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도반에서 지은 집

한가로운 구름을 닮은 다인이 사는 집-한운거閑雲居

무설자 2008. 8. 21.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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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인茶人의 단독주택, 한운거閑雲居-한가로운 구름을 닮은 다인이 사는 집

 

 

 

집, 이 말 한마디로도 수많은 생각을 떠 올릴 수 있습니다. 영어에서 home과 house의 차이가 바로 집이라는 의미에 들어 있습니다. 돌아가 쉴 수 있는 곳이 바로 집입니다. ‘집에 간다’라고 하는 의미는 모든 이성적인 긴장을 무장해제하고 원초적인 감성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곳으로 간다는 것이지요.

 

우리네 삶을 돌아봅니다. 뻔한 동선, 집에서 직장으로 퇴근하고 바로 집에 갈까 고민하다가 샛길로 빠지던지 아니면 집에 가도 거실에 앉았다가 잠자리에 드는 일상으로 사시는 분이 얼마나 많을까요? 더구나 남자들에게 아파트라는 주거공간은 너무 심심합니다.

 

서재라는 공간을 할애 받은 분은 그래도 낫지만 아이들에게 방을 다 주고 나니 안방은 아내의 차지니 거실에서 TV나 보다가 그냥 잠자리에 드는 남자가 대부분입니다. 남자들에게 집에서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는 건 이 시대는 너무 힘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은 노후의 시간을 위한 꿈을 꿉니다.

 

아파트를 탈출해서 전원주택 한 채 지어 젊은 시절의 원한(?)을 풀고 싶어 하지요. 후반기 인생은 집 같은 집에서 살고 싶은 그 소망을 담은 집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요? 소망이 있어서 꿈꾸는 사람은 좀 더 구체적인 내용으로 꿈이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茶人, 그의 집을 스스로 스케치하다

 

정서가 남다른 사람, 멈추듯 흐르는 뭉게구름 같은 분위기의 남자가 집을 짓는다고 찾아왔습니다. 집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남달랐으면 이미 자신의 생각을 담은 스케치를 완성해 왔습니다.

 

경사진 땅을 깎아 앉힌 대지라 도로레벨에다 주차장과 창고를 넣고 계단을 올라 현관에 이르는 진입동선입니다. 언덕을 향해 남서쪽으로 막혀있고 전망이 열린 북동쪽으로 정면이 만들어지는 집을 만들었습니다. 복도를 중심으로 전망이 있는 쪽에는 거실과 안방이 있고 서북향으로  작은 마당을 만들어 주방과 식당을 만들었습니다.

 

동남쪽으로는 다실을 두어 다인의 집다운 공간을 꾸몄습니다. 이층에는 출가한 아이들이 오면 머무를 방을 두개 남서향으로 두었고 전망이 좋은 쪽에는 큰 서재를 만들어 옥상정원으로 나가는 큰 창도 냈습니다. 연면적이 70여 평이나 되는 큰 집입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두고 이 스케치를 완성했을까요? 스케치를 찬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우선 두 분이 사실 집으로는 너무 큰 것 같습니다.  마당은 꼭 만들어야 하겠지요. 거실에 난 큰 문으로는 담장이 없이 바로 도로에 면해 있으니 이건 너무 프라이버시가 없습니다.

 

방이 따로 나뉘어져 있으면 정이 있는 가족도 마음이 흐트러지기 십상이지요. 그 분을 잘 아는 제가 다시 다듬어 보아야겠습니다.

 

 

제가 다시 스케치를 해 보니

 

우선 전체 연면적을 45평 정도의 규모를 목표로 집을 구상합니다. 그분의 이미지에 맞는 집의 개념을 설정했습니다.

 

‘한가로운 구름을 닮은 이가 머무는 집’입니다.

 

차를 좋아하고 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부부가 늘 함께 할 수 있는 집을 만들 것입니다. 거실과 다실을 하나로 만들어 한 채를 만듭니다. 방을 모아서 또 한 채를 만듭니다. 채와 채 사이에 주방과 식당을 두어 하나로 연결합니다.

 

높은 일층의 채와 이층의 채가 양립하며 균형을 이룹니다. 두 채의 사이에는 가릴 것 없이 앞으로 열린 경치를 즐기며 요리를 하는 주방을 둡니다. 현관을 열고 들어오면 만나는 자리에 멋진 테이블이 들어오게 됩니다. 이 자리는 밥을 먹기도 하지만 차를 마시며 주고 받는 얘기를 이끌어내는 최고의 공간이 됩니다.

 

 

 

 

마당에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갑니다. 정제된 진입마당은 밖에서 큰 마당으로 들기 전에 잠시 긴장을 정리하는 공간입니다. 잔디가 깔린 마당을 판석을 밟아 들어갑니다. 조각도 몇 점, 운치 있는 나무 아래 작은 연못으로 들어가는 물소리가 바깥을 잊게 합니다.

 

큰 마당과 진입마당 사이에 연못을 팠습니다. 두 마당을 연결하는 다리가 구름처럼 걸려 있습니다. 연못에는 연꽃이 피어 있고 거실이 그 위에 정자처럼 걸려있습니다. 물을 건너서 큰 마당에 이르면 가라앉은 마음을 다시 일깨웁니다.

