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에세이 차 시음기
2012년 동경당 노반장 고수차 시음기
-봄 이야기, 봄차 이야기-
'봄날은 간다'
이런 제목의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나이를 좀 먹은 남녀의 은근하고도 달콤한 사랑이야기였지요
온 산이 수줍은 색시의 볼처럼 발가스레하게 물들었던 벚꽃이 이미 져버렸네요
필 때도 곱지만 이렇게 난분분하게 날리는 것도 황홀하지요
봄바람에 날리는 봄꽃이 어디던 선경을 만듭니다
운남의 봄은 어떤 풍경일까요?
올해도 몇년째 계속되는 가뭄으로 찻잎이 피어나지도 못한다고 하니 여기같지는 않나봅니다
몇년째 고수차의 값이 치솟는 원인이 수요도 많아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생산량이 특히 부족하기도 하겠지요
'노반장 고수차'
보이차를 알고 고수차에 관심을 가지는 다인들은 왜 이 차에 애착을 가지는 것일까요?
한정된 생산량에도 불구하고 그 몇배의 가품이 시장에 나온다는 차입니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사지에 직접 가서 만들어 온 노반장 햇 고수차를 마셔봅니다
특별한 다연으로 이렇게 고생해서 만들어 온 차를 맛볼 수 있으니 다복은 타고 났습니다
이제 같이 마셔 볼까요?
물은 삼다수와 비슷한 경도라는 승학산 약숫물입니다
차기정 장인의 옻칠 목기항아리에 담아두었던 물이라 좀 달 것 같습니다 ㅎㅎㅎ
표주박으로 물을 뜨는 운치도 함께....
오늘은 차판은 제쳐두고 역시 차기정장인의 옻칠 茶船을 대신 씁니다
어디에서든 간편하게 차를 낼 수 있지요
개완은 제가 젤 즐겨쓰는 청화백자로 노반장의 맛을 오롯이 드러낼 요량입니다
이렇게 준비하면 간단하게 어디든 원하는대로 차를 낼 수 있습니다 ㅎㅎㅎ
중국차는 물을 흘려가면서 행다를 하게 되므로 흘리는 물을 담아야 하기에 이런 다구가 있어야지요
그렇다고 차판을 펴기에 적당치 않으면 이런 옻칠차선을 하나 갖춰두면 좋겠죠?
솜털이 보송보송한 올 햇 노반장 찻잎을 조심조심 뜯어냈습니다
워낙 어린 잎에 백호도 많아서 차맛이 기대가 됩니다
해마다 노반장 차는 꼭 맛보게 되는데 쓴맛의 자극이 아주 몸 깊숙히 들어옴을 느꼈었습니다
어린 잎의 차를 낼 때는 물을 한소쿰 식혀야 합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어린 잎에 펄펄 끓는 물이 닿아서는 곤란하겠지요?
잔도 데우고 차맛의 기대도 데우고...
차를 내었을 때...이 색깔
유백색에 녹색이 살짝 가미된 이 투명한 탕색이 고수차가 가지는 맛있는 색이지요
이 정도면 분명 맛있는 차로 우려져 있을 것입니다
차맛을 최고조로 만들어준다는 자기질 잔입니다
이 잔에 차를 마시면 분명히 맛을 뾰~~~족하게 다가오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늘 이 잔을 전용잔으로 쓰게 됩니다
노반장은 그 특징을 쓴맛으로 삼는다고 했습니다
작년까지 마셔본 진품 노반장은 분명 제게는 잇몸사이로 스며오는 맛에 진저리를 쳤습니다
제가 인정하는 그 노반장의 맛은 입안에 담기는 풋풋한 향미를 뒤로 하고 잇몸으로 스미는 자극적인 쓴맛에...
그런데 올해 동경당 노반장은 그 자극적인 쓴맛을 승화시키는 특별함이 있었습니다
입에 머금고 있으면 단침이 계속 나오면서 향긋한 단맛이 입안에서 맴돕니다
감칠맛? 쓴맛에 어우러진 특별한 감칠맛이라고 할까요?
정말 어린 잎입니다
노반장 고수차는 특히 어린 잎을 쓴다고 하지만 동경당에서 만들어 온 이 차는 특히 그런 것 같습니다
어린 봄 잎은 아미노산 함량이 높아서 감칠 맛이 좋다고 하는데 바로 그맛입니다 ㅎㅎㅎ
뚜껑을 잃어버린 개완,
이 개완의 문양이 너무 좋아서 다른 개완의 뚜껑을 덮어서 씁니다
어디에서 누구와도 어떤 이야기라도 차를 나눌 수 있으면 소통은 문제가 없습니다
특별하다고 하는 노반장 고수차,
특별한 차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특별하게 만들어버린 차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차라도 보통 차는 없지 않을까요?
특별한 차를 마신 것이 아니라 특별하게 정성을 들여 만들어 온 차를 마셨습니다
작년까지는 쓴맛이 너무 자극적이었는데 올 동경당 노반장은 그 자극적인 맛을 승화시킨 특별함을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다연은 다복으로 이어져 먼 운남의 노반장 고수차로 행복한 밤입니다
같이 앉을 수는 없지만 이렇게 사진으로나마 차판을 벌리고 차를 권합니다
특별한 노반장 고수차 한 잔 하십시오 ^^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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