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에세이 차 시음기 1711
2017 포랑산 고수차, 차랑재 십주년 기념병 시음기
가을이 낙동강 하구 갈밭에도 깊숙히 내려 앉았다.
계절의 변화야말로 편견이나 불평등 없이 온 세상에 골고루 나누어진다.
춘하추동, 사계의 변화가 없다면 우리 일상은 리듬이 없이 얼마나 지루할까?
산에는 단풍이, 강가에는 갈대가 가을이 깊어간다며 겨울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찬바람이 두터운 외투만 필요하게 만들까?
계절의 변화를 차꾼들만 의식하는 게 따로 있는데 그건 일상에서 마시는 차를 바꾼다는 것이다.
하지만 녹차를 즐기는 분이나 청차류를 주로 마시는 분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만약 계절이 바뀌었다고 마시는 차를 바꾸는 사람이라면 그는 보이차 마니아라고 봐도 될 것이다.
"뭐 좋은 차가 없을까?"
차랑재가 오픈한지 벌써 십년이라며 기념병을 내었다고 한다.
십주년 기념병으로 선택한 차라면 고객 서비스라는 의미가 담겼을 것이니 분명 우리에게 득이 될 것이다.
차랑재는 큰 유통회사도 아니고 규모가 있는 다원도 아니다.
그저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 차를 즐기면서 작은 다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포장지도 소박하게 만들었나 보다.
심사숙고해서 고르고 고른 차는 포랑산 차라고 한다.
포랑산 2017년 명전, 건강한 엽저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차는 마셔보고 맛 있어야 답이 나오리라.
차의 병면은 차유가 자르르 하다.
긴압도 찻잎이 올이 하나하나 보이듯이 적당하게 되었다.
병면에 보이차칼을 들이니 올올이 한잎씩 풀어져 나온다.
거실에 임시로 차린 간단한 찻자리, 다리가 회복되면 다시 서재로 들어갈 것이다.
차기정 장인의 옻칠목다해 하나면 어디든 찻자리를 펼칠 수 있으니 좋다.
생차 전용 자사호에 슬슬 풀어낸 찻잎을 넣고 차를 우려낸다.
내가 보이차를 마시는 기준은 숙차와 고수차를 나누어 마시는 것이다.
간혹 노차를 마시기도 하지만 주로 외식하듯이 밖에서 기회를 만나게 된다.
숙차는 몰라서 구입에 실패할 일이 없겠지만 노차나 고수차는 만족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고 보니 노차와 고수차의 공통점이 있다.
첫째, 구입하기까지 망설여야 한다.
둘째, 가격이 싸면 의심해야 한다.
셋째, 구입하고 나면 만족하기 어렵다.
노차는 인연이 닿아야 마실 수 있다고 마음을 먹고 있다.
하지만 고수차는 줄만 잘 서면 순료차를 착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언제 줄이 서게 될지 잘 살펴야 하는데...차랑재 10주년기념병도 이에 해당된다.
이 차는 시상반나차구 노반장산에서 멀지 않는 곳이 산지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패기가 있고 단맛보다 쓴맛이 드러난다.
입안에 차가 담기자말자 단맛과 쓴맛이 같이 느껴지다가 단맛은 감방 빠지고 쓴맛이 깔끔하게 입안을 쓸어낸다.
단맛이 많은 차는 차맛이 입안에 오래 머무르는데 쓴맛이 좋은 차는 차향이 오래 남는다.
차랑재 기념병은 깔끔한 쓴맛과 회감이 일품이지만 독톡한 차향이 차를 특별하게 한다.
다만...고수차의 덕목인 두터운 맛이 덜한 게 아쉽지만 옥의 티라고 할까? ㅎㅎㅎ
순료 고수차가 이 가격에 가능한지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
또 싼맛에 구입을 하려고 한다면 보이차 구입대원칙에 어긋난다.
고수차에서 단맛보다 쓴맛을 즐긴다면 이 차보다 더 괜찮은 차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차랑재 십주년 기념병은 차랑재와 대평님의 자존심으로 뭉친 차라서 향미가 빠질 때까지 마셔본다. ㅎㅎㅎ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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