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에세이 집 이야기 150203
열두 평짜리 작은 집에서 읽어낸 행복 이야기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껴 아파트에서 벗어나서 전원에서 살고 싶은 꿈을 꾸는 사람이 많습니다. 닭장이라는 표현을 하면서도 벗어날 대안이 없어 아파트에 살 수밖에 없는 게 이 시대 사람들의 현실입니다. 전원 생활을 그리워 하지만 도시를 벗어 나기가 쉽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이미 익숙해진 삶에 순종하고 말지요.
그렇지만 용기있는 젊은이들은 귀농을 감행하고 직장 생활을 끝낸 중년들은 귀촌을 결심해서 단독주택을 지으려고 합니다. 도시에서 시골로 삶터를 옮겨 살아보면 땅을 밟고 산다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됩니다. 바쁘게 살아온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느리게 살아야 하는 시골 사람으로 변한다는 게 애당초 가당치 않은 일이었는지 모르지요.
시골에서 생업을 가지고 살면 귀농이고 집만 지어서 도시에서 옮겨 살기만 하면 귀촌입니다. 시골 생활에 정착하기 위해 농삿일을 배우는 등의 생업을 가지기 위한 준비를 오래한 '귀농'은 성공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림같은 전원 생활을 동경해서 시골에 집만 지어서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자 하는 귀촌자들은 도시로 다시 돌아오는 분이 많다고 합니다.
'어떤 집에서 사느냐'는 것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결국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누리면 행복할 것이라는 단순한 가정假定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여러가지 현실에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현실 중에 가장 비중이 높은 것은 너무 단순한 생활이 주는 무료함을 이기기 어렵기 때문이랍니다.
어디에서 살던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명제에 대한 답을 찾고나서 생활의 터전을 옮겨야 합니다. 그 답을 찾아 내어야만 '어떤 집'을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있으며 준비된 삶의 방식을 다시 옮긴 터전에서 빨리 적응해서 살 수 있겠지요. 알고 보면 어떻게 사느냐의 일차적인 조건은 아파트에 살면서 누린 편한 생활의 틀에서 벗어나야만 자연과 하나되는 시골에서의 삶에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일 겁니다.
이 '어떻게'라는 명제의 답을 찾아 이렇게 살겠다는 삶의 방향을 설정해서 살아가는 사람의 '어떤'집을 소개합니다.
이 곳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여 있는 경주 시내에서 한참 들어가는 산골입니다. 산은 시간이 천천히 흘러 계절이 바뀌면서 달라지는 풍경으로 세월을 받아들이지요. 하늘의 조화가 주는 맑고 흐리고 비 오는 그날의 날씨는 매일 맞이하는 일상의 기대입니다.
여기서 느린 삶에 익숙해지기까지는 도시의 삶에 비해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내면을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지요. 누군가가 그리워지고 찾아 오는 객이 반가운 이 집에서 만나는 사람은 참 귀한 인연으로 맞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반으로 지내는 두 사람이 이웃해서 사는데 그 인연을 다지는 매개체는 차라고 합니다. 차 한 잔의 자리에는 다정한 다담茶談이 따르기 마련이니 향기로운 인연이 이어지지 않을까요?
안채는 초가로 짓고 너와를 이은 바깥채와 욕실과 창고를 밖에 두어 소박하게 집을 지었습니다. 초가는 해마다 지붕 이엉잇기를 새로 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서 소박하고 깔끔한 집주인의 내면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바깥채의 너와지붕은 초가처럼 수고를 하지 많아도 되는데 초가가 주는 정서를 포기할 수 없었나 봅니다.
안채를 살펴 봅니다. 안채와 바깥채는 각각 여섯 평 정도입니다. 여섯 평이라면 삼십 평형대 아파트의 거실과 주방을 합친 면적보다 적습니다.
오른쪽의 문이 달린 부분은 정지와 다용도 공간이며 왼쪽이 안방입니다. 안방은 세 평이 채 못되는 크기라서 다섯 명이 둘레상을 놓고 밥을 먹으니 꽉 찹니다. 머리를 숙여야만 안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왜 이렇게 문을 낮게 만들어 달았을까요?
좌식 생활을 하는 우리 조상들은 방의 천장높이를 낮게 했습니다. 앉아 있을 때보다 누웠을 때가 더 천장높이가 의식이 되겠지요. 사람의 서 있을 때의 키높이가 아니라 앉거나 누웠을 때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방을 상상해 보면 침대와 의자를 쓰는 아파트의 천장높이와는 차이가 있어야 하겠지요.
천장 높이가 낮은 방으로 들어갈 때 방문의 높이가 낮으면 허리를 숙이게 됩니다. 천장 높이가 낮은 방으로 머리를 숙여서 들어가면 천장이 낮은 방이 금방 적응이 되지만 서서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요? 이제 한옥에서 방문이 낮은 이유를 아시게 되었지요.
이제 바깥채를 살펴 볼까요? 바깥채의 면적도 여섯 평 정도이며 왼쪽이 네 평 정도인데 객실이며 오른쪽은 두 평 가까이 되며 차실입니다. 제가 이 방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세 명이 누워서 편히 잤습니다.
차와 관련된 일을 하는 집주인이 만든 차실과 객실이 이 한 채에 들어 있습니다. 이 산골에 드는 사람이 하룻밤을 묵어가지 않으면 온전히 이 집에 온 객이 아닐 것 같습니다.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차를 마시며 나누는 다담이 차실에 배여서 차맛은 더욱 정겹습니다.
이 초가는 이웃해서 서로 등을 기대고 있는 집입니다. 두 집이 아마 같은 컨셉으로 도반이 의논해서 지었나 봅니다. 이 집의 안채에는 들어가보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묵었던 바깥채의 안으로 들어가보면 이런 분위기입니다. 이 사진은 동 트는 새벽빛이 창호지 문에 비치는 장면입니다. 저 문을 열고 맞는 아침이 궁금하시지요?
이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받은 아침상입니다. 누구나 받고 싶은 정겨운 상 아닐까요?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찌게와 국그릇의 김이 정겨운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등을 맞대고 있는 두 집의 바깥채 모습입니다. 오른쪽 집은 박공의 풍판이 더 옛스럽게 지었습니다. 어젯밤에는 오른쪽 집의 차실에서, 아침에는 왼쪽의 차실에서 차를 마셨더랬습니다.
두 집은 다우로써 이웃이 되었습니다. 두 집을 오가며 차를 마시고 어울려서 살아가는 둘 없는 벗이자 이웃입니다. 산골에서 더욱 느리게 시간을 음미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게 이 분들이 준비한 집짓기 프로그램이었나 봅니다.
두 집 다 두 평 남짓한 벽난로에 불이 피어 오르는 아담한 차실에서 찻물 따르는 소리와 도란도란 나누는 다담이 지금도 들려 오는듯 합니다. 비 오는 밤에 마당에서 듯는 빗소리, 달빛이 밝은 밤 창가에 어슬렁 거리는 바람소리에 문을 열어 보기도 할 겁니다. 불현듯 옆 집에서 차를 마시고 싶어 나섰다가 서로 마주치기도 하지 않았을까 상상도 해보았습니다.
이런 집을 짓고 살면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산골집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읽어낸 이 집의 표정을 제 나름대로 스케치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지 천천히 생각하면서 내가 아내와 어떤 집에서 살아야 하는가를 그려봅니다.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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