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도반에서 지은 집

단독주택 이안당 -무릉동에서 도연명을 생각하며

무설자 2011. 9. 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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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주택을 설계하고 난 뒤에 집이름을 붙이는 단계가 일의 마무리로 삼는데 건축사에게는 화룡점정처럼 중요한 일이다. 당호를 붙일 때 설계를 하면서 고민한 의도를 담기도 하고 대지 주변이 주는 이미지를 쓰기도 한다. 이 집의 당호는 길하고 상서로운 일만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길상재라 붙였는데 집주인이 직접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와서 이안당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이안당 怡顔堂,

도연명의 시인 귀거래사歸去來辭의 구절인 眄庭柯以怡顔 면정가이이안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歸 去 來 辭 / 陶淵明 

 

돌아 가리라

전원은 황폐해 가는데 내 어이 아니 돌아가리

정신을 육체의 노예로 만들고 그 고통을 혼자 슬퍼하고 있겠는가

잘못 들어섰던 길 그리 멀지 않아 지금 고치면 어제의 잘못을 돌이킬 수 있으리라 

 

배는 유유히 흔들거리고 바람은 가볍게 옷자락을 날린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묻고 새벽빛이 희미한 것을 원망하다

나의 작은 집을 보고는 기뻐서 달음질친다

머슴아이가 반갑게 나를 맞이하고 어린 자식은 문 앞에서 기다린다 

 

세 갈래 길에는 소나무와 국화가 아직 살아 있다

아이들 손을 잡고 집 안에 들어서니 병에 술이 채워져 있다

나는 혼자 술을 딸아 마신다

 

뜰의 나무들이 내 얼굴에 화색이 돌게 한다

남쪽 창을 내다보고 나는 느낀다

작은 공간으로 쉽게 만족할 수 있음을 

 

매일 나는 정원을 산책한다

사립문이 하나 있지만 언제나 닫혀 있다

지팡이를 끌며 나는 걷다가 쉬고

가끔 머리를 들어 멀리 바라다본다

 

구름은 무심하게 산을 넘어가고

새는 지쳐 둥지로 돌아온다

고요히 해는 지고 외로이 서있는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나의 마음은 평온으로 돌아온다 

 

돌아가자

사람들과 만남을 끊고 세속과 나는 서로 다르거늘

다시 수레를 타고 무엇을 구할 것인가

고향에서 가족들과 소박한 이야기를 하고

거문고와 책에서 위안을 얻으니

 

농부들은 지금 봄이 왔다고 서쪽 들판에 할 일이 많다고 한다

나는 어떤 때는 작은 마차를 타고 어떤 때는 외로운 배 한 척을 젓는다 

고요한 시냇물을 지나 깊은 계곡으로 가기도 하고 거친 길로 언덕을 넘기도 한다

나무들은 무성한 잎새를 터뜨리고 시냇물은 조금씩 흐르기 시작한다

 

나는 자연의 질서 있는 절기를 찬양하며 내 생명의 끝을 생각한다 

모든 것이 끝난다

우리 인간에게는 그렇게도 적은 시간만이 허용되어 있을 뿐

그러니 마음 내키는 대로 살자

애를 써서 어디로 갈 것인가

 

나는 재물에 욕심이 없다

천국에 대한 기대도 없다 

청명한 날 혼자서 산책을 하고 등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끌며

동산에 올라 오랫동안 휘파람을 불고

맑은 냇가에서 시를 짓고

이렇게 나는 마지막 귀향 할 때까지

하늘의 명을 달게 받으며

타고난 복을 누리리니

거기에 무슨 의문이 있겠는가 

 

(피천득 역)  

 

이안당이 위치한 곳은 밀양시 단장면 무릉리, 이안당이라 당호를 지은 이는 아마도 무릉리라는 이 동네의 이름에서 착안했는지도 모르겠다. 도연명이 그린 이상향인 무릉도원이 이곳이냐고 굳이 묻거나 대답할 필요도 없이 이 마을의 이름이 무릉리이다  

 

무릉동이라 돌에 새겨 이름을 드러내었으니 무릉동에 짓는 집 이름은 도연명과 연유되는 것도 좋으리라. 도연명처럼 세상을 버리고 숨어들지는 않았지만 도시 생활을 떠나 무릉동에 올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무릉동에 집을 짓고 당호를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따와 이안당이라 지었으니 이 집에서는 늘 웃음이 끊이지 않고 행복을 누리고 살 마음만 가지면 되겠다.  

