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차 시음기 101018
노차는 인연따라
40년 진기 노오룡차 시음기
오래 묵은 차를 老茶라고 하지요
노차를 이야기하자면 역시 보이차, 호급 혹은 인급을 거론해야 합니다
인급 보이차는 인연따라 마셔보았지만 아직 호급 보이차는 구경도 못해 보았습니다
동경호, 송빙호 등으로 불리는 호급 보이차는 1940년 이전의 차를 말하지요
홍인, 녹인, 황인으로 부르는 인급 보이차는 1951년 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중차패로 통일된 포장지로 나오던 시기까지의 보이차를 말합니다
보이차를 마시면서 호급 보이차를 소장하고 있다면 아마도 차에 대한 조예가 대단한 분일 것입니다
인급 보이차를 일상으로 마시는 분이라도 부러움의 대상이 되지요
이런 차들은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온전하게 세월을 지난 것을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오늘 소개할 차는 희귀하게도 보이차가 아닌데도 40년 가까운 세월을 묵은 차입니다
반발효차의 대명사로 부르는 오룡차도 5년 주기로 홍배를 해서 노차로 만들어 마시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40년 가까운 나이를 먹은 오룡차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노차만 주로 마시는 선생님과 인연을 맺은 덕분에 이렇게 귀한 차를 마시게 됩니다
선생님을 오랜만에 찾아 뵈니 귀한 차라며 내어주시면서 어떤 차인지 이야기해보리고 하시네요
향이 아주 독특한 보이노차라고 말씀을 드리니 웃으시면서 진년 오룡차라고 하십니다
주로 숙차를 마시면서 노차는 외식하듯 한 잔 씩 얻어 마시는 처지라 차맛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향과 맛이 독특한 오룡차가 아무리 나이를 먹는다고 해도 이렇게 점잖아 질 수 있다니요
좋은 차를 주시는대로 마시고 나서는데 10g 가량 덜어주시면서 나누지말고 한번에 우려 마시라고 하십니다
그 진년 오룡차, 바로 이 차입니다
한번에 넣으시라고 하셨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양이 너무 많을 것 같아서 5g만 들어서 마시기로 합니다
평소에 차를 연하게 마시기에 5g도 많다고 여기는데다 이 귀한 차를 한번은 더 마셔야겠다는 아까운 생각이...
마른 차를 보니 철관음 계열은 아닌듯하고 대홍포 계열의 암차류일 것 같습니다
철관음 계열이라면 아무리 홍배를 몇 번씩 하더라도 차잎이 말려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코를 대고 마른 차에 향을 맡아보니 그냥 무향입니다
좋은 차는 혼자 마셔도 좋겠지만 역시 마주 앉아 다담을 나눌 도반이 있으면 더 좋을 것입니다
마주 앉으면 그냥 좋은 도반을 불러 함께 마십니다
마침 아내도 외출할 일이 있어 미리 차려주는 저녁을 도반과 같이 먹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좋은 차는 차호도 좋아야 하겠지요
제가 소장한 자사호 중에서 젤로 아끼는 오건명 작가의 용단호입니다
오건명 작가는 국가급 공예미술사라고 하며 자사호의 고전을 연구하여 새로이 만들어 아주 호평을 받는다고 합니다
거실의 넓직한 테이블 한켠에 자리한 제 찻자리입니다
거실에 앉으면 물이 끓고 그날의 기분에 따라 차를 골라서 마십니다
물이 끓고 벗과 이런 저런 다담을 나누며 차를 우립니다
백자 잔에 따른 차의 탕색입니다
가을이 익어가는 10월의 탕색으로는 아주 제격이지요?
맑은 그대로, 고운 가을색이 찻잔에 담겼습니다
가을 색이 맑아서 유리 숙우에 마주한 거실의 저편이 그대로 보입니다
묵은 차가 아니라면 오룡차의 향기가 거실에 가득할텐데 그런 향기는 지난 세월이 가져가버렸나 봅니다
사람도 차도 나이를 먹으면 겉에서 나는 향기는 없고 속에 감춰진 향기를 살펴야 하지 않을까요?
