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산사 순례기 1007
부여 만수산 무량사
김시습의 사연이 어린 절, 고찰의 면모를 잘 간직한 아름다운 도량
무량사는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만수산에 위치한 사찰로
신라 헌강왕 때 범일국사가 창건했다고도 하고, 신라 문성왕 때 창건했다고도 전해진다.
범일국사는 847년 당나라에서 귀국한 이후 무량사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
한때 홍산현에 속하였던 적이 있으므로 홍산 무량사라도도 불린다.
무량사의 극락전은 보물 365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흔하지 않은 중층건물이다.
미륵보살괘불은 보물 제 126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김시습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는데 충남 유형문화재 64호로 지정되었다.
참 아름다운 절을 찾았다
아름답다는 말은 사전에서 이렇게 정의한다
'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 만하다'
이 표현 그대로 무량사는 절을 찾는 이에게 보는 그대로 조화로움 그 자체로 즐거움과 만족을 주는 곳이었다
충청도는 불교를 믿는 이들이 타 지역에 비해 현저하게 적은 곳이라서 그런지 일요일인데도 조용하였다
도량이라는 표현은 어쩌면 번잡스럽지 않아야 할 것이니 그대로 차분하게 가라앉은 청정함이 느껴졌다
삼사순례 열기로 유명세를 가진 절은 순례객이 아닌 관광객으로 넘쳐나는데 무량사는 그 대상에서 제외된 모양이다
이 곳이야말로 관광이 아닌 그야말로 순례지로서 적합한 절이 아닌가?
찾을 사람만 찾는 도량으로 숨어 있는듯 순례객을 맞는다
속계와 성역을 구분하는 일주문이 아니라 둘이 아님을 알게 하는 영역이 맞닿는 경계점이다
그래도 영역을 넘어 선다함은 저 경계선을 넘는 곳에 대한 기대치만큼 마음의 준비를 필요로 한다
장마철이라 습기를 머금은 청정한 숲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어 절을 찾는 이를 저절로 마음을 내려놓게 한다
만수산 무량사
무량이라는 말에서 무량수 부처님 아미타불을 모시는 정토도량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산 이름이 만수산이라니 오래 살고자하는 중생의 바람을 채워 주는 절일까?
요즘 절은 절 입구까지 차량이 닿을 수 있도록 하여 이렇게 숲을 걷는 최소한의 통과의례도 생략된다
그래도 무량사는 충분하지는 앉지만 몇 분이라도 걸어가면서 마음을 내려 놓게 한다
걷는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일텐데 걷기 싫어하는 현대인은 삶이 죽음과 늘 마주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천왕문 오른쪽에 있는 당간지주, 당간지주는 불교 국가중 한국에서 독특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높이 약 3미터가량의 두 당간지주 사이에 높이 약 15미터 가량의 당간을 꽂아서 멀리서 사찰의 위치를 찾을 수 있도록 한다
경계,상징,벽사 등의 의미도 있으며,당간 꼭대기에 사찰의 깃발을 꽂는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일직선 상에 있는 탑과 극락전을 만나게 된다
천왕문에 들어서자마자 맞닥뜨리는 시선을 늘어진 큰 나뭇가지가 걸러준다
이 나무가 없었다면 넓은 마당과 이층으로 된 극락전을 바로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이 큰 나무가 있어 무량사가 보여주는 도량의 분위기는 특별하다
한 마당을 가운데 두고 전각들이 배치되어 있지만 이 큰 나무로 말마암아 적절한 공간의 분위기를 안배한다
잎이 지고난 겨울의 무량사는 어떤 분위기일까?
요즘 전각의 현판은 '보전'이라고 붙이기를 좋아하는데 극락전이라고 2층에 높이 달린 현판이 소박하다
마당에 탑 하나, 그리고 숲같은 큰 나무에 어울린 전각들이 조화롭다
범종이 울리는 저녁의 풍경은 또 어떠할까?