 

정방형으로 만든 큰 마당은 하늘을 담습니다.  이 마당에서는 세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눈  앞에는 나무와 꽃이 보이고 고개를 들면 하늘과 구름, 그 뿐입니다. 한가로운 구름을 닮은 사람이 머무르는 그 집의 중심 공간입니다. 이 마당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요?

 

진입마당, 연못과 큰 마당은 작은 언덕에 면해있습니다. 이 집에 딸린 산자락이지요. 다인인 그는 여기에 차나무를 심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자라는 찻잎으로 그는 해마다 차를 만들어 가까운 다우들과 차를 나누고 함께 즐길 것입니다. 그 차의 이름은 무엇이라 부를까요?

 

 

집 안으로 들어가니

 

풍경이 담긴 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데크로 열린 큰 창으로 멀리 풍경이 다가오는 홀이 나옵니다. 구름이 머무는 집에서 가장 좋은 view가 나오는 공간입니다. 홀에는 엔틱풍의 넉넉한 테이블이 놓여 있어서 일상의 대화를 나누는 가장 매력적인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요리시간이 즐거운 주방

테이블이 놓은 홀에 주방이 같이 있습니다. 요리를 하면서 부부가 대화를 나누는 분위기를 떠 올려보십시오. 먹기 위해서 서둘러 하는 요리가 아니라 이런저런 지나온 삶의 편린들을 풀어내는 즐거운 시간입니다. 주방에는 다용도실이 부설되어 있고 그 앞에는 작은 마당이 있어 장독도 놓고 빨래도 넙니다.

 

장지문으로 풍경을 가르는 큰 공간

거실과 다실이 한 영역을 차지합니다. 영역은 석자를 들어 내려다보이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큰 공간을 장지문으로 분할해서 문을 열면 큰 공간이 되어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이 길을 만듭니다. 장지문을 닫으면 거실은 마당을 향해 열린 공간이 되어 정적인 공간을 유지합니다.

 

다실은 먼 풍경이 창문이 프레임이 되는 액자 속의 그림이 됩니다. 사계절이 담기고 하루가 시간의 변화로 그림이 바뀌어 담깁니다.

 

물 위에 떠 있는 거실

거실의 정면은 연못위에 걸쳐집니다. 진입마당과 큰 마당을 나누는 연못 위에 거실의 발코니가 정자처럼 얹힙니다. 발코니에 서면 연꽃이 핀 사이로 유영하는 금붕어가 보입니다.

 

고개를 들면 앞동산에 차밭이 보이고 맑은 햇살이 녹음 사이로 쏟아집니다. 경사지붕으로 된 알맞게 높은 천정은 집의 격을 높여줍니다.

 

전통 한실로 꾸민 다실

다실은 반가의 사랑방으로 만듭니다. 양반자세로 앉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의자에 앉는 입식생활에 익숙해진 아파트 생활은 좌식으로 앉을 수 있는 행위마저 빼앗겨 버렸습니다.

 

찻 물 끓는 소리, 차를 내기 위해 다구를 만지는 팽주가 움직임이 소리의 전부가 됩니다. 다실 위에는 다락을 두어 차를 보관하는 차방으로 만들었습니다.

 

방이 모인 이층채

현관에서 주방을 끼고 들어가면 계단과 안방 출입구가 만나는 작은 홀이 있습니다. 정면 벽에는 엔틱한 탁자가 놓이고 작은 도자기 한점, 그 위에 구름을 닮은 수채화 한점이 작은 홀을 빛나게 합니다. 그 옆에 일층에서 쓰는 화장실이 숨은 듯이 자리합니다.

 

계단을 지나 들어오는 햇살이 작은 홀을 비춥니다.

 

안방은 높은 창으로 마당에 쏟아지는 햇살을 담깁니다. 시선이 머무르는 곳에는 작은 정원이 있어 창을 열면 풀벌레 소리, 자연이 들려주는 자장가를 들으며 잠에 빠집니다. 넉넉한 붙박이장이 벽을 따라 놓여져 있고 장의 끝에 작은 방이 파우더 코너가 있습니다.

 

넉넉한 욕조 오른 쪽에는 샤워부스가 있고 왼쪽에는 방금 꽃이 욕실을 환하게 비춥니다. 차밭을 가꾸느라 시달렸던 몸을 담급니다. 잔잔한 클래식이 흐르고 와인 한잔을 마시며 큰 창으로 열린 밖을 보니 붉은 꽃을 피운 나무 한그루가 욕실을 넘겨다보고 있습니다.

 

계단을 오르면 방 두개

두 아이들이 오거나 하루를 묵어갈 손님을 위해 마련된 방이 두개 있습니다. 방 하나는 먼 풍경을 보는 창이 있고 다른 하나는 마당과 차밭을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계단실 옆에 욕실이 있고 그 옆으로 옥상 덱크로 나가는 문이 있습니다.

 

가끔 옥상 데크로 나가 먼 풍경을 내려다보며 그동안 살았던 세상을 생각하며 혼자 생각에 잠깁니다.

 

 

한가로운 구름을 닮은 다인의 집입니다. 차를 마셔서 다인이 아니라 차를 닮아야 다인입니다. 오래 마셔온 차가 내 몸이 되고 마음이 되니 내가 차를 마시는지 차가 나를 담아내는 지 알 수 없습니다.  지금 마시는 차 한 잔이 삶의 결론이 되는 그런 집에 한가로운 구름을 닮은 다인 부부가 삽니다.

 

 

글 : 도반건축사사무소 건축사 김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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