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이야기

할아버지, 차 마실까요?

무설자 2022. 8. 1.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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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220801

할아버지, 차 마실까요?

 

 

 

내 손주 지형이는 이제 두 돌을 갓 넘긴 아기다. 두 돌이 막 지났으니 아직 아기라고 불러야 하는지 어린이라 해야 할지 모르지만 할아버지인 나와 찻자리를 가지는 茶友다우이다. 주말이면 우리집에 오는데 들어서자마자 내게 차를 청한다.


지형이가 나와 차를 마시기 시작한 건 어버이날인 5월 8일이었다. 서재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지형이가 내 앞에 앉더니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빈말을 던졌다.  


“지형이 차 마실래?”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한 얘기에 지형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마시던 차는 숙차였는데 작은 잔에 물을 많이 타서 연하게 주었더니 앙증스러운 손으로 야무지게 잔을 쥐고는 홀짝 마시지 않는가?
“지형이 차 잘 마시네? 한 잔 더 줄까?”


또 고개를 끄덕이기에 한 잔 더 주었더니 받아 마시고는 연거푸 몇 잔을 마셨다. 지형이가 차를 마시는 그 자체도 신기하지만 3 분 가까이 가만히 앉아 있는다는 게 더 놀랄 일이라고 딸이 얘기한다. 두 돌배기 아기는 단 일초도 정지 동작 없이 몸을 움직이는데 어떻게 가만히 앉아 있는지 모를 일이라는 것이다.

 


그날 이후 우리집에 와서 할아버지 얼굴을 보자마자 던지는 첫마디가 차를 청하는 말이다. 두 달 전에는 서툰 말로 “하부지 차 마시까?”였는데 어린이집의 교육 덕분인지 이제는 존댓말로 “할아버지 차 마실까요?”이다. 하룻밤을 자고 가는 날은 수시로 차를 청하기에 카페인이 없는 대용차를 준비해서 손주의 차 생활을 돕고 있다.


손주가 차 생활을 시작한 지 석 달이 되어가고 있다. 아내는 손주가 앉을 방석을 준비하고 경기도 안산에 사는 다우께서는 茶服다복이라며 개량 한복을 보내왔다. 다복을 보내준 다우도 손주들과 함께 차를 마시는데 손주들에게 다복을 입힌다면서 새로 구입하면서 지형이 옷도 같이 샀다고 했다.

 


할아버지와 두 돌배기 손주가 마주 앉아서 차 마시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라. 아직 茶談다담을 나눌 나이는 아니지만 찻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이 모습만으로도 祖孫關係조손 관계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가? 혈연으로 맺어진 사이라 하더라도 공유할 그 무엇이 있어야만 시간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아직 차가 무엇인지, 함께 주고받을 대화도 없지만 마주 앉아 찻자리를 가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모른다.


내 손주로 온 지형이, 할아버지에게 차를 청하는 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우연이라고 봐야 할까? 그날 차를 마시는 내 앞에 앉았던 일을 단순한 해프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계속되는 찻자리는 필연이라 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나와 손주는 그리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는 必然필연, 만날 수밖에 없는 인연인 必緣으로 만나게 되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佛家불가에서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도 전생에서 몇 겁의 인연이 쌓인 사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형이와 나는 혈연으로 맺어지기 위해 전생에 어떤 사이로 지냈을지 무척 궁금하다. 어제도 우리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면서 몇 번이나 찻자리를 가졌는데 이제는 할아버지에게 차를 건네기도 한다. 전생에서 다우로 얼마나 깊은 茶情다정을 나누었으면 “차 마실까요?”라는 말이 이렇게 익숙하게 들리는 것일까?


손주가 태어난 소식을 온라인 차 카페에 자랑삼아 올렸었다. 그때 카페지기께서 지형이 사진을 보내달라고 말씀을 하셨다. 그분이 왜 지형이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는지 궁금해하지도 않았는데 큰 선물이 도착했었다.


마침 보내드렸던 그 사진이 지형이가 활짝 웃는 모습이었다. 보름달 같은 餠茶병차, 지형이가 활짝 웃는 모습으로 사진이 들어간 포장지로 탄생 기념차를 만들어서 보내주셨다. 지형이가 할아버지와 다우가 될 수밖에 없는 인연을 그분이 어떻게 아셨을까?

 


다우로 맺어진 할아버지와 손주, 내가 이생에 인연이 다하는 그날까지 지형이와 찻자리를 가지며 茶情다정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손주로 온 나의 다우 지형이, 이생에서도 전생에서 못다 한 정을 지금부터 나누며 좋은 벗으로 지낼 수 있도록 애쓸 것이다. 찻잔을 마주하는 자리에서는 지형이가 몸으로 먹은 나이를 잊고 다우라는 벗이 되어 내게 차를 청하는 듯하다.
“여보게 무설자, 차 한 잔 하세나.”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