마당의 비례에 잘 맞는듯한 2층 구조로 된 극락전이 너무나 당당하다
빛바랜 단청이 고찰임을 말하면서 그저 절을 찾는 순례객을 편안하게 맞아준다
크지만 위압적이지 않고 솟아 오르듯 높은 집이지만 자리에 편안히 앉았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주는 도랑 높이 정도만 기단을 만들어 넓은 마당을 깔고 앉은듯 편안한 모습이다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마저 기단의 흙을 살짝 벗어날 뿐이니 높은 만큼 땅을 깔고 앉았으니 그래서 편안하기 그지없는가 보다
벗겨진 단청에서 옛절의 분위기를 말하듯 보여준다
따로 불상을 두지않는 적멸보궁을 제하고 후불탱이 없는 불전은 처음 본다
보물 제1565호 소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17세기의 불상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며
현진이라는 불모 스님과 1633년에 조성된 정확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점이 특별하다고 한다
이 삼존불로도 후불탱이 없이 충분히 장엄함을 보여주고 있어서 저절로 마음을 숙일 수 있다
몇 배나 했는지 비오듯 흐르는 땀을 훔쳐가며 정근과 함께 엎드리고 또 엎드렸다
있을 것만 있으면 마음은 그렇게 집중이 되고 해야할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무량사는 편안함 그 자체이다
그저 오고 싶을 때 와서 절 어느 곳이든 앉으면 마음도 몸도 쉬어질 것 같다
앉아서 눈만 감으면 이 자리가 극락이라
매월당 김시습의 초상화,
그 굴곡 많은 인생을 무량사에서 끝맺음을 했다고 한다
출가자로 세속인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았던 그는 여기서 삶을 정리했으니 여기라면 그도 편안하게 삶을 정리했을 것이다
한 때는 수십 개의 암자를 거느렸던 큰 절이었다고 하니 그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으리라
돌계단의 디딤돌 마저도 옛날의 기억을 담은 부재가 쓰여졌다
저 돌은 그 큰 절이었을 때 어느 곳에 쓰여졌던 돌일까?
극락전과 마주 하고 서있는 백제탑 양식으로 조성된 5층 석탑
신라계 양식을 대표하는 불국사 석가탑과 쌍벽을 이루는 정림사지 석탑과 닮은 모습이다
신라계 석탑이 호방한 남성적인 이미지라면 백제탑은 단아한 여성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다른 전각들이 기와지붕을 한 건물인데 새로 지어진 공양간-식당은 현대적인 양식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다른 사찰들의 콘크리트로 지어진 목조양식의 어정정한 모습이 아니라 건물의 기단을 본 딴 모습이라 오히려 낫다
이런 형태의 건축물을 제안한 건 설계를 한 건축사라 하더라도 이렇게 채택을 해 준 주지스님의 안목이 놀랍다
이 건물의 지붕은 윗 단의 마당과 자연스럽게 이어져서 이렇게 장독대로 쓰여지고 있다.
주방의 환기장치도 돌로 쌓아서 주변과 어울리는 처리를 했으니 다시한번 주지스님의 안목에 감탄하게 된다
가능한 콘크리트를 보이지 않고 자연석으로 축대를 만들어 절 전체에 고졸한 멋과 분위기를 잘 만들고 있다
이렇게 공양간에 들어오면 완전히 현대식으로 정갈한 공간으로 쓰고 있다.
수많은 사찰을 다녀보았지만 이렇게 현대식으로 조성된 공양간은 처음인듯 싶다
음식 맛도 한 법우님은 세 그릇을 먹을만큼 맛 있어서 음식까지도 무량사는 오래 기억될 것이다
무량사
아름다운 절
큰 나무가 만들어주는 절다운 풍경에 발길이 돌아서지 않는다
절을 나서며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가을에, 겨울에...그리고 봄에 언제고 꼭 다시 오리라
그 때는 오래 머물며 이 아름다운 절을 맘에 몸에 적시듯 담아서 가리라
무 설 자
'사는 이야기 > 에세이 고찰순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천 소백산 용문사 순례기-山寺의 넓은 마당에서 (0) | 2010.11.09 |
---|---|
산사의 큰 나무 (0) | 2010.07.23 |
우리 부처님, 내 마음대로 나투신 곳이라...-화순 영구산 운주사 순례기 (0) | 2010.04.12 |
아름다운 무위사 극락전 (0) | 2010.04.11 |
수행하는 순롓길을-강진 월출산 무위사 (0) | 2010.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