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단독주택 짓고 후회할 열 가지

단독주택 짓고 후회할 열 가지, 일곱 번째, 백년가百年家를 보장하는 처마가 빠져나온 경사지붕

무설자 2020. 5. 4.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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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주택 짓고 후회할 열 가지

일곱 번째, 백년가百年家를 보장하는 처마가 빠져나온 경사지붕

 

 

경주 양동마을 사랑채 처마

 

스무 채가 넘는 단독주택을 설계해 오면서 단 한 채도 경사지붕을 벗겨내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내가 설계한 집의 외관은 지붕 때문에 거의 비슷비슷해서 독창적인 모습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경사지붕만 포기한다면 외관 디자인이 자유를 얻게 되는데 나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단독주택을 작업하면서 일 미터가 빠져나온 처마를 가진 경사지붕을 포기하지 못하는 건 집의 기능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경사 지붕에서 처마는 비를 그어 외관을 온전하게 유지하도록 해주고 차양 역할을 통해 여름 햇볕을 막아준다. 또한 실내에서도 적정한 공간감을 가질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다락의 설치를 통해 수납공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대 이전의 집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지역을 막론하고 거의 다 경사지붕을 가지고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집을 지을 때 그 지역에서 수급할 수 있는 재료를 써서 기후 조건에 맞게 지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비가 많이 내리는 나라에서 지붕은 집을 유지할 수 있는 절대적인 구성요소가 되었다.

 

목조로 지은 봉정사 극락전과 부석사 무량수전은 거의 천년 가까이 원형을 유지하면서 전각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조선시대에 지었던 한옥도 수백 년의 세월을 이겨내면서 당당하게 지금에 이르러고 있는 것도 경사지붕과 처마 덕분인 것이다. 목조로 짓는 집은 특히 습기에 의한 구조체의 손상이 내구성의 유지에 큰 영향을 주기에 경사지붕과 처마는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이라 하겠다.

 

근대와 현대를 구분 지어 집짓기의 선을 그을 수 있게 한 사건은 철근콘크리트구조의 등장이라 하겠다. 철근콘크리트를 재료로 집을 짓게 되면서 경사지붕의 제약에서도 자유로워졌다고 할 수 있다. 기후적 조건에 얽매이지 않는 골조의 등장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동일한 처지에서 집을 지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외관 디자인이 눈에 띄는 집

 

근래에 붐처럼 단독주택이 지어지고 있다. 도심을 조금 벗어난 교외에는 새로 지은 단독주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기존 마을에 새로 지은 집이 한두 채 보이기도 하지만 택지를 조성해서 수십 채가 한꺼번에 지어지기도 한다. 남다르게 지어서 살아보려는 집주인의 바람도 있겠지만 설계자의 작품에 대한 의욕에 의해 독특한 외관 디자인을 가진 집을 쉽게 볼 수 있다. 외부마감도 다양해져서 노출콘크리트로 지붕에서 외벽까지 마감하기도 하고 시멘트벽돌을 외장재로 쓰기도 한다. 처마가 없는 경사진 지붕에 천창을 내기도 하는 등 외관이 눈에 띄는 단독주택은 마을의 볼거리가 되어준다.

 

엄격한 조영지침이 적용되어야만 지을 수 있었던 조상들이 살았던 한옥에 비한다면 집짓기에 있어서 자유를 넘어 방종이나 일탈이라는 표현을 써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집이라 할지라도 한번 지어지면 수십 년을 써야하는 데 과연 조영造營의 기준이 없이 막지어도 되는 것일까? 어떻게 지어도 십년은 무리 없이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십 년, 삼십 년이 지나면 처음 지었던 상태에서 어떻게 될지 충분히 예측이 가능하다.