 

무릉동이라는 이름에 비하면 마을 풍경은 이름값을 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아 보인다. 이름뿐인 무릉동이라면 마음에 담아서 살면 되지 않겠는가? 각자의 마음이 지어내는 세상에 내가 사는 것이니 마음에 담은 무릉동이라도 되는데 무릉동이라 부르는 곳에 살게 되었으니.

 

 

 

산세도 울창한 숲도 이만하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마을 빈터에는 생업을 위한 흔적들로 번다하지만 여기 사는 이들은 만족하게 살고 있으면 좋겠다. 알렉산더 대왕이 디오게네스에게 어떤 소원이라도 들어줄 것이니 말하라고 했지만 그는 햇볕을 쬘 수 있으면 그만이니 좀 비켜달라고 하였다지 않았던가?

 

봄이 오면 계곡을 따라 있는 과수원에 복숭아꽃이 피어나면 여기가 무릉도원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도화를 보고도 믿을 수 없다고 한다면 저 계곡의 끝 안쪽에 아무도 찾아갈 수 없는 무릉도원이 숨어있다고 말하면 되리라. 어차피 무릉도원은 찾아 들어갈 길을 알 수 없다고 했으므로. 

 

시골 마을이 다 그렇겠지만 이곳도 그냥 사람이 편히 사는 분위기이다. 어떤 집은 기와집이고 그 옆 집은 슬래브집이며 슬레이트로 지붕을 이은 집도 있다. 오래된 마을의 한가운데 집 지을 터를 얻어서 오래된 기와집을 헐고 이 집을 얻었으니 집주인은 그냥 고맙고 죄송스럽지 않았을까?  

 

 

멀리 보이는 계곡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깊은 골을 이루었다. 가까이에는 이웃이 오래 살아온 흔적 그대로 살고 있다. 먼 풍경은 가끔 시선을 던지고 가까운 이웃과 눈길을 나누며 살아야 만족한 삶이 될 것이다. 

 

대를 물려 살았던 집을 헐어내고 그 터에 흙을 들어내기도 하고 또 돋우기도 해서 집을 앉혔다. 옛집의 흔적은 이 집에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가 결국에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렇지만 동네 사람들이 새 집을 지으니 마을 분위기가 더 좋아졌다고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 도시에서 살았던 번잡한 일상에서 주말에이면 시골에 와서 귀거래 하는 마음으로 다녀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을의 울을 만들어주는 산마루의 선과 어울리도록 지붕이 있는 단층으로 집을 만들었다. 이웃한 집들도 이층이 없으니 어깨동무하듯이 그렇게 집도 어울려야 할 것이라 여기며 땅과 어우러지도록 애를 써 보았다. 흙으로 만든 기와와 벽돌, 나무로 마감재를 삼으니 새집이지만 오래된 집과 빨리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마을 길과 경계 없이 마당으로, 집안으로 인도하는 길의 연장선으로 방문객을 맞는다. 문턱이 없이 대문이 없이 마음의 벽도 없이 누구라도 이 집에 들어올 수 있으리라. 바람도, 햇볕도, 하늘을 오가는 구름도 이 집 안으로 편안하게 드나든다. 

 

치장을 했지만 검소하게, 마당에서 들어 올려서 집을 앉혔지만 지붕을 넓게 덮어서 올라가는 시선을 잡았다. 들어올 사람이라면 누구든 편안히 들어올 수 있도록 현관문이 잠겨 있지 않으면 반가운 손님이 된다. 그래서 이 집에 머물면 怡顔-화사한 웃음을 담는 얼굴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집을 지었다.   

 

 

가까운 시선도, 멀리 바라보는 풍경도 둘이 아닌 한 마음으로 담을 수 있는 집,

무릉동 이안당 武陵洞 怡顔堂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