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에세이 차 시음기
운보연 고수차 십년심(十年心)
-거실에 차판을 놓고 가족이 즐길 차를 찾았다-
차를 마시는 분들은 자신만의 차실을 가지고 싶을 것입니다
몇백 년 묵은 나무로 깎은 차상을 하나 놓고 그 위에 흑단 차판을 폅니다
뒷편에는 괜찮은 그림이나 글씨도 한 점 걸어서 차 마시는 존재감을 느끼고 싶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저는 차실을 가지기 보다 거실의 한쪽에 차판을 놓기를 권합니다
일상의 차 한 잔을 가족과 나눌 수 있는 만큼 소중한 일이 있을까요?
가족들에게 나누는 차 한 잔이야말로 차를 마시는 가장 중요한 것이라 여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다 좋아할 수 있는 차를 갖추는 것이 먼저지요
의외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차를 찾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럼 그런 차의 조건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제가 사는 寓居입니다
차기정 장인의 가구가 그나마 괜찮은 분위기를 만들어줍니다 ㅎㅎㅎ
TV도 바꿔야 하는데...
이렇게 거실의 탁자에 차판을 펴고 차를 마십니다
저 탁자도 차기정 장인이 만든 것이랍니다
인연이란 이렇게 생활 속의 호사를 누리게 합니다
초겨울 햇살이 너무 따사로운 휴일입니다
오래된 아파트의 좁은 베란다지만 햇살이 따사로우니 더 큰 집을 원하는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작은 집에 만족하면 삶은 더욱 편안해지지요
저녁을 대신하는 파전으로 오랜만에 가족들이 둘러 앉았습니다
홍합도 넣고 굴도 넣은 맛있는 파전에 생탁을 더하니 이보다 더 좋은 음식이 필요할까요?
강아지도 한 점 달라고 고개를 빼고 있습니다 ㅎㅎㅎ
이제 저녁도 배 불리 먹었으니 본격적으로 차를 마셔볼까요?
오늘 소개할 차는 운보연의 십년심이라는 고수차입니다
아주 키가 큰 야방차 수준의 야생차에 가까운 특별한 나무에서 채취한 차랍니다
십년심이라는 의미는 중국말로 영원한 마음이라는 뜻이라네요
이 차의 이름을 지으면서 이런 의미를 담았다면 좀 특별한 차라고 볼 수 있겠지요?
2011년 운보연 포장지는 아주 세련된 것 같습니다
병면을 보니 차를 만들면서 찻잎을 채취한 분위기를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높은 나무에 올라가서 찻잎을 땄다면 골라골라 가려가면서 작업하기는 어려웠겠지요?
아마도 손에 잡히는대로 찻잎을 땄을 것입니다
귀한 차이니 한올한올 풀어냈습니다
긴압도 알맞게 되어서 잘 풀어지니 온전한 찻잎에서 차가 우러날 것 같습니다
부서진 찻잎에서 우러난 차와는 그맛이 많이 다르겠지요?
제 찻상은 그야말로 보여드리기에는 늘 부끄럽습니다
단정하게 정리해서 보여드릴 상태로 유지하기가 어려워서 이렇게 부분샷으로 보여드립니다 ㅎㅎㅎ
일상을 노출하는 건 프라이버시를 드러내는 것인데...^^
오늘 십년심을 우릴 자사호는 수평호입니다
생차 전용으로 쓰는 80cc 용량으로 귀한 차는 작은 호를 쓰지요
수평호는 두께가 얇아서 조그만 부주의에도 깨어지기 쉽기 때문에 조심해서 다루어야 합니다
차를 우려서 유리숙우에 따뤘습니다
차를 따뜻하게 유지하는 양초를 켜서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유백색의 탕색이 보석 같습니다
쓰다? 떫다?는 생차에 대한 고정관념이 고수차에는 예외로 적용됩니다
쓰지도 않고 떫지도 않다면 어떤 맛일까요?
떫은 맛은 부담이 되지 않을 정도이며 쓴맛은 차마다 그 정도가 다르더군요
제가 마셨던 대부분의 고수차는 부드러우면서 단맛이 좋습니다
고수차 특유의 향은 차를 마시고 난 빈잔에서 문향을 할 정도입니다
떫은맛이 적으면서 기분 좋은 쓴맛이 조화로운 차가 고수차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십년심은 어떤 향미를 가진 차일까요?
제가 좋아하는 고수차는 화이트 와인, 달콤한 숙차는 레드와인이라면 십년심은 샴페인 같습니다
단맛이 입안에 감기면서 화~한 향기가 입안에서 코속으로 스며듭니다
이 차를 마신 딸래미는 괜찮은 철관음 못지 않다고 하네요
저의 차멘토께 하사받은 96 하관숙병과 운보연 고수차 09 월향은 우리 가족이 즐겨 마시는 메뉴입니다
나뿐 아니라 가족이 좋아하는 차로 십년심이 더해져서 거실의 찻자리는 늘 즐겁습니다
그림이 어떻습니까?
차를 마시는 집은 차판과 다구로도 인테리어가 특별해집니다
그보다 끊이지 않는 웃음소리는 어떤 음악보다 더 좋지요
차를 우리고 차맛에 흡족해하며 마음에 차향이 젖어듭니다
가족들을 위해 물을 끓이는 저녁 시간을 기다립니다
차 한 잔의 의미를 어떻게 두시는지요?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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