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집 이야기 2
얼빠진 집과 얼을 채우는 집
요즘 가문(家門)⦁가풍(家風)⦁가장(家長), 이 말들은 그 의미를 잃어버리지 않나 싶다. 이렇게 되어 버린 건 아마도 가정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탓이라고 본다. 밥상머리 교육이라고 하는 식구들의 일상적인 대화가 어려워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전에는 집안에 대대로 이어 오는 풍습이나 예의범절을 중심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집안에서 배웠다. 집이라는 사회의 기초 구성체가 흔들리면서 가정교육이 없이 이루어지는 학교교육은 뿌리 얕은 나무를 키우는 것과 다름없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학교 교육마저 입시 학원처럼 가르치고 있으니 우리 사회는 도덕이나 예절은 어디에서 배워야 할지 알 수 없다.
가정교육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얼’을 심어주는 바탕이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지식만 주입하는 학교 교육이 얼빠진 사람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얼'을 국어사전에 찾아보니 정신의 줏대라고 되어 있다. 얼빠진 사람이라고 하면 자기의 처지나 생각을 꿋꿋이 지키려는 의지가 없는 맹한 사람을 이른다. 언젠가부터 우리 주변에 있어서는 안 될 사건, 사고들이 계속 늘어나는 건 얼빠진 사람들이 늘고 있는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정교육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얼’을 심어주는 바탕이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지식만 주입하는 학교 교육이 얼빠진 사람을 만들고 있지 않는가?
생뚱맞은 얘기인지 모르지만 가정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원인의 하나로 ‘집’을 지목해본다. 주로 반가(班家)에 해당되는 얘기지만 옛날에는 집을 지을 때 그 가문만의 가풍을 담아서 가장이 기획하여 지었다. 옛집의 설계자는 그 집안의 가장인 셈이다.
결국 옛날에 지은 집은 가장이 가문의 가풍을 담아낸 결정체라고 보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본다면 그 집에서 사는 것만으로 그 집안의 가풍이 담긴 ‘얼’을 체득하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람이 집을 짓지만 나중에는 그 집이 사람을 만든다는 윈스틴 처칠의 말씀을 떠올리게 된다.
이 시대의 주거를 대표하는 아파트는 한마디로 얼빠진 집이라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아파트를 ‘우리집’이라며 애착을 가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파트는 가정이라는 정서를 담기가 어려우니 ‘얼’이라고 부를 그 무엇도 얻어지기가 어렵다. 우리집을 지어서 산다는 의미는 '얼'이 담긴 집에서 살아야겠다는 가족애에 대한 욕구의 반영이라고 본다.
우리집을 지어서 산다는 의미는 '얼'이 담긴 집에서 살아야겠다는 가족애에 대한 욕구의 반영
물론 우리집이라는 의미를 설계자가 다 채워 넣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집을 짓기 위해 설계를 의뢰하기 전에 우리 식구를 위한 얼을 담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사람이 집을 만들지만 그 집이 다시 사람을 만든다고 한 처칠의 말씀을 새겨보며 '얼이 담기는 집이란?' 화두를 풀어내듯 심사숙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가정교육이 옛날처럼 상명하복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요즘은 사람을 통해서 지식을 얻어내는 양보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얻는 게 훨씬 많다. 그러니 지금의 가정교육은 대화를 나누면서 만들어지는 우리 식구라는 정서를 채워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 사람들만 표현하는 '우리'라는 말을 생각해보자. '우리'를 사전에서는 자기와 함께 자기와 관련되는 여러 사람을 다 같이 가리킬 때라고 쓰고 있다. 내 집이나 부부의 집이 아니라 '우리집'이라야만 식구들이 함께 밥을 먹으며 대화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집'의 가풍은 '우리집에 머무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길'이 되었으면
우리집에는 부모와 자식은 물론이고 며느리나 사위도 기꺼이 찾아와 함께 지내야 손주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정을 도탑게 쌓아가게 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친구들도 내 집처럼 편히 오가는 '우리집'의 가풍은 '우리집에 머무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길'이 되면 좋겠다. 삼대三代와 손님까지'우리'가 되어 함께 지내면서 잘 어우러지는 삶이라면 '우리집'에 사는 사람은 '얼'이 충만해지지 않을까 싶다.
김 정 관
건축사 / 수필가
도반건축사사무소 대표
담디 E-MAGAGINE 65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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