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행복한 삶을 담는 집 이야기

처마가 없어서 박복한 집?-무설자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집 이야기 5

무설자 2014. 9. 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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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집 이야기 5

처마가 없어서 박복한 집?

 

필자가 설계한 부산 초읍동 이입재의 여름 한낮의 풍경 : 따가운 햇볕을 처마가 막아주니 그늘이 드리워져 내부공간은 시원하다.

 

 

나무로 지은 한옥은 수백 년 세월을 지내면서 지금도 집으로 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니 의아스럽다 못해 신기하기도 합니다. 철근콘크리트로 짓는 요즘 집은 백년은 고사하고 몇 십 년만 지나도 보기에도 흉할 뿐 아니라 안전에 문제가 있다며 골치를 싸맵니다. 구조적인 측면에서 재료로 비교하자면 나무가 철근콘크리트에 비해 형편없이 약한데도 어떻게 해서 그럴까요?

 

부석사 무량수전은 1376년에 지어졌으니 60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 지금도 건재하게 주전각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돌이나 벽돌로 지었다면 모를까 물성이 약한 나무로 지어졌는데도 아름다운 외관으로 집의 기능을 여전하게 다하고 있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가요? 나무로 만든 집은 백년의 수명은 청소년기와 같고 이삼백 살은 되어야 장년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으니 철근콘크리트로 짓는 집에 비하면 아이러니하다고 보여집니다.

 

이렇게 유지되는 비결이 너무나 단순해서 구조재인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에서 비롯된답니다. 나무라는 재료를 가장 위태롭게 하는 건 습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붕을 연장해서 처마를 길게 뽑아내어 비를 맞지 않도록 하고,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막기 위해 기단을 만들어서 나무 기둥이 항상 건조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여기서 처마의 기능은 단지 비만 긋는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랍니다. 여름에는 남향집으로 뜨거운 햇볕이 실내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고 비가 오는 날도 문이나 창문을 열어둘 수 있으니 실내 환경이 쾌적하게 유지될 수 있지요. 처마가 1미터만 빠져 나오면 여름 햇볕은 집 안으로 들지 않지만 겨울햇살은 집 안 깊숙이 들어온다. 처마 아래는 유휴 공간이 아니라 내외부 공간 간의 매개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영역이랍니다.

 

처마가 만들어내는 미덕은 비를 긋거나 햇볕을 막는데서 그치지 않는답니다. 처마 아래에 있는 외벽에 비가 잘 닿지 않음으로서 집의 외관이 훼손되지 않으니 늘 새집처럼 유지될 수 있게 되지요. 비 오는 날 빗소리를 들으며 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에 젖을 수 있는 감성이 일어나는 이 여유는 처마가 있는 집에서만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처마를 두지 않는 요즘 집은 외관 디자인에서 독창성을 보여줄 수는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집을 유지관리하는 데서는 많은 어려움을 줄 뿐 아니라 외관이 쉬 훼손되어 제 수명을 누리지 못해 백년을 버티지 못하고 헐려지고 맙니다. 집 자체가 안고 있는 문제를 차체하고라도 창을 열어서 즐기는 일상의 정서를 생각해보니 이 점에서 더 큰 아쉬움일지도 모릅니다.

 

삼대三代가 적선을 한 공덕으로 남향으로 앉은 집을 지었다고 합시다. 그 집이 처마가 없다고 하면, 한여름 맑은 날에는 햇볕이 들어 힘들고 비 오는 날은 창문을 닫고 지내야 하지요. 조상의 적선공덕積善功德으로 남향으로 열리는 땅을 얻었지만 처마를 두지 않은 집을 짓는다면 주어진 복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이라면 과언일까요?

 

외관 디자인 위주로 그림같이 지은 집을 볼라치면 대부분 처마가 없거나 창문만 가리는 정도로 처마 처리에 인색한 예가 많지요. 우리나라 기후 조건에서 처마는 디자인 때문에 빼먹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꼭 있어야 하는 필수적인 건축 요소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처마는 '우리집'이라는 소프트웨어를 풀어서, '좋은 집'으로서의 지어내는 하드웨어의 필수장치라는 꼭 기억해두어야 합니다. 

 

처마가 시원스럽게 빠져나온 이입재, 처마를 둔 덕택에 백년가로 지어졌다는 확신을 할 수 있을 집이다

 

김 정 관 / 건축사*수필가 도반건축사사무소 대표

 

 

도서출판 담디 E-MAGAGINE  68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