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시음기

2020대평보이 자율 시음기-귀한 차는 얻어마시고 가지고 있는 차를 즐겨 마신다

무설자 2021. 2. 15. 10:28
728x90

무설자의 에세이 차 시음기 200215

2020대평보이 자율自律 시음기

-귀한 차는 얻어마시고 가지고 있는 차를 즐겨 마신다

 

 

설연휴라고 하지만 코로나방역시책에 따라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집콕으로 집에 갇혀 있었다.

연휴 마지막 날 아내의 무료함을 달래주러 기장 바다를 보러 길을 나섰다.

딸과 사위의 건축사자격시험을 기원하는 의미로 연초기도를 절에 올리고 오랑대 산책도 하다보니 답답했던 마음도 풀어지는 듯 했다.

 

바다를 보면 용왕님께, 산에 들면 산신께, 절이 보이면 불보살님께 의지하고픈 게 약한 사람의 마음인가 보다.

덕을 쌓아야 복전福田에 씨를 뿌리는 게 되고 선한 일을 하면서 선과善果를 수확할 수 있도록 갈고 닦아야 한다.

善因善果 惡因惡果는 거부할 수 없는 원인과 결과이니 지켜보건데 착한 일만 하고 살아온 아내는 필시 복을 받아 마땅하다.

 

쾌청한 하늘 아래 보이는 바다가 더 좋다고 하지만 구름에 덮힌 바다도 그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내가 바라는대로 살아진다면 아마도 기고만장해져서 틀림없이 주변을 살피는 삶을 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맞닥뜨린 힘든 일만큼은 아니었으면 좋았겠지만 시련이 우리를 반듯하게 살도록 해 준 것임은 틀림없다고 생각해본다.

 

보이차를 마시는 사람으로서 귀한 차를 만나는 것도 복전을 잘 일군 결과라 해도 되리라.

여유롭게 값을 지불하면서 입맛에 맞는 차를 아무 때나 구할 수 있다면 좋은 차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을까?

귀한 차가 인연이 되어 한두 번 마실 양으로 맛보게 되니 차의 향미를 온전하게 음미하게 된다.

   

대평보이 자율, 

이 차는 대평님도 이런 차가 있다는 정도로 맛보기로 마셔보면 될 것이라 했으니 자못 기대가 된다.

지난해는 코로나 여파로 산지 모차값이 괜찮아서 차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하니 시음차로 마시고 잊어야 하겠다.

귀한 차는 얻어서 마시고 가지고 있는 차를 즐길 수 있어야 차 생활이 넉넉하다는 말이 명언이 아닌가?

 

서재이자 차실인 내방은 사진에 담기에는 민망하게 차와 책으로 꽉 차 있다.

정리를 해보려고 하지만 마음 뿐 치울 때 그 순간일 뿐 곧 원래대로 돌아가버린다.

보이차를 마시는 차방 분위기는 이런 게 정상이라며 혼자만의 공간이 있음을 위안하며 지낸다.

 

봉투에 담겨져 온 양은 7g이라 한번에 다 우릴까 하다가 4g을 덜어내었다.

보이차는 건차를 보면 이런 모양에서 어떻게 묘한 향미를 즐길 수 있을까 의아할 따름이다.

햇볕에 말라비틀어진 차엽의 상태가 물을 부으면 원래의 찻잎으로 되살아난다.

 

세차한 첫탕을 버리기가 아까워 잔에 담았다.

두터운 탕감에 달고 쌉스레한 맛이 입에 담기자말자 침이 돈다.

참 맛있다.

 

 

자율은 어느 차산지에서 나온 차일까?

풍부한 첨미甛味가 입안에 그득하게 담기면서 쌉스레한 고미苦味가 뒤따른다.

고진감래가 아니라 甛盡苦來이다.

 

보이차의 두 갈래 대표산지는 포랑산과 서반산(동반산, 방동산)이 아닐까 싶다.

포랑산은 苦茶로 노반장이 上茶이고, 서반산은 甛茶로 빙도가 상차의 자리에 있다.

노반장이 쓰기만 하다면 찾는 이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며 빙도가 달기만 하다면 상종가를 칠 수가 없지 않을까 싶다.

 

포랑산 계열의 차는 쓴맛이 우월하면서 단맛이 뒤따르며 조화를 이루어 패기가 넘친다고 칭송을 받는다.

반면에 서반산 계열의 차는 단맛이 풍부하면서 쓴맛이 감돌며 찾는 이가 많으니 상종가를 구가한다.

쓴맛에 익숙한 이는 포랑산차를 선호하고 단맛을 즐기는 사람은 서반산차에 손을 들 것이다.

 

자율을 마셔보니 아마도 빙도 인근의 차가 아닐까 싶다.

자율을 마시니 빙도를 구태여 찾아 마실 필요가 있을까 할 정도로 그 향미가 내 입에 맞다.

차를 우려 마시자말자 입안에 두터운 단맛이 그득차면서 곧 쌉스레한 맛에 회감이 뒤따른다.

 

단맛이 이렇게 두텁게 느껴지면서 쓴맛이 따르지 않으면 너무 심심해서 차의 격이 떨어진다.

단맛에 더해지는 쓴맛, 그 뒤를 따르는 회감에 의한 단침으로 입안은 고수차 향미를 즐기는 최고의 구감을 음미하게 한다.

자율, 참 맛있는 차다.

 

열두 포를 우린 엽저이다.

스무번, 서른번을 우려도 되겠지만 자율의 오롯한 향미를 음미하기 위해 그만 우리고 만다.

3g 만은 차는 딸사위가 오는 날에 함께 음미하기 위해 남겨두었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