보이차는 시도 때도 없이 마십니다. 눈을 뜨면 찻물을 끓이고, 일 하면서 계속 마시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게 찻잔을 씻는 일이랍니다.

 

 

맛도 향도 있는 듯 없는 듯한 보이차를 왜 가까이하게 될까요? 그건 마셔봐야 알게 되니 더 말을 이어가는 게 蛇足사족이라 이미 길게 말을 이어온 게 다리를 몇 개나 붙인 셈이네요.

 

이제 글을 끝냈으니 찻물을 끓여야겠습니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