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풀어 쓰는 건축이야기

우리 건축사회 새 회장, 회원들의 생존권을 사수하라

무설자 2024. 3. 1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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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건축사협회 새 회장이 선출되었다. 역대 처음 3선에 도전했던 석정훈 후보를 박빙으로 누르고 김재록 후보가 34대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석정훈 32, 33대 회장은 3선 연임의 당위성을 지난 임기 중에 진행해 온 민간건축물 설계대가 법제화를 관철시키겠다는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건축사의 밥그릇, 민간건축물 설계대가 법제화가 우리 건축사에게 얼마나 절실했는지 무모해 보이던 3선 회장 도전이 득표율에서 불과 3%의 근소한 차이로 당락이 판가름 났음을 보면 알 수 있다.

 

필자의 대표작-부산 초읍동 소재 단독주택 이입재-2010 부산다운건축상 은상 수상-도반건축사사무소

 

밥은 먹고 살아야 하는데

 

건축사로 살아가는 현실은 개점휴업 상태로 사무소 유지마저 힘 드니 미래는 내다볼 수 없이 암울한 지경이다. 민간건축물 설계비가 30년 전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데도 일이 없는 걸 한탄하고 있으니 건축사라는 직업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민간건축물 설계 대가는 우리 건축사들끼리 경쟁하며 제시하고 있으니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공공건축물 설계 대가는 합리적일까? 절대 금액으로 보면 공공건축물은 민간건축물 설계대가와는 비교할 수 없이 높게 책정되어 있다. 그렇지만 어렵사리 설계자로 계약을 하고 나서 업무를 마치고 나면 빛 좋은 개살구라는 걸 알게 된다. 설계업무 진행 과정에서 온갖 심의와 관련 협의에 시달리다 보면 설계 기간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니 업무량이 늘어나 원가를 맞추기도 급급하니 일을 하고도 이윤은 고사하고 납품 기일을 맞추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민간건축물이나 공공건축물 중 어느 쪽의 일을 하더라도 업무대가는 원가 보전을 하는 게 어렵게 되어 있다. 결국 지금 건축사가 처해 있는 현실은 밥 먹고 살기에 급급하니 어떻게 질 높은 건축물 설계를 장담할 수 있을까?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보면서

 

인기리에 방송 중인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보면서 그 시대의 고려가 처한 실정이 지금 우리 건축사들의 현실이 오버랩되어 다가왔다. 내우외환, 이 사자성어가 바로 고려와 우리 건축사가 처한 상황이 아닐까 싶다.

 

거란이 고려를 집어삼키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틈을 보이면 쳐들어오니 나라의 안위는 풍전등화의 지경에 처해 있다. 건축사는 해마다 늘어 부산만 1100명이 넘는데 업무량은 갈수록 줄고 있으니 생존이 위태로운 상태이다.

 

나라가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는데 지방 호족들은 그네들의 기득권을 챙기는데 급급할 뿐이다. 나라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고 국력을 키워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려고 하는 왕마저 해치려고 하는 게 호족들이다. 현종은 호족들에게 나라가 망하면 그 누구의 기득권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 나라를 책임질 사람이 있다면 왕의 자리를 내어주겠다고 한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 호족들, 그들에게 왕의 자리는 그들의 이익과는 상관없으니 관심 밖일 뿐이다.

 

민간건축물은 말할 것도 없고 공공건축물의 설계대가가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인데도 오로지 한 건의 계약에만 급급하다. 건축사라는 전문가의 사회적 위상은 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이니 누가 우리의 자리를 인정해 줄까? 드라마에서 현종이 호족들에게 호통을 치는 것처럼 새 회장은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회원들에게 호통이 아니더라도 건축사의 미래를 걱정해 달라고 피눈물로 호소해야 할 것이다.

 

건축사 개인보다 협회

 

건축사라는 한 개인이 부당한 일을 당해도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건축주와의 갈등이 있거나 대관 작업에서 동의할 수 없는 일에 처해도 건축사 개인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러저러한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협회가 든든한 뒷배가 되어 해결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건축사의 자존감을 세우기 위한 근본이자 기본은 합당한 대가를 받고 질 높은 설계와 감리를 수행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업무 건수가 적어서 건축사가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기도 하지만 턱 없이 낮은 설계대가로 계약만 서두르는 자충수가 우리의 현실을 이 지경에 이르게 한 것이다. 30년 전 설계 대가로는 계약하자마자 허가 준비를 서두르게 하지만 일을 위해 받아야 하는 대가라야 질 높은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설계 기간을 확보해 낼 수 있다.

 

물론 협회가 모든 회원의 밥그릇을 책임질 수는 없다. 하지만 질 높은 설계를 하기 위해 그에 맞는 합당한 설계비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협회의 정책과 방침이 나와야 한다. 이에 따르는 회원이 더 나은 여건의 업무 환경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새 회장의 모든 정책은 건축사가 밥을 먹고 살 수 있는 생존권 사수에 총력을 다해주어야 할 이유이다.

 


 

건축물은 도시 경쟁력을 결정하고 시민들의 질 높은 삶을 보장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중차대한 과업을 수행하고 있는 건축사들이 생존권에 목을 매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지 않은가? 꼬시래기 제 살 뜯어먹는 식의 살벌한 수주경쟁으로 30년 전 설계대가로 일을 해야 하며, 공공건축 설계 수주를 위한 설계 경기에 심사위원과의 뒷거래가 더 이상 험담이 아닌 지금 우리 건축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새로 선출되는 회장은 꼭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건축사신문 2024년 3월호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