향과 맛이 입 안에서 어우러져 독특하다고 해야할지 묘하다고 해야할지 모르게 요동을 칩니다
오룡차라고 알고 마시니 보이차와의 경계를 허물어 더욱 오묘합니다
따르고 따르고 또 따루어도 변해가는 맛과 향에 취할 뿐 그만 둘 수 없을 정도로 계속 나옵니다
보이차가 아닌데 오룡차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고 보이차의 맛을 찾으려하니 뭐라고 말을 붙일 수도 없습니다
그냥 절세가인이 나이를 먹어 예쁘게 늙어가는 그 맛이라고 할까요?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우리다 한 쪽으로 미뤄두고 조금 남아있는 보이 노차를 꺼냅니다
가을 볕이 저물어가는 거실 한쪽에 우리 집 강아지가 오수를 즐기고 있습니다
차를 마시니 분위기 지키느라 혼자서 제 자리로 가서 잠을 청합니다
참 착한 우리집 강아지, 몽이 입니다 ㅎㅎㅎ^^
보이노차 전용 자사호는 장암명 작가의 수평호 노자니입니다
보이노차는 역시 선생님께 나누어받은 진기 30년에 가까운 반장보이입니다
호급도 인급도 아니지만 제게는 그 이상의 귀한 차랍니다
귀한 차는 인연이 닿아야 마실 수 있는 차라고 주장합니다
노차라고 내놓는 차 중에서 창내가 나지않는 제대로 된 차가 얼마나 될까요?
역시 좋은 노차는 수장한 지가 최소 10년은 넘은 차라야 어느 정도 신뢰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숙차는 제대로 된 차가 아니라고 이야기 하면서 진년 생차를 구입해서 마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시중에서 만날 수 있는 노차 중에서 창내가 나지않고 푹 삭은 차를 구하기란 너무 어렵지요
그래서 노차를 외식하듯 마실지라도 인연이 닿아 제대로 차를 아는 분을 만나 마셔야 맛나는 노차를 마실 수 있습니다
무작정 마시게 된 보이차를 이렇게 귀한 차도 접할 수 있는 건 제 차 선생님 덕분입니다
노차와 암차류만 마시는 차 선생님을 통해 주변의 고수(?)분들을 알게되고 차도 그렇게 만납니다
좋은 차는 역시 사람과의 인연으로 연분을 맺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이 차 한 잔,
제게는 차와의 인연이 곧 사람과의 인연입니다
얼마 전 가까이 다정을 나누던 귀한 다인을 잃어버린 슬픔이 노차를 바라보니 밀려옵니다
좋은 차는 좋은 자사호에 우리라는 선배 다인의 충고에 괜찮다고 하는 자사호를 수장했습니다
주니에는 숙차를, 노자니에는 생차를 우립니다
평소에는 주로 개완을 쓰지만 귀한 차를 마실 때는 꼭 자사호를 쓰게됩니다
노 오룡차의 엽저, 얼마나 잘 보관했는지 만지니 생엽의 감촉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요즘은 우려내고 난 엽저는 다시 끓여서 마시고 엽저는 차를 보관하고 있는 서재에 수분 공급용으로 말립니다
수분이 마르고 난 엽저는 모아서 화단에 뿌려주니 버릴 게 없는 차의 공덕을 알겠습니다
차를 마시면서 맺게 되는 이런 저런 인연으로 팍팍한 삶에 생기가 돕니다
차는 삶의 윤활유요 좋은 사람과 이어주는 인연의 고리입니다
모처럼 만난 귀한 차가 주는 기쁨을 짧은 글 몇자로 다 옮길 수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아름다운 가을 밤에 차 한 잔 올립니다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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