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단독주택 양산 석경헌

단독주택 晳涇帥軒, 집의 얼개 1 - 외부공간 중심으로

무설자 2021. 8. 4.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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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주택 晳涇帥軒, 집의 얼개 1 - 외부공간 중심으로

 

300 평이 넘는 땅을 구했지만 집은 스무 평 남짓으로 소박하게 지어서 살겠다는 게 건축주의 뜻이었다. 우리 조상님들도 너무 큰 집에서 살면 그 기운에 사람이 눌린다고 하셨다. 처칠은 사람이 집을 짓지만 나중에는 그 집이 사람을 바꾸어간다고 했으니 집은 규모나 모양새보다 어떤 삶을 담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은 삼대가 한 집에서 사는 건 거의 불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손주와 조부모가 함께 지내는 모습을 보는 건 예전에는 흔한 일이었다.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대가족 가정이 이제 핵가족을 지나 일인 세대가 급속도로 늘고 있어 가족이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에 이르렀다.

건축주는 ‘우리 부부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집’이라는 명제를 들고 집짓기의 틀을 만들어 왔다고 했다. 부부의 행복, 두 분의 금슬만 잘 지켜나가면 전원주택에서 사는 생활로 바라는 삶을 이루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웃이 가까이에 없는 단독주택살이는 외롭지 않겠는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가지는 최고의 행복은 손주와 함께 지내는 일상이 아닐까 한다. 단독주택을 지어서 살고자 하는 첫 번째 목표는 손주가 자주 올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삼대三代의 가정만 누릴 수 있는 행복, 노년이 되어 바라는 가장 큰 소확행이 아닐까 싶다.

스무 평 남짓의 집에서는 부부만의 행복을 담을 수 있다면 손주와 함께 누리는 즐거움은 어느 정도의 규모가 되어야 할까?

석경수헌 배치뷰, 남향은 열려 있고 삼면은 노송과 대밭으로 둘러싸여 있다. 300 평이 넘는 집터가 건물이 쓰임새에 맞춰 크고 작은 마당으로 나누어졌다.


도로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첫 영역-대문과 주차장

주차장과 대문의 위치를 정하는 과정이 의외로 난관에 부딪혔다. 설계자의 제안은 진입도로에서 가장 가까운 대지의 동측에 대문과 주차장을 두는 안이었다. 일 미터 높이를 계단으로 올라 조경으로 잘 가꾼 과정적 공간을 제안하였다.

이 제안에 대해 건축주는 과정적 공간을 줄여서 텃밭으로 쓰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건축주는 대지의 서쪽에 대문과 주차장을 두자는 안인데 과정적 공간 없이 일 미터 높이의 계단을 올라 바로 4 미터 높이의 계단으로 바깥마당에 다다르게 된다. 설계자는 조경 처리된 진입공간을 지나는 연출을 제안했지만 실리적인 선택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도로에서 건물까지는 5 미터의 높이차가 있어서 계단과 계단으로 이어지는 부담이 있다. 그래서 일 미터 높이를 가볍게 올라 만나게 되는 과정적 공간은 晳涇帥軒이 가지는 특별한 장소가 될 수 있는데 아쉬움을 가지고 접을 수밖에 없었다. 텃밭도 이 집에서 중요한 영역이기 때문에...

도로에서 올려다 본 뷰, 주차장과 대문에서 살짝 올라가면 바깥마당으로 진입하는 계단을 만난다


계단을 오르면 다다르는 바깥 마당-현관과 객실

건물이 앉히는 단은 평지를 180 평정도 쓸 수 있다. 여기에 건물을 앉혀 세 영역의 외부공간을 설정한다. 晳涇帥軒에 들어서 만나는 첫 마당은 바깥마당이라 이르는데 이 영역은 집 밖과는 닫히는 정적 공간이 된다.

晳涇帥軒에 들었으니 바깥세상을 잊어도 좋다는 설정이 되겠다. 마당의 북쪽은 객실, 동쪽으로는 거실과 면해있고, 서쪽에는 대숲과 마주하며 남쪽은 담을 둘러 밖으로 향하는 시선을 막았다. 이곳이 晳涇帥軒이로구나.

