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이야기

빵 네 봉지, 전차 한편 그리고...

무설자 2008. 6. 28.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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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080630

빵 네 봉지, 전차 한 편 그리고...

 

 

"주소가 부산.... 맞습니까? 뭘 좀 보내려고 합니다."

 

"예, 그렇습니다만...무엇을? 저는 드릴 게 없는데..."

 

"약소하지만 내일 부치도록 하겠습니다. "

 

 

그렇게 통화를 하고 우선 너무 죄송스러웠습니다. 왜 그걸 내게 보내는 지 묻지도 않고 그냥 받을 수 있는 주소만 확인해 드린 게 전화를 끊고 나니 후회스런 마음이 밀려왔습니다. 제가 자주 들어가는 몇몇 카페에서 늘 같이 만나게 되는 다우였는데 아직 뵙지는 못한 분이었지요.

 

그렇게 통화를 하고난 며칠 뒤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니 큰 박스가 하나 도착해 있습니다. 발신지가 대구로 된 그 다우가 보내온 것인데 라면박스 한 개입니다. 박스를 여는 순간 큰 봉지 네 개와 그 사이에 무엇을 넣었습니다. 큰 봉지 안에는 속이 빈 부피가 커다란 공0빵이 가득, 그리고 작은 상자에는 대구의 명물 팥빵, 향과 향꽂이 그리고 보이차전이 한편 들었습니다.

 

0빵을 아내와 함께 보면서 서로 마주보며 웃음을 한껏 머금었습니다. 큰 박스를 가득 채운 그 빵에서 그분이 내게 보낸 여유로움 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차전 한편으로도 충분히 고마운 선물인데도 차 마시며 다식으로 쓰라는 공0빵과 맛있는 지역명물 빵을 넣고 제가 불교를 믿는 것을 알고는 향을 넣었나봅니다.

 

차를 마시기 전에 그 다우가 보내온 향을 태워 주변의 잡내를 없앴습니다. 그리고 차를 만지며 보내준 이의 마음을 느껴봅니다. 한참 차를 마시다가 다식으로 공0빵을 먹으며 보낸 다우의 마음이 전해져 마음에 따뜻한 감정이 밀려옵니다. 그의 차를 마시며 짧은 시간이지만 향을 피우면서 프롤로그를, 그의 마음을 느끼는 에필로그로 자녁이 충만해집니다.

 

차를 마시지 않을 때에도 그 향을 피우며 진하지 않고 은은한 향내음으로 그분을 느낍니다. 그날 밤 내내 그가 보내온 차를 우리면서 충만한 행복을 만끽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소소하지만 더 바랄 게 없는 완전한 행복입니다.

 

차 관련 카페활동을 하면서 처음에는 차를 알아가는 즐거움이 좋았지만 이제는 사람과의 교분으로 즐거움이 더해집니다. 온라인의 인연이라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지만 매일이다시피 만나면서 은근하게 익어가는 정 때문일 겁니다. 사람과 술은 묵은 것이 좋다지만 다인들은 술 대신에 차를 넣겠지요. 보이차와 함께 익어가는 다우들과의 정이 아직 노차를 잘 모르는 초보에게는 차보다 더 좋아질 것 같습니다.

 

아직 다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한달 가까운 병원생활 동안 인터넷을 통한 다우들의 마음씀씀이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마음이 깊어지니 거리를 불문하고 병문안까지 와 주시니 어떻게 말로만 나누는 정이라 하겠습니까? 부산뿐 아니라 대구, 남원, 여수와 중국 곤명에서 귀국한 길에 부산까지 찾아오신 그 걸음을 병실에서의 만남이니 부실한 인사를 하고 말았습니다.

 

빵 네 봉지의 주인공은 대구에서 세 번이나 찾아 주셨으니 그 깊은 정을 보면서 만남이라는 걸 어찌 대해야할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볍게 여기는 익명성의 인터넷을 통한 만남, 하지만 제가 겪은  만남의 무게는 얼굴을 맞대는 만남과 비교해서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오늘도 인터넷에 들어가 많은 분들을 만납니다. 진년노차보다 더 좋은 다우들을 만나며 차 한 잔의 더 깊은 묘미를 느끼며 차를 마십니다. 왜 사람과 더불어 마시는 차가 더 특별할 수 있는지를 알게 한 큰 박스 안에 가득 찬 공0빵 속의 전차 한편, 이 차보다 더 귀한 차가 있겠습니까? (2008, 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