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풀어 쓰는 건축이야기

건축 설계비 싸게 잘해 드린다는 말

무설자 2024. 3. 5.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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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싸고 좋은 게 있을까? 싸고 좋은 걸 두고 가성비가 좋다고 한다. 과연 싸고 좋은 게 어디 있을까? 요즘 온라인 쇼핑에 중국 업체가 들어와서 지각변동을 일어 키고 있다. 처음에는 한 곳이더니 이어서 한 곳이 더 늘어 소비자를 끌어들이려는 광고가 인터넷 망에 도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매하면서 질 좋은 제품을 찾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싼 가격에 흥미를 가지고 배송받아 써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릴 생각으로 구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몇 천 원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너무 많아서 만 원이면 두세 개를 살 수 있다.     

 

꼭 사야 할 물건은 가격도 중요하겠지만 만족할 수 있는 성능을 우선으로 두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십만 원 이상인 물건이라면 구매를 결정하면서 신중을 기하게 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품을 쉽게 할 수 있는지도 확인하게 된다. 오래 써야 할 물건을 가성비를 따져 구입하게 되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다.     

 

전자제품은 십 년을 써야 하는데     

 

TV,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은 교환 주기가 어떻게 될까? 아마도 십 년 정도는 쓰게 될 것 같은데 최신 제품의 사양이 급속도로 달라지고 있어 고장이 나지 않아도 바꾸는 경우가 많다. 가격이 만만찮은 스마트폰도 젊은 사람들은 해마다 바꾸는 걸 보는데 새로 탑재되는 기능을 쓰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몇 천만 원 이상 하는 자동차도 예전에는 최소 5년은 탔고 수리를 해가면서 십 년 이상 타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고급차를 타는 사람일수록 교환 주기가 빨라진다. 자동차의 성능이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능이 탑재되기 때문이다. 고가의 자동차를 타는 사람들은 가격을 따지지 않고 구입하는 건 아마도 달라지는 성능을 하루 바삐 만끽해야 하니까.     

 

오래된 물건에 애착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다. 소위 마니아, 덕후라고 지칭되는 사람들은 빈티지라고 하는 물건을 소장하고 쓰는데 일반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가격을 지불하고 구입한다. 세상에 몇 가지 없다는 희소가치에 투자하듯 큰돈을 쓰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물건이 비교될 대상이 없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진다.    

 

건축물을 가성비로 설계하다니  

   

건축물은 아무리 작은 집이라고 해도 땅값과 공사비, 부대비용까지 들어가는 비용이 금융의 도움 없이 지을 수 없다. 집은 지어지고 난 뒤에 후회를 한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게 된다. 최악의 경우에는 헐어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빠질 수도 있는데 설계가 잘못되어 건물이 부실해서 안전에 문제가 있을 때이다.  

   

공사를 하는 과정에 설계의 허점이나 오류가 지적되어 공사를 중단하고 설계 변경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내 경우에도 공사가 진행 중이던 건축물의 설계도면 검토를 의뢰받았던 일이 있었다. 공사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외관의 기본틀과 골조와 계단, E.V는 유지한 채로 전면 설계변경 해서 문제점을 지워내고 공사를 마무리해서 건축주의 감사 인사를 받았었다.     

 

설계 단계를 가벼이 여기면 공사를 아무리 잘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1500평에 이르는 그 건축물은 착공까지 3년이나 걸리는 복잡한 일로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했다. 그런데 실무 책임자가 나를 찾아온 그 시점에 설계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큰 낭패를 겪을 뻔했다고 했다. 그런 설계도서가 나온 이유를 알고 보니 설계비가 턱없이 싸게 책정된 것이었다.     

 

 

공공건축물과 민간건축물은 설계비에서 큰 차이가 나는데 그 근거는 소요되는 설계기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공공 자산이 되는 공공건축물은 사용 목적을 충분히 검토하고 설계가 마무리될 때까지 관련 심의를 거치며 객관성을 유지하는 절차를 밟는다. 건축물의 용도와 목적에 따라 소규모라고 하더라도 6개월 이상 소요되며 큰 규모는 2년 이상 설계 기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설계비는 작업 시간에 대한 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공공건축물은 설계기간을 오래 잡아야 하며 민간건축물은 계약하면서 설계기간을 독촉해도 되는 것일까? 설계기간을 충분하게 잡지 않고 허가받으면 그만이라는 속전속결 마인드로 짓는 건축물은 그야말로 사상누각이지 않을까 싶다.   

  

건축사 자랑이 건축주의 가장 큰 자랑     

 

내가 원하는 건축물을 짓고 싶다면 건축사를 선정하는데 온 힘을 다해야 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설계비의 근거는 아직 민간건축물 설계대가가 법제화되지 않았기에 찾을 수 없다. 공공건축물 설계 대가를 적용하기에는 행정 절차가 그만큼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무리가 있다. 그래서 민간건축물은 공공건축물 설계 대가를 산출하고 조정을 하면 어떨까 싶다.     

 

설계 과정은 건축주의 건축 목적과 대지현황 분석, 법규 검토를 진행하는 기획 설계, 기획 설계에서 검토된 사항을 도면화하면서 평면과 외관을 확정하는 계획 설계, 구조 기계 전기 소방 등 협력 업체와 허가 도서를 준비하는 기본 설계, 공사 도면을 작업하는 실시 설계 과정을 건축주와 긴밀하게 협의하며 진행되어야 한다.

 

건축사에 대한 건축주의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만족한 결과를 얻은 도반건축사사무소의 최근 작품들-단독주택 심한재, 상가주택 명지동 BALCONY HOUSE, 문현동 양명재, 에코델타시티 이안정

    

건축주와 설계자가 충분하게 소통해야 하는 설계 단계는 기획 설계와 계획 설계 과정이다. 이 과정이 지나고 나면 기본 설계 단계부터는 전문가가 진행하는 과정이 된다. 사실 건축주와 시간을 같이 하는 기획 설계와 계획 설계는 소요 기간을 언제까지라고 정할 수 없다. 건축주의 생각과 건축사의 설계 마인드가 공감대를 이루어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건축사는 건축주의 특급 참모이다. 주군인 유방 곁에 책사로 장량이 있어서 대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처럼 건축주가 바라는 집을 지으려면 유능한 건축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유방이 대업을 이룬 뒤에 장량에게 원하는 대로 가지라고 한 건 그의 공적을 알아주었기 때문이지 않은가? 설계대가는 도면 작성비가 아니라 건축사가  건축물을 목적에 맞게 지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해주는 비용이다.

 


               

설계비를 싸게 잘해 드린다는 말을 믿고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는 설계도를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을까? 설계 계약을 하면서 언제 허가를 받을 수 있는지 독촉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집을 지어야 하는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설계도가 필요한데 싼 설계비로 계약하고 허가를 독촉하는 건 사상누각을 지으려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충분한 설계 기간을 가져 제대로 된 설계도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건축사에게 지급해야 할 설계비를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내가 평생 살아야 할 집을 지으려면 얼마나 오래 다듬고 다듬어야 하겠는가? 건축주 여러분께 당신과 가족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집을 설계하는데 얼마를 지불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무 설 자

 

 

무설자(김정관)는 건축사로서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들어서 팔고 사는 대상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 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의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 김해, 양산 지역에 단독주택과 상가주택을 여러 채 설계 했으며 부산다운건축상, BJEFZ건축상을 수상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 글에서 궁금한 점을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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