各房각방을 사전에 찾아보니 '저마다 따로 쓰는 방'이라고 딱 나와 있다. 이 단어가 사전에 올라와 있을까 싶어 찾아 확인은 했지만 생소하게 다가온다. 용례를 찾아보니 ‘그들은 부부 관계마저 포기한 채 각방을 쓴 지 오래다.’라고 나와 있으니 '각방'이 긍정적인 단어가 아닌 건 분명하다.
우리 집도 공식적으로는 방을 따로 쓰자고 하지는 않았지만 아내가 작은방을 쓴 지는 제법 되었다. 우리 집 침대는 킹사이즈라서 셋이 누워도 되는데 더위를 많이 타는 아내는 어느 여름부터 거실로 잠자리를 옮겼다. 그 이후부터 아내는 안방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침대를 수면용(?)으로만 쓴 지 오래라서 별문제는 없지만 어쨌든 나와 아내는 잠자리를 따로 쓰고 있다.
댁에도 각방 쓰고 있으신지요?
부부가 한 방을 쓰지 않고 따로 방을 쓰는 집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우리 부부처럼 환갑을 넘긴 나이라면 잠자리를 따로 쓰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아직 부부로 산지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방을 따로 쓰는 건 다른 문제이다. 왜 한 집에 살면서 부부가 방을 따로 쓰고 있는 것일까?
부부로 맺어지면서 약속했던 건 두 사람의 인생을 한 방향으로 보며 사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상에서 한 방향으로 보는 건 TV 뿐이라고 한다. 부부는 인생행로를 같은 방향, 한 방향으로 맞춰 사는 게 당연한데 TV를 볼 때만 한 방향이라면 문제가 있지 않은가? 아파트에 살면서 할 일이라고는 TV 보는 것 밖에 없지만 이마저도 부부가 다른 방에서 보는 게 현실이다.
부부가 방을 따로 쓰게 되면 ‘우리’라는 의미를 담았던 '부부의 공간'이 사라지게 된다. 부부가 한 집에서 사니까 ‘우리 집’은 유지되고 있다 하겠다. 그렇지만 니방 내방으로 나뉘면서 일상을 공유하는 분위기가 옅어져 가면 ‘우리집‘이라는 의미에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얼굴을 마주 보며 지내야 대화가 이루어지는데 각방살이가 무서운 건 부부가 말없는 사이가 되기 쉽다는 데 있다.
부부가 삶의 행로를 한 방향으로 보는 걸 놓치지 않으려면 일상에서 대화가 끊이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아예 방을 따로 쓰면서 대화가 줄거나 아예 말을 섞지 않으면 서로 살아가는 방향을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면 ‘우리집’이라는 배는 항로를 잃어버려 떠돌고 있는 상황에 처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집’이라는 배의 선장은 누구일까?
세상이 변하면서 死語사어가 된 말이 있는데 그 중에 家長가장과 主婦주부를 들 수 있다. 집의 주도권이 무조건 남자였던 때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세상이 바뀌었다. 여자는 살림을 하는 역할로 일컫던 말이 주부였다. 그렇지만 맞벌이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세상이라 집안일은 나누어하는 게 당연하게 여긴다.
지금은 젊은 층에서는 가장이라는 지위도, 주부라는 역할도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가정사의 주도권이 아내에게 넘어가거나 부부의 금전 관리를 아예 따로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물론 이런 가정사의 변화를 긍정 부정으로 구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각방을 쓰게 되면 ‘우리집’으로 유지하는데 금이 가는 게 아닐까?
부부가 각방을 쓰면 안방을 차지하는 쪽과 뺏기는 쪽이 생활 여건이 너무 다르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면 친구끼리 공동 경비로 여행을 갔는데 방을 따로 쓰자고 한다. 그런데 한 사람은 스위트룸을 쓰고 다른 사람은 공용욕실을 쓰는 게스트룸을 쓰자고 하면 합의에 이를 수 있을까? 이건 분명 말이 안 되는 얘기인데 부부의 각방 쓰기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 분양한 아파트의 평면도를 찾아보시라. 안방은 더 커지고, 디럭스 하게 진화되었으나 다른 방들은 현관 앞의 문간방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부부가 각방을 쓰기로 합의를 보았으나 누가 안방을 써야 할까? 당연히 ‘우리집호’의 선장님이지.
안방이 없어야만 민주적인 집이다
근래에 내가 설계하고 있는 단독주택은 안방 없는 집으로 건축주에게 제안하고 있다. 집에서 안방이란 시대착오적 호칭이라고 본다. 식구들이 평등하게 지내려면 디럭스 한 안방은 분명 권위의 상징이라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분양받아 살아야 하는 아파트에서는 권위적인 안방을 쓰지 않을 도리가 없지만 내 집을 지어 산다면 식구 모두에게 평등한 얼개를 짜야 마땅할 것이다.
내가 설계해서 지었던 단독주택 심한재에는 안방이 없다. 이 집은 부부 침실 영역을 두어 욕실을 공유하는 같은 크기의 방 두 개를 두었다. 부부가 방 하나를 같이 쓴다면 다른 방 하나는 서재로 쓸 수 있다. 부부 침실 영역은 중문을 설치해서 프라이버시가 확보되니 만약에 각방을 쓰더라도 남편과 아내의 일상이 공유된다.
지금 설계 작업 중인 상가주택의 단독주택에도 안방 대신 부부 침실 영역을 조닝 해서 진행하고 있다. 네 개의 방이 비슷한 크기인데 추후 라이프사이클 프로그램에 따라 아이들이 독립해 나가게 되면 중문을 달아 침실영역을 확보할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물론 지금은 아이들이 어느 방을 쓰더라도 부부의 방과 다름없는 평등한 식구들의 주거 생활이 가능한 모두의 '우리집'이 된다.
아파트에서 안방이라는 영역은 그 방을 쓰지 않는 식구들에게는 분명히 위압적인 공간이다. 안방은 다른 방에 비해 너무 크고 권위적인 공간이라 한 사람이 전용해서 쓰는 건 불평등하다. 부부가 각방을 쓰는 게 보편적인 주거 생활이 되어가는 세태에는 더욱 위화감을 불러 일어키는 게 안방이다. 그런데도 아파트는 왜 이런 세태를 반영해서 설계하지 않는 것일까?
전원에서든 도시에서든 내 집을 지어 살 수 있다면 꼭 식구들이 평등하게 방을 쓸 수 있도록 설계해서 지었으면 좋겠다. 부부가 평생을 한 방을 쓰며 살 수 있다면 그만한 축복이 없을 터이다. 방을 따로 쓰는 각방살이를 했는데 부부 중 한쪽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걸 다음 날 아침에 알게 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부부가 방을 따로 쓰더라도 방문은 닫지 않고 살 수 있는 사이를 유지하면 좋겠다.
부부가 각방을 쓰는 건 이제 숨길 일이 아닌 보편적인 주거 생활이 되고 있다. 그렇지만 아파트는 안방으로 말미암아 집을 쓰는데 있어 불균형 내지 불평등하게 되니 부부가 공평한 일상을 지내지 못하게 한다. 부부가 각방을 쓰더라도 문간방 두 개를 각각 쓰고 안방은 비워서 게스트룸으로 쓴다면 모를까?
필자 김정관 건축사는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들어서 팔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 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의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 김해, 양산 지역에 단독주택과 상가주택을 여러 채 설계 했으며
단독주택 이입재로 부산다운건축상, 명지동 상가주택 BALCONY HOUSE로 BJEFZ건축상을 수상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 글에서 궁금한 점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메일:kahn777@hanmail.net
전화:051-626-6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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