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도반에서 지은 집 28

싱글맘이 짓는 동녘길 단독주택 3 - 얼개 짜기의 세 가지 대안

건축주...그날은 상담차 오는 길이었지만 첫 만남에서 집짓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좀 더 실질적인 대화를 나누려고 지번을 미리 받아서 대안 스케치를 해 보았다. 대지 면적에서도 여유가 없는데 대지 모양과 주변 여건으로 집을 배치하는 게 쉽지 않았다. 대안을 세 가지로 검토해 보았는데 어렵사리 내린 건축주의 집짓기가 수월하게 진행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단독주택 설계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대지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대지와 주변의 조건을 살피는 것이다. 대지의 모양과 향, 대지에 면한 주변과의 관계를 파악하면 집을 앉히는데 필요한 사항이 도출된다. 대지 모양과 향의 관계는 장방형으로 동서로 길며 이형이라면 둔각으로 생겨야 좋다. 예각으로 대지 안으로 파고들면 흉하다. 대지에 면한 도로는 ..

싱글맘이 짓는 동녘길 단독주택 2 - 집 짓기에 동참하면서

인연이라는 말은 말 자체로 오묘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인연이 닿아 만나게 되는 사람이라기보다 만나게 되는 사람은 누구나 인연이라는 끈으로 이미 이어져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내 일인 건축사라는 직업으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거의 집을 지으려 하는 분들이다. 집을 지을만한 경제적인 성취를 이뤄냈다는 건 삶에서 성공한 여유를 누리는 거라고 볼 수 있다. 단독주택을 짓고 사는 분들은 아파트라는 부동산적 자산 가치보다 인문학적 삶의 가치를 더 중시할 만한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가끔 단순히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데도 꼭 집을 지어서 살아야만 하는 절실한 이유가 있는 분을 만나기도 한다. 브런치스토리에 올라 있는 글을 읽다 보니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분이 그런 사정으로 집을 지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陽明齋양명재-서향 대지에 남향의 햇살이 담기는 집 / 문현동 상가주택

건축물을 짓는 대지는 그림을 그리는 캔버스에 비유하기도 한다. 캔버스는 보통 사각형이지만 대지는 택지를 조성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각양각색이다. 그나마 평지라면 다행이지만 경사진 땅이면 집을 앉히는데 어려움이 많다. 캔버스를 살 돈이 없어서 담배 내포장지인 은박지에 그림을 그린 이중섭 화가는 못으로 긁어서 명작을 남겼으니 대지의 모양을 탓할 일은 아니다. 이형의 대지라도 땅 생김새가 둔각으로 이루어졌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예각으로 뾰족한 부분이 많으면 토지이용에서 허실이 많아진다. 또 대지 면적에 비해 폭이 좁다면 더욱 쓸모가 줄게 되고 대지 주변에 집이 붙어 있으면 공사하는데 다툼이 많을 수밖에 없다. 대지가 가진 모든 악조건을 가진 프로젝트를 소화해서 작업을 마쳤다. 이중섭 화가에 댈 수는 없겠지만 최악..

세계 최고의 어린이안경, 토마토안경 사옥 설계를 시작하면서

貴人을 만난다는 말이 있다.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특별한 분과의 인연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어쩌면 건축사로서 만나게 되는 건축주는 다 귀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인연이 된 건축주는 예사로운 분이 아니어서 설계를 하게 된 건축물에 대한 부담이 밀려온다. 일을 의뢰하고 싶다는 전화 한 통화와 길을 물어서 찾아온 한 번의 만남으로 건축주와 인연이 닿게 되었다. 건축물의 중요도로 본다면 설계자를 선정하는데 있어서 많은 공을 들였어야 하는데 세 번째 만남으로 설계 계약을 할 수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인연으로 만나야 할 사람들이 서로 맺어지게 된 일이라고 보아야 할까? 건축주의 회사는 우리 사무실에서 십 분이면 오갈 수 있는 길이니 어쩌면 몇 번은 스쳐 지난 사이일 수도 있겠다. 큰..

단독주택, 밀양 무릉동 이안당怡顔堂을 오랜만에 들르니

도반에서 지은 집 2010 밀양 이안당怡顔堂을 오랜만에 들르니 밀양시 단장면 무릉리에 있는 이안당, 2010년에 지었으니 준공된 지 딱 십년된 소박해 보이는 편안한 집이다. 怡顔堂이라는 당호는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따와 건축주께서 지었는데 집을 바라보면 미소가 만면해진다는 뜻이다. 처마가 깊고 전통구들을 들였으며 넓직한 다락까지 갖춰졌으니 나의 주택설계기준이 오롯이 적용된 집이다. 집의 느낌처럼 소탈하면서 인자하신 건축주께서는 뵐 때마다 설계자인 내게 집자랑을 빠뜨리지 않는다. 집은 준공까지는 설계자와 시공자의 몫이지만 그 이후는 건축주가 만들어간다. 건축주의 초대로 오랜만에 오게 되었다. 경사지붕에 처마가 깊은 집이라 지은지 십년이나 지났지만 새집이나 다름없이 나를 반긴다. 옆 집을 구입해서 형제들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