이 마당은 집에 들면서 처음 만나는 영역이면서 객실과 이어지는 외부공간이다. 손님이 하룻밤을 묵으며 방문을 열고 툇마루를 통해 이 마당으로 나올 수 있다. 대숲에 바람이 지나는 소리, 노송 가지에서 밤을 지새우는 새가 푸덕이는 소리만 정적을 깨뜨리는 공간이다.

바깥마당과 객실이 하나의 영역, 옛집으로 치면 사랑마당이 되겠다. 석경수헌만의 분위기에 잠길 수 있는 공간이다


노송이 가지를 드리우고 앞산으로 열린 안마당 - 거실과 안채

거실은 동쪽으로, 안채는 남쪽으로 안마당과 만난다. 거실에는 테라스가 기역자로 안마당과 전망데크에 접해 둘러져 있다. 동쪽으로는 수령이 백년은 넘음직한 그림 같은 노송이 가지를 드리우고 있고 남향으로는 가릴 것 없이 열려 있고 멀리 앞산이 보인다.

안마당은 먼 풍광과는 열려 있지만 밖에서는 들여다볼 수 없다. 아침 맑은 햇살이 들어 어둠을 몰아내면 남향의 양명한 해가 마당에 그득하게 담긴다. 열려있지만 흩어지지 않는 집의 기운이 온전하게 마당을 채워 건강한 공간이 될 터이다.

안채는 남향으로 마당에 면하고 안방에서는 동쪽으로 난 창으로 노송이 보이고 남쪽 창은 햇살을 들인다. 한실은 마루를 거쳐 안마당으로 열리는데 장지문으로 드는 옅은 빛이 방을 채운다. 마당과 열린 듯 닫힌 안채는 늘 편안하여 고요한 분위기로 편안하다.

거실의 남쪽에 전망데크를 두었다. 지붕 없는 정자라 밖으로 열리는 시선을 앉아서 즐기는 자리이다. 남향으로 툭 트인 晳涇帥軒의 정취를 온전하게 누리는 곳이다.

 

거실과 안채와 하나되는 안마당, 사진의 오른쪽에 그림같은 노송이 가지를 드리우고 있다. 거실 앞의 지붕없는 정자도 주목해 주시길 


집에서 할 수 있는 그 무엇이라도 담아내는 뒤뜰 – 주방과 한실, 아궁이와 장독대

집의 북쪽 대밭에 면하여 널찍하게 뒤뜰을 두었다. 바깥마당과 안마당이 비워져 있다면 뒤뜰은 가득 차있는 공간이다. 주방에서 하는 일은 도와주는 넉넉한 공간에 담아낼 것이 얼마나 많은가? 굽고 끓이는 음식이 여기서 만들어지고 장독대에는 간장 된장 등 발효식품이 맛있게 익어간다.

한실에 불 때는 아궁이와 장작이 가득 쌓아져 있고 대밭에서 추려낸 대나무로 만들어내는 재미도 뒤뜰에서 즐기는 하루 일과가 된다. 집만 덜렁, 넓은 잔디밭만 있다면 온종일 무엇을 하며 하루해를 보낼까? 뒤뜰은 집에서 하루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는 일없는 일이 바쁘게 한다.

비워져 있어 햇살과 바람, 풍경이 담기는 안마당과 바깥마당은 정적 공간이다. 뒤뜰은 채워져서 비워내는 일로 늘 움직이게 하는 동적 공간이 된다. 밝고 고요한 외부공간이 남쪽에 있다면 그늘 아래 활기가 넘치는 외부공간이 북쪽에 있다.

 



晳涇帥軒은

닫혔다가 열리고, 밝은 공간에서 어두운 공간으로 양과 음이 조화로운 집이다.
아늑하지만 활기가 넘치고, 고요하나 생동감이 솟아나는 기가 흐르는 집이다.
낮에는 움직임이 멈추지 않으나 밤에는 그대로 쉬어지는 우리집이다.

 

 

무 설 자   

 

무설자(김정관)는 건축사로서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들어서 팔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을 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로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 글에서 궁금한 점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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