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시음기

연향에 취하고 다정에 취하고-백련차 시음기

무설자 2010. 9. 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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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차 시음기

蓮香에 취하고 茶情에 취하고

-백련에 담은 금봉차-

 

 

 

 

차는 많습니다

제가 소장하고 있는 차만해도 수백 종류가 되니까요

세상의 차는 말할 것도 없지요

 

하지만 한 가지 밖에 없는 차가 있다면 어떤 차일까요?

차를 만든 이가 같이 마실 사람을 혼자만 청해서 앉는 자리에 내 놓을 수 있는 차

그리고 그 차는 한 자리에서 앉아서 마시고나면 없어지는 차랍니다

 

 

마실 가듯이 찾아가면 앉을 수 있는 찻자리

부산에서 진주라서 마실이라고 하기에는 먼 거리지만 마음은 늘 그렇게 달려갑니다

마음만 맨날 가다가 오늘은 가서 마실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그대와 둘이 나눌 좋은 차가 있는데 오실라요?"

차를 마시는 사람에게 이 한 마디만큼 반갑고 귀한 말이 더 있으리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길은 만만찮은 거리였지만 마침 전날의 일정이 겹쳐져서 가능할 수 있었지요

 

1박2일의 전 날 일정을 줄여서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남해에서 하룻 밤을 지내고 그 다음 날은 마음이 급한 걸음입니다

젊은 시절의 연인을 만나는 그 마음만큼이라고 하면 과한 표현인가요? ㅎㅎㅎ

 

 

좋은 차라고 다우께서 저를 꼬드긴 '좋은 차'가 바로 이 물건입니다 

연꽃 봉오리에다 녹차를 넣어서 냉동보관한 것이지요

둘이서 이 귀한 차를 마신다는 것이 어쩌면 황송하기까지 합니다 

 

 

인연이 닿아서 연꽃 봉오리를 몇 개 얻게 되어서 이렇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연꽃은 향이 다 비슷하다고 해도 꽃봉오리에 넣은 차가 금봉차라고 하는 아주 귀한 녹차랍니다

옻칠을 한 나무상자에 넣어서 파는 차이니 얼마나 귀한 차인지 아시겠지요?

 

 

숙우의 포스도 여간이 아니게 보입니다

뜨거운 물을 부으니 꽃잎이 풀어지면서 속에 감춰진 것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은밀한 연꽃의 술들과 연향을 머금은 찻잎이 보입니다

  

 

진하지도 연하지도 않은 그 상태로 우러나기를 기다려서 차를 따릅니다

백자 숙우에 차가 채워지면서 방 안을 채우는 연향...차향

차가 연향을 머금어서 뱉어내는 차향, 연차의 향기인가요? 다우의 마음인가요?

 

 

백자 숙우에 담긴 이 차는 먼 길을 생각치 않고 청한 다우의 정이지요

꼭 마셔보아야 한다는 제 마음은 이 자리에 앉으면 그만이지만 차가 만드는 자리를 묘한 인연입니다 

그가 연차를 이 한 잔에 담기 위해 어떤 마음으로 차를 만들었을까요?

 

 

" 자, 내 마음을 받으시오."

향이 코에 닿기 전에, 차가 입에 닿기 전에 이미 다우의 마음의 향에 취해 버립니다

그렇게 나누는 것이 茶情입니다

 

 

따르고 난 뒤에 뚜껑이 덮인 숙우

이 안에는 차는 없지만 향은 가득할 것입니다

차도 연도 물도 다 비어버린 이 안에 채워진 마음...

 

 

따르고

마시고

또 따르고...

 

 

향이 다하고

맛이 다하더라도

정은 더해지는 것이 茶情이려니...

 

 

물을 붓고 또 붓고

잔을 채우고 비우고 또 채우는 만큼

연꽃과 차는 흐트러지면서 속에 있는 것을 다 내놓습니다

 

 

연꽃이 차와 만나듯

다우와의 만남도 이렇게 그 속을 다 보여줄 수 있어 행복합니다

내 것도 아닌 내 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둘 수 있으니 이를 茶緣이라 할까요?

 

 

處染常淨

다우도 저도 혼탁하다고 하는 세상에 맑은 모습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으로 살고 싶습니다

 이렇게 차 한 잔 나누니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우님....고맙습니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