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행복한 삶을 위한 집 이야기 프롤로그2
우리집은 안녕하신지요?
집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리움, 포근함, 돌아가야 하는 곳, 편히 쉴 곳... 우리가 '집에 간다'고 할 때 그 집은 물질적인 건물인 house가 아니라 정서적인 집인 home 이라는 것이지요. 아침에 집을 나서서 일터나 학교가 파하면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서둘러 돌아오고 싶은 그 집입니다.
내가 어릴 적에는 저녁이 되면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밥 짓는 냄새가 온 동네에 가득했었지요. 밥 때가 되면 아이들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리면 아무리 재미있게 놀다가도 각자 집으로 돌아갔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집이 주는 이미지는 고향이고 엄마로 각인되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입대를 해서 논산훈련소 시절, 야외교장에서 훈련을 받고 내무반으로 향하는 어둑한 길가 시골 마을, 집집마다 밥짓는 연기가 굴뚝에 피어 올랐고 노란 백열등으로 불켜진 창문을 바라보노라면 얼마나 집 생각이 간절했었던지 모릅니다. 우리집은 엄한 아버지에 잔정이 많지 않은 어머니라 그렇게 따뜻한 가정이 아니었었는데도 집은 곧 그리움이었습니다.
저녁이 되면 안방에서 낮은 촉수의 백열등 아래 밥상을 펴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연속극을 들으며 밥을 먹었지요. 엄하신 아버지의 훈계가 밥을 먹을 때마다 이어졌지만 돌아보면 그 이야기가 세상을 살아가는 지침이 되었고 아버지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제게 집은 분명 그리움의 대상은 아닐지 몰라도 제 세계가 만들어졌었던 보금자리였음이 틀림없습니다.
아무리 아버지가 엄했어도, 어머니의 품이 따스하지 않았었을지라도 우리집은 밥을 같이 먹는 곳, 식구들을 기다리는 곳, 돌아가야 하는 곳이었지요. 6인치블록으로 벽을 만들고 슬레이트로 지붕을 이어 지었기에 제대로 외풍이 심해 겨울이면 방안에도 얼음이 어는 허술한 집이었을 망정 해가 지면 찾아들었던 '깃'이었습니다. 하긴 그 시절에는 해가 지면 갈 곳이 집이 아니면 따로 없었긴 했었지만요.
누구에게나 생활의 중심은 집이 되어야 할 텐데 이 시대에는 어떨까요? 귀가 시간을 따로 정해놓지 않아도 저녁밥 먹기 전이 되어야 하는데 할 것입니다.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함께 밥을 먹을 사람이 있어서 서둘러 돌아가는 사람은 분명 그 생활의 중심은 집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저녁 밥을 식탁에 마주 앉아 함께 먹으며 하루의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을 떠올려 봅니다. 이 시대에는 그런 집이 몇집이나 되냐며 드라마에서나 보는 일이라고 치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족 모두가 함께 밥 먹고 여가 시간을 보내고 잠을 자는 곳이 집이라는 게 당연해야 하는데 그런 집이 얼마나 될까요?
하루 중 한끼라도 식구가 한 자리에서 밥을 먹는 집이 흔하지 않다고 합니다. 거실이 있지만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하루를 돌아보는 대화를 나누는 집도 드물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한 집에 살기는 하지만 함께 밥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려면 미리 약속을 해야 할 지경이니 이를 어떡해야 합니까?
집을 나서는 시간도, 귀가 하는 시간도 가족 구성원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지요. 주말이나 휴일 마저도 각자 일정을 잡아서 움직이니 식구가 한 자리에 앉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아니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따로 날을 잡지 않으면 밥 한번 같이 먹기가 쉽지 않은 게 요즘 세태라고 합니다.
만약 이런 집에 살고 있다면 가족 모두가 잠을 자기 위해 방만 쓰고는 밖으로 나돈다고 봐야 하겠지요. 수백, 수천 가구가 모여사는 아파트 단지의 밤 아홉시나 열시 경 아파트를 돌아 봅니다. 의외로 식구 중에 아직도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는지 불이 꺼진 집이 많습니다.
식구 중에 귀가 시간이 늦어지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늦은 시간까지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집을 보면 서글퍼집니다. 그 집은 사람을 들이지 않고 내쫓는 것일까요? 한 집, 두 집...몇몇 집이 아니라 너무 많은 집이 불이 켜져있지 않으니 '우리집'이라는 말이 무색해집니다.
혹시 우리집도 그 중에 하나가 아닌지요? 밤 아홉 시가 넘어도 불이 켜지지 않는 집에 살고 있는 분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집은 안녕하시겠지요?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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