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여성경제신문연재-단독주택인문학

단독주택 인문학 4 - 애인 같은 집, 배우자 같은 집

무설자 2024. 7. 24. 15:57
728x90

집이 애인 같다고 하면 어떤 그림이 떠오르게 될까? 또 배우자 같다고 하면 어떤 집이 연상되는지 묻고 싶다. 아마도 애인 같은 집은 펜션이고 배우자에 해당되는 집은 단독주택에 비유해 보면 어떨까 싶다.      

 

펜션은 잠시 즐거운 시간을 갖기 위해 머무르는 집이라 외관도 유별나야 하지만 실내도 눈요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며칠 이내로 머무를 집이니 살림집처럼 갖출 건 없고 디자인만 별나게 하면 되지 않나 싶다. ‘니 내한테 반했나?’ 하듯이 시선을 끌 수 있으면 되니 펜션을 애인 같은 집으로 비유해 본다. 그러면 배우자 같은 집은 어떨까?  

    

애인과 배우자       

 

연애 상대로 사귀는 애인과 평생을 한 집에서 살아야 하는 배우자는 분명 그 선택 기준이 다를 것이다.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사람과 연애만 하겠다는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같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연애를 전제로 만나는 사람과 오래 관계를 지속하면 하수라고 한다. 그래서 플레이보이는 사람을 만나는 기술보다 잘 헤어지는 능력이 우선이라고 한다.     

 

애인은 아무래도 속마음보다 겉모습에 치중해서 찾게 될 것이다. 연인 관계가 시작될 때야 매일이다시피 만난다고 하지만 잠깐 시간을 같이 할 뿐이니 깊은 속내를 알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내 애인은 이렇게 멋진 사람이라며 남에게 자랑할 겉모습을 우선해서 찾게 된다.     

 

아침밥을 챙겨 먹고 나오는 남자보다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저녁까지 집에서 먹을 수 있으면 일상에서 그보다 더한 소확행은 없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배우자의 선택은 분명 애인과는 달라야 한다. 연인 시절에는 한시라도 떨어지면 못 살 듯이 하다가 결혼을 하고 나면 안 보고 살면 좋겠다며 싸우면서 정이 드는 사이가 배우자가 아닌가? 그러니 평생을 한 집에서 살아야 하는 배우자는 겉모습보다 마음씨가 고와야 일상이 편안하다.      

 

최고의 배우자감을 두고 하는 말이 아내는 ‘낮에는 요조숙녀, 밤에는 요부’라고 한다. 남자들이 욕심을 채우려는 우스갯말이지만 배우자의 조건은 현명한 사람이라는 걸 에둘러 말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평생을 한 사람과 살아야 하니 배우자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배우자는 현명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우리집은?   

  

애인 같은 집과 배우자 같은 집의 차이를 생각해 보자. 한 마디로 말하면 쓰임새보다 모양새-외관에 치중해서 지었으면 애인 같은 집이라 하겠고 모양새보다는 쓰임새 좋게 애써 지은 집은 배우자 같다고 하면 어떨까? 필요할 때 잠시 머무는 펜션이나 호텔은 애인처럼 지어야 할 것이고 단독주택은 당연히 배우자처럼 지어야만 만족스럽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배우자 같은 집은 우리 식구들의 생활에 필요한 쓰임새를 꼼꼼하게 챙겨야만 집을 짓고 후회하지 않는다. 밖에서 보이는 모양새는 품격이 있어야 하며 남의 이목을 너무 끄는 집은 구설수에 오르기 쉽다. '우리집'이라는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건 건축사의 능력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 품격 있는 외관이라는 모호한 표현에다 고상한 기품까지 주문한다면 어떤 집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필자 설계로 지은 단독주택에 구들을 들인 방을 쓰는 건축주는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서로 살뜰하게 챙기는 부부처럼 식구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집에 살 수 있는 건 큰 복이다

   

배우자를 잘못 선택하면 평생 사는 게 힘들 듯 우리집을 잘못 지으면 아파트처럼 옮겨 사는 게 쉽지 않으니 그런 낭패가 없다. 설계를 의뢰하면서 건축허가는 언제 받을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적지 않다. 배우자를 얻기 위해 선 보는 자리에서 결혼은 언제 할 수 있는지 묻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라 하겠다.

     

단독주택을 검색하면 수많은 이미지를 볼 수 있다. 그중에서 내 눈에 쏙 들어오는 집을 골라 저렇게 설계해 달라고 요청하는 건축주도 있으니 애인 같은 집을 짓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배우자는 평생을 같이 할 한 사람을 찾는 일이고 단독주택은 배우자 같은 집으로 설계하면 되는 일인데 그렇게 쉬울까 싶다.

 

배우자 같은 집으로 설계하려면

     

단독주택을 설계하는 과정에는 건축주와 건축사는 집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견해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디자인에 대한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건축사는 외관이 돋보이는 애인 같은 집으로 설계하려고 할 것이다. 건축주는 건축사의 디자인에 대한 열정에 제동을 걸어 배우자 같은 집으로 지을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그 기준은 우리 식구가 살고 싶은 집에 대한 생각을 꼼꼼히 정리한 메모라고 할 수 있다.

      

'우리집'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담은 건축주의 상세한 메모는 건축사의 지나친 디자인에 대한 열정을 통제할 수 있다. 물론 이 메모는 건축사의 창작의지에 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하지만 건축사가 건축주의 바람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우리 집의 설계자로 선택하는 데 고민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필자 설계 단독주택은 설계의 최종 단계에서 3D-Modeling으로 집이 지어진 상태를 미리 확인해서 마무리한다. 우리 식구가 이 집에서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지 확신이 와야한다

      

건축주가 살고 싶은 집을 배우자 같은 ‘우리집’으로 지으려면 설계를 의뢰하기 전에 여러 경로를 통해 설계지침을 작성해 두면 좋겠다. 그 지침은 모양새-외관과 관련된 내용이 아니라 어떻게 살고 싶다는 쓰임새-평면이라야 한다. 건축주가 준비한 지침은 건축사가 작업할 방향이 되기 때문에 설계 결과는 배우자 같은 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애매모호한 관념적인 메모는 건축사의 설계 작업을 진행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건축주와 건축사가 상호 보완 관계에서 설계의 방향을 구체화하려면 설계지침은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건축주의 지나친 관여는 건축사가 설계 의지를 꺾어 버릴 수 있다. 건축사가 능동적으로 설계 작업에 임할 수 없으면 사상누각이 될 수도 있다.  

 


         

밖에서 남들이 집을 보면서 멋지다고 하는 얘기를 들으려고 우리집을 지어서는 안 된다. 남의 이목에 신경 써서 짓는 집은 아무래도 ‘애인 같은 집’이 될 것 같다. 단독주택을 ‘배우자 같은 집’으로 지어내려면 평생 동반자인 배우자를 찾는 심정으로 설계를 해야만 한다.

     

‘어떤 집’은 건축주나 건축사가 일방적으로 설계하는 집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어떻게 살 수 있는 집’은 건축주와 건축사가 의견을 조율하며 함께 작업하는 집이다. 애인은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지만 배우자는 평생을 함께 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집’은 심사숙고를 통해 설계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필자 김정관 건축사는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들어서 팔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 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의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 김해, 양산 지역에 단독주택과 상가주택을 여러 채 설계 했으며

단독주택 이입재로 부산다운건축상, 명지동 상가주택 BALCONY HOUSE로 BJEFZ건축상을 수상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 글에서 궁금한 점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메일:kahn777@hanmail.net

전화:051-626-6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