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택 晳涇帥軒, 집의 얼개 2 – 손님과 주인이 다 '우리집'
단독주택을 지으려고 마음을 먹으면 집의 규모를 얼마나 잡아야 하는지 가장 궁금하지 않을까 싶다. 서른 평? 마흔 평? 단층으로 지을까? 이층으로 지을까? 판단을 내리는 게 쉽지 않다. 집터를 구하는 데도 집의 규모를 정해야만 대지면적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집을 쓰는 사람은 부부로 한정되는 추세이다. 삼대三代가 한집에서 사는 대가족제도는 옛 이야기가 되었다. 더구나 단독주택을 지으려는 연령대를 보면 은퇴 후가 많으므로 아이들은 출가를 했거나 부모로부터 독립한 뒤이기 때문이다.
부부만 살게 되는 단독주택은 그 규모를 크게 잡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석경수헌의 건축주도 처음에는 스물다섯 평 내외로 이야기를 시작했었다. 설계 과정에서 그 면적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되어 서른 평이 넘어야겠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부부 두 사람이 살 집인데 스물다섯 평으로는 왜 부족하다고 여기게 되었을까?
‘우리집’에서 ‘우리’는 부부만이 아니라서
가정은 사회의 기초 공동체이다. 가정의 구성원을 식구라 하고 집은 식구들을 담는 그릇이다. 단독주택을 지어 일상으로 쓰는 사람은 부부가 되겠지만 출가한 자식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오면 삼대가 한 집을 쓰게 된다.
만약에 부부만 쓰도록 집의 규모를 잡고 얼개를 짜서 지었다고 하면 손주들이 오게 되면 부하가 걸리게 된다. 그래서 아파트 생활을 하는 우리 시대의 유행어로 ‘손주가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우스갯소리가 생겨났다. 손주가 편히 하룻밤을 지내고 가지 못하는 집이니 식구들을 담아낼 수 없으니 어떻게 가정이 유지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가 자랑하던 삼대가족공동체를 깨뜨려 버린 원흉이 아파트라고 생각한다. 손주와 함께 하룻밤을 편히 지낼 수 없는 집으로 단독주택으로 짓는다면 ‘우리집’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 식구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짓는 단독주택이라면 삼대가 편히 지낼 수 있는 ‘우리집’이 되어야 마땅하다 할 것이다.
부부만 살면 외로움은 어찌할꼬
여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 단독주택을 짓는다. 그런데 그 집이 부부만 살기 편하게 되어 있다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둘만의 시간에는 외로움이 밀려들게 될 터이다.
은퇴 후에 부부가 생활하는 집은 아마도 고요한 호수같이 정적인 분위기일 것이다. 그 고요한 수면을 일렁이게 하는 바람, 고인 물을 바꿔주는 비가 호수를 청정하게 한다. 집에 불어드는 바람과 물이 바로 손님이다.
손님은 부부만 사는 집의 단조로운 일상의 변화를 주는 이벤트가 된다. 그 손님 중에 가장 귀한 사람은 아마도 손주가 아닐까 싶다. 아기 때부터 자주 보면서 손주의 성장기를 지켜보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얼마나 복 받은 여생일까?
그 손주의 방이 바로 행복이 담기는 자리가 아닐까 싶다. 그 손주가 할아버지 할머니 곁에 있으려면 며느리와 사위가 기꺼이 올 수 있어야 한다. 새 식구가 ‘우리집’이라며 편히 머물 수 있도록 집의 얼개를 짜는 건 손주를 품에 안을 수 있다는 비방이다.
같은 위상으로 있어야 하는 내실과 객실
아파트 평면의 가장 큰 문제는 부부 위주의 집이라는 점이다. 안방은 전용 욕실과 파우더룸에 드레스룸까지 부속실로 두고 향向도 남향으로 배치한다. 나머지 방들은 현관 입구에 세 평 전도의 크기로 가구를 놓고 나면 움직이기도 비좁은 상태이다. 이러니 아이들이 대학만 들어가면 분가를 하려고 한다.
석경수헌은 부부가 쓰는 내실과 손님이 묵어갈 객실의 위상을 동등하게 두도록 얼개를 잡았다. 내실과 객실이 남향에 면하여 배치되었고 내실은 안마당과 동향의 송림, 뒤뜰과 하나의 영역으로 삼았다. 객실은 바깥마당과 서향의 대숲에 면해 하룻밤을 묵어도 기억에 남을 장소가 된다.
내실은 침실은 남향 창으로 햇살이 잘 들고, 동쪽 창으로는 노송의 정취가 어우러진다. 한실은 전통 구들을 들이고 북쪽 뒤뜰로 툇마루를 통해 드나들고 복도에 면한 문을 떼어내면 깊은 공간으로 쓸 수 있다. 욕실은 욕조에 몸을 담그고 밖을 내다보며 휴식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이 된다.
객실은 네 명이 방을 쓸 수 있게 하나의 방으로 두었다. 욕실 공간은 변기와 샤워실, 세면대를 각각 구획해서 네 명이 함께 써도 불편함이 없게 했다. 석경수헌에서 묵는 하룻밤이 잠이 쉬 들지 않으면 서쪽으로 난 문을 열고 툇마루를 통해 바깥마당에 나서도 좋다.
설계 작업을 시작하면서 건축주가 제시했던 스물다섯 평 정도의 규모가 서른 평이 되었다. 거실 영역을 중심으로 우측에 내실 영역이 안마당, 뒷마당과 하나가 되었고, 좌측에는 객실 영역이 바깥마당과 대숲이 어우러진다. 손주를 데리고 며느리가 와도 편하게 쉬어갈 수 있고, 사위가 내집처럼 여길 수 있으니 부부의 여생이 얼마나 행복할까?
스물다섯 평에서 다섯 평을 더해서 얻어지는 행복, 서른 평보다 더 큰 집에서도 얻을 수 없다. 객실은 사돈이 와서 하룻밤을 유해도 좋고, 친구가 찾아들어 밤새워 얘기꽃을 피워도 좋다. 석경수헌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집터에 더 바랄 게 없는 행복을 담는 집으로 지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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