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이야기

동경당님 막재에서

무설자 2010. 11. 16.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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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1038

동경당님 막재에서

 

 

 

 

 

 

무상의 가르침을 그대로 보여주는 계절입니다

가을은 우리의 삶이 생멸의 이치 속에 있음을 알게 합니다

그 푸르던 산이 온갖 색으로 아름다움을 보여주다가 어느 순간 잎은 땅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끊임없이 변하는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늙고 병들고 마침내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가을이 지나면  아름답던 단풍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가지만 남은 겨울나무를 보게 됩니다  

 

 

 

어디로 가셨습니까?

동경당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찾아 뵐 때마다 환한 웃음으로 온갖 귀하고 맛있는 차를 우리면서 나누던 그 모습을

이제는 볼 수 없습니다

 

어디로 가셨는지 모르기에 다음 생에도 더 좋은 삶으로 나시기를 비는 자리,

49재도 시간의 흐름 속에 막재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해인사 길상암이 그를 보내는 마지막 자리입니다

 

 

이미 깊어버린 가을

11월 13일, 겨울의 초입에 당신을 보내는 자리를 찾아갑니다

해인사 입구의 깎아 지른듯한 산의 저 위에 길상암이 있습니다 

 

 

동경당님은 이 암자와 어떤 인연이 있었을까요?

그를 보내는 자리에 찾아온 분들을 위해서 차를 우려놓고 기다립니다

이 차 한 잔을 마음에 담으면 그를 보내는 가장 큰 願이 될까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성철 스님의 법어를 생각해 봅니다

오고가는 우리의 삶도 올 때를 모르고 왔듯이 가는 길도 모르고 갑니다

그렇게 왔다가 가는 삶에서 우리도 언젠가는 갈 때를 모르고 살다가 갈 것입니다

 

 

동경당님을 추모하기 위해 참석한 이 대중들은 어떠 인연으로 이 자리에 참석했을까요?

차 한 잔을 같이 나눈 인연, 부처님 가르침을 같이 나눈 인연...

그 인연이 어떻다고 해도 함께 보낸 시간이 소중했던 사람들일 것입니다

 

 

동경당님의 불법 공부를 지도했던 스님이 법문을 해 주십니다

오래토록 불법 수행을 했던 건 아니지만 첫 만남에서 전생에 수행자였음을 느꼈다고 합니다

수행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이미 큰 그릇을 보여주었기에

이 생에서 깨달음의 큰 자리에 가기를 기대했다고 합니다

 

이 생에서 할 공부를 마쳐서 다음 생의 자리로 간 것일지도 모릅니다

동경당님은 앉아서 이 생의 몸을 벗었다고 합니다

좌탈, 모든 불교 수행자가 바라는 생의 마지막 자리입니다

 

이 생의 미련을 버린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모습이지요

서고 앉고 눕는 경계를 버린 자만이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삶이 다하는 그 순간을 편안하게 맞이 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 생의 몸을 벗어버린 동경당님이지만 참석한 대중들은 그를 아직 보내지 못합니다

쉰일곱의 나이의 그를 어떻게 보낼 수 있겠습니까?

보낼 수 없는 그를 보내는 대중들은 다음 생에서도 그와 만나기를 발원합니다 

 

 

산도 하늘도 나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고감은 누구도 어찌하지 못하기에 기억할 것도 없겠지요

오직 그와 나눈 인연을 마음에 담아서 그를 다시만날 다음 생에서 이어가길 바랄 것입니다

 

 

길상암 큰 소나무에 새가 앉아서 49재를 지켜봅니다

그를 아는 인연이 새의 몸을 받아 이렇게 찾아 온 것일까요?

아직 다하지 못한 인연은 다음 생에서 함께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길은 어디론가 이어집니다

혹시 길이 끝난 자리라면 그 곳에는 누군가가 만든 암자가 있던지 정자가 있겠지요

그렇게 우리가 가는 길의 끝에는 목적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도 길입니다

그 길의 끝을 어디로 잡아서 걷고 있는지요?

길의 끝을 모르는 길이라면 잠깐 서서 길을 챙겨야 합니다

 

 

동경당님이 만들었던 길을 따라서 이 자리에 왔습니다

차를 좋아하고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챙기고 차 한 잔의 자리를 즐기던 당신을 따라 왔습니다

이제 그 길을 동경당님을 아끼던 사람들이 가꾸고 넓히기를 발원해 봅니다

 

좁은 길은 깊은 길이며 넓은 길은 멀리 가는 길입니다

좁은 길은 깊이를 더하여 나를 돌아보게 하고 넓은 길은 같이 걸어갈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차를 마신다는 것도 나를 위하면서 세상과 두루 나눌 일이 있을 것입니다

 

동경당님은 이 생의 인연을 다해 가셨지만 그 뜻은 이 자리에 남아있습니다

그 뜻을 기리며 차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오래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자리에는 늘 동경당님이 함께 하리라 생각합니다

 

동경당님 영전에 향 한 대 피워올리고 맑은 차 한 잔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