 

조선시대 한옥은 백년이 지난 집은 쓰는데 큰 무리가 없고 이삼백 년이 되었는데도 후손들이 손을 봐 가며서 살고 있다. 그런데 요즘 지어지고 있는 집은 백년이 아니라 오십 년이 지나면 안전진단을 받아야 한다며 불안해하며 살고 있다. 외관 디자인이 멋진 집이라며 사진으로 볼 수 있는 집들이 오십 년이 지났을 때 어떤 상태가 될지 상상해 보는 것도 내 집을 짓기 전에 꼭 짚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양동마을 관가정 사랑채의 처마

 

  경사지붕은 선택이지만 처마는 필수   

 

평지붕이든 경사지붕이든 일 미터 정도로 처마를 뽑아내는 건 단독주택 짓기에서 포기해서는 안 될 필수요소이다. 집이 처음 지어졌을 때의 상태로 오래 유지되기를 바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비나 대기 중의 먼지로 인해 외벽이 오염되고 창문 주위로 새는 빗물, 옥상방수에 문제가 생겨 누수가 되기 시작하면 안락한 삶은 무너지고 만다.

 

새로 집을 지었을 때는 멋진 외관에 만족했을지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생겨나는 문제점은 집주인이 떠안고 살아야 할 고통이 된다. 집을 짓고 나서 바로 생기는 하자는 시공자가 고쳐주겠지만 더 세월이 지나면 집주인의 몫이 되어 버린다. 집도 오래되면 사소하게 고장이 나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지만 오염이나 누수가 집의 디자인에 따라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요즘 곳곳에서 오래된 평지붕 단독주택에 경사지붕을 덧씌우는 공사를 많이 하고 있다. 단열을 하지 않고 지었던 탓도 있지만 평지붕의 방수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오래 전에 지었던 단독주택은 대부분 처마를 가지고 있어서 외벽에서 생기는 문제는 없다. 처마 없이 짓는 평지붕 집은 남쪽은 뜨거운 햇볕을 가릴 수 없고 북쪽 벽은 습기가 잘 마르지 않아서 이끼가 끼는 등 외장재 오염을 피할 수 없다. 창문 주변으로 새어드는 빗물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발생되는 피하기 어려운 문제가 된다. 여름의 장마철은 집에서 생겨나는 여러 가지 문제가 드러나는 시기가 된다.

 

처마가 없는 경사지붕을 가진 집은 앞에서 얘기한 어려가지 문제에서 피해나가기 어렵게 된다. 경사 지붕에 내리는 빗물이 온전히 벽으로 쏟아져 내리기 때문이다. 폭우가 쏟아지면 엄청난 양의 물이 외벽으로 쏟아져 내릴 텐데 벽면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경사 지붕은 디자인으로 채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나 처마는 무조건 두어야 할 것이다. 집이 지어지기 전에 완성된 도면을 모델링해서 십년이 아니라 오십 년이 지나도 온전하게 쓸 수 있을지 검토해야 한다. 집은 쓰다가 맘에 들지 않으면 버릴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 설계의 부산 이입재의 거실부분 깊은 처마

 

  백년가百年家를 내다보고 지어야 하는 집

 

집을 백년을 내다보고 지어야 한다는 생각은 무리일까? 백년을 보장할 수 없는 집은 십년 뒤에 문제가 없다고 장담할 수 없다. 목조로 지었던 조선시대 한옥이 수백 년을 버텨내고 봉정사 극락전이 지은 지 천년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 시대의 집은 왜 백년도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인가.

 

단독주택을 목조로 짓는 게 대세가 되고 있다. 일층바닥을 제대로 높이지도 않고 처마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집을 목조로 짓는다면 우리 기후에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까? 외관에 치우쳐서 설계해서 공사비는 값싸게 지으려고 하는 건 사상누각沙上樓閣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예쁘면 다 용서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어떻게 지어도 멋진 외관을 자랑할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말과 겹쳐져 다가온다. 외모만 보고 배우자로 선택했다가는 한 평생 후회하게 되는 것처럼 외관만 멋진 집을 지었다가 낭패를 볼 수 있다. 자식에게 물려서 살 수 있는 백년가로 지을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 처마에 있음을 꼭 당부하고 싶다.

 

필자 설계 근작인 양산 심한재, 처마가 나온 경사지붕 덕택으로 외벽이 빗물이 닿지 않아 유지관리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무 설 자

-DAMDI E.MAGAZINE 연재중 (2020,03 )

다음 편은 '손님도 편히 머무를 수 있는 집인가요?'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무설자(김정관)는 건축사로서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들어서 팔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을 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로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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