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나는 부처다

오늘 찾은 그대의 화두는?

무설자 2005. 9. 2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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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정등 岸樹井藤

                                                                           

이제 한낮의 햇볕만 따가울 뿐 아침저녁에는 완연한 가을을 느낍니다. 올 여름이 100년 만의 더위라며 그렇게 힘들어했지만 시간이 해결해 줍니다. 사계절이 뚜렷한 이 땅에 사는 우리의 행복입니다. 하긴 일년 내내 더운 곳이나 추운 곳에서 사는 사람들도 제 나라가 좋다며 잘 살고 있을 것입니다.

 

여름이 아무리 더워도 가을을 기다리고, 겨울이 추워도 봄을 바라보는 우리는 계절 속에서 희망을 키우며 삽니다. 계절에서 견디며 사는 지혜를 배우는 것이지요. 하지만 봄이 아무리 화려한 계절이라 해도 금방 지나가고 가을의 선선함 또한 오래가지 않습니다. 어쩌면 여름이 지나면 바로 겨울을 준비하는 지혜를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가을은 여름의 더위를 잠시 식히는 짧은 휴식의 계절일 뿐인 것 같습니다. 여름을 지낸 고된 몸을 짧게 추스르고 겨울을 서둘러 준비하지 않으면 여름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불설비유경에 이와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쉬라바스티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이 때에 세존께서 대중 가운데서 승광왕(勝光王)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나는 지금 대왕을 위하여 한 가지 비유로써 생사의 맛과 그 근심스러움을 말하리니, 잘 듣고 잘 기억하시오. 한량없이 먼 겁 전에 어떤 사람이 광야에 놀다가 사나운 코끼리에게 쫓겨 황급히 달아나면서 의지할 데가 없었소. 그러다가 그는 어떤 우물이 있고 그 곁에 나무뿌리 하나가 있는 것을 보았소. 그는 곧 그 나무뿌리를 잡고 내려가 우물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소. 그 때 마침 검은 쥐와 흰 쥐 두 마리가 그 나무뿌리를 번갈아 갉고 있었고, 그 우물 사방에는 네 마리 독사가 그를 물려하였으며, 우물 밑에는 독룡(毒龍)이 있었소. 그는 그 독사가 몹시 두려웠고 나무뿌리가 끊어질까 걱정이었소. 그런데 그 나무에는 벌꿀이 있어서 다섯 방울씩 입에 떨어지고 나무가 흔들리자 벌이 흩어져 내려와 그를 쏘았으며, 또 들에서는 불이 일어나 그 나무를 태우고 있었소.”


왕은 말하였다.


그 사람은 어떻게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면서 그 보잘 것 없는 맛을 탐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때에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그 광야란 끝없는 무명(無明)의 긴 밤에 비유한 것이요, 그 사람은 중생에 비유한 것이며 코끼리는 무상(無常)에, 우물은 생사에, 그 험한 언덕의 나무뿌리는 목숨에 비유한 것이요, 검은 쥐와 흰 쥐 두 마리는 밤과 낮에, 나무뿌리를 갉는 것은 찰나찰나 목숨이 줄어드는 데, 네 마리 독사는 4대(大)에 비유한 것이며, 벌꿀은 5욕(欲)에, 벌은 삿된 소견에, 불은 늙음과 병에, 독룡은 죽음에 비유한 것이오. 그러므로 대왕은 알아야 하오. 생ㆍ노ㆍ병ㆍ사는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이니, 언제나 그것을 명심하고 5욕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하오.”


그 때에 승광대왕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생사의 근심스러움을 듣자 일찍이 알지 못했던 일이라 생사를 아주 싫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합장하고 공경하며 한마음으로 우러러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큰 자비로 저를 위해 이처럼 미묘한 법의 이치를 말씀하였사오니, 저는 지금부터 우러러 받들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장하오. 대왕이여, 그 말대로 실행하고 방일하지 마시오.”


이때에 승광대왕과 대중들은 모두 다 환희하여 믿고 받들어 행하였다.


 

 

이 가르침은 안수정등(岸樹井藤)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며 그것으로 모자라 절의 벽마다 그림으로 그려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이 가르침을 계절에 비유해 봅시다. 여름과 겨울이라는 계절을 지내면서 힘들고 모질게 버텨냈지만 가을과 봄에는 그 어려움을 깜박 잊어버리고 봄에는 꽃향기에 취해 여름을 준비하지 못하고 가을에는 선선한 바람에 마음이 동하여 겨울을 대비하는 것을 게을리 합니다.

 

갈수록 봄과 가을이 짧아진다고 합니다. 더위를 참고 땀 흘려 일하지 않으면 선선한 바람을 느끼는 것도 잠시일 뿐 곧 겨울이 오고 맙니다. 어쩌면 더위를 핑계 삼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만이 겨울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을 수 있습니다. 

 

점점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미친 코끼리를 피해 우물에 들어가 나무뿌리에 매달려 있으면서도 떨어지는 꿀맛에 취해 생사를 잊고 있는 사람과 내가 다르지 않는 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봄과 가을은 우리가 누려야 할 계절이 아니라 여름과 겨울을 준비하는 계절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일상에서 바쁜 하루의 일과를 보내고 난 저녁시간과 일주일 중에서 토, 일요일은 누리는 시간이 아니라 하루와 일주일을 되돌아보고 다음날과 다음주를 대비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시도 잊고 살아서는 버텨낼 수 없는 요즘입니다. 경전을 펴고 구절구절을 새기다보면 매일 부닥치는 현실이 모두 화두가 됩니다. 가부좌를 틀고 일대사를 해결하는  토굴의 수행자가 아닐지라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수행자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부닥친 일상에서는 어떤 화두를 들었으며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찾은 그 답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조계총림 송광사 부산분원 관음사 사보 늘 기쁜 마을 2005. 10월 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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