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211026
보이차 입문 4 - 천변만화의 매력을 가지는 생차
보이차의 시작은 숙차로 하는 것이 좋다는 얘기를 했다. 기실 숙차를 마시면서도 선뜻 차의 향미에 선뜻 빠져들 수 없는 분이 많지는 않을까 싶다. 차의 향미로 따지자면 무이암차, 철관음 등으로 대표되는 우롱차에 숙차를 가져다 댈 수 없다. 또한 풋풋하고 감미로운 녹차의 향미에도 따를 수 없는데 왜 보이차에 빠져드는 것일까?
보이차, 특히 숙차는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밥과 같은 차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리 마셔도 물리지 않아서 하루 종일 마시기 때문이다. 또 뚜렷한 향미가 없지만 마시는 차마다 다르고, 같은 차라도 마실 때마다 다르게 다가온다. 밥맛이 달고 향기로우면 매일 먹을 수 없듯이 숙차도 그렇다.
보이차는 아무리 마셔도 물리지 않아서 밥 같은 차
보이차는 뚜렷한 향미는 없지만 마시다 보면 차마다 다른 향미를 음미하게 된다. 산지마다 다르고 특징과 보관한 시기나 장소에 따라 달라진 세월과 보관환경이 만들어낸 향미의 다양성의 매력에 끝없이 빠져들게 되는 차가 보이차이다. 그래서 보이차는 한 가지 차가 아니라 수백 편, 수천 편의 차가 다른 향미를 가지고 있으니 그 넓이와 깊이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생차는 숙차와 어떻게 다른가?
앞선 글에서 보이차는 생차와 숙차가 있다고 했다. 숙차는 덩어리 차로 만들기 전의 원료인 모료를 급속 발효시켜서 만든다. 발효라는 과정을 거쳐 숙차로 만드는 이유는 운남성 대엽종 찻잎의 특성인 쓰고 떫은맛을 줄여서 마시기 쉽도록 한 것이다.
그러면 발효 과정을 거치지 않고 모료를 그대로 써서 덩어리차로 만든 차는 없을까? 대엽종 찻잎을 발효시키지 않고 마시는 차가 바로 생차이다. 그러면 생차는 쓰고 떫을 텐데 어떻게 마실 수 있을까?
50년 이상 된 생차인 홍인은 억대, 100년 가까운 생차인 호급차는 골동차
물론 쓰고 떫은맛을 가진 일반 생차는 10년 이상 보관해서 떫은맛이 줄어들었을 때 마시게 된다. 20 년, 30 년으로 보관된 기간이 길어질수록 차의 향미는 부드럽고 깊은 맛을 내어준다. 그래서 오래된 보이차로 50년 이상 된 홍인은 거래가가 억대가 되는 것이다. 백 년 가까이 되는 호급차는 골동차로 경매를 통해 가격이 결정된다.
숙차가 시장에 나오게 된 시기는 1975 년경인데 초기에 만든 차라고 해서 생차처럼 높은 가격이 형성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생차처럼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차의 향미가 독특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숙차는 대략 십 년 전후에 향미는 절정에 이르게 되고 그 이후는 오히려 향미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숙차는 만들어서 바로 마시는 차로 개발되었다.
생차를 만드는 모료는 고급
차나무라고 하더라도 고급이 있고 하품이 있을 것이다. 보이차가 나오는 운남성에는 산 전체를 차나무가 심긴 사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보이차가 아니라 대부분의 차는 재배 관리가 편리하도록 관목 형태로 빽빽하게 심어져 있다. 홍차가 나오는 인도나 스리랑카도 그렇고 중국의 녹차밭도 그렇다. 우리나라도 보성이나 제주의 차밭도 마찬가지이다.
밀식 재배 다원의 차나무는 새잎이 나오면 수시로 따낸다. 나무의 입장에서 잎이 계속 떨어져 나가면 어떨까? 제 몸의 일부가 뜯겨 나가니 얼마나 아플까? 그래서 나무도 살기 위해서 저항 물질을 분비한다는데 쓰고 떫은맛이라고 한다. 그래서 재배차의 잎으로 만들면 차맛이 쓰고 떫다는 것이다.
100년 이상된 차나무를 고차수古茶樹라고 부르는데 이 차나무 잎으로 만든 차를 고수차라고 부른다
반면에 교목으로 크는 차나무는 자연 생태 환경이므로 다원차와는 다른 향미를 가지게 된다. 생태 환경의 교목 차나무에서는 보통 봄과 가을에만 채엽을 하므로 차나무 본연의 향미를 음미할 수 있다. 키가 큰 교목 차나무는 관목에 비해 채엽 여건이 좋지 않아서 원가가 높은 차가 된다. 대규모 다원에서 밀식 재배되는 관목 차나무는 생산량이 많아서 모료의 값이 교목에 비해서 싸다.
생차는 주로 교목 차나무 잎으로, 숙차는 관목 차나무 잎이 원료가 되므로 차 가격이 차이가 나게 되는 것이다. 2000년 전후로 교목 차나무의 진가가 알려지게 되었고 야생 생태 환경에 가까운 고수차古樹茶가 시장에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100년 이상된 차나무를 고차수古茶樹라고 부르는데 이 차나무 잎으로 만든 차를 고수차라고 부른다.
고수차로 재평가된 생차
숙차가 개발되면서 보이차는 세계인에게 알려지게 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 중국인들은 고수차가 평가되면서 주목하게 되었다. 보이차를 칭해서 월진월향越盡越香의 차라고 부르는 건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보이차를 상품으로 볼 때 팔리지 않아도 보관의 가치가 있어서 재고의 부담이 없는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고수차는 차나무가 한정되어 있으니 향미가 좋다고 알려진 차에 자본이 집중되었다. 2010년 전후로 고수차가 자본가의 관심에 의해 시장의 평가를 받게 되었고 찻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이 때문에 중국 대륙으로 보이차가 알려지면서 차를 마시는 사람보다 상품을 매입하려는 상인들에 의해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물론 보이차의 홍보는 자연스럽게 대륙 전체에 광품으로 소용돌이쳤다.
숙차가 개발되면서 보이차는 세계인에게 알려지게 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 중국인들은 고수차가 평가되면서부터 주목하게 되었다
생차는 고급 모료를 써서 고수차라는 이름으로 나오게 되고 산지마다 다른 향미의 특성을 내세우게 되었다. 2000년대까지는 대익 7542 등의 여러 산지의 차를 병배 해서 차맛을 만들어낸 생산자 상표로 생차가 구분되었다. 그러나 고수차가 시장을 움직이게 되면서 산지의 이름이 상표가 되는 시기가 2010년 이후라고 보면 되겠다.
2009년에 5만 원대로 구입할 수 있었던 고수차가 2020년에는 300만 원이라면 시장의 변화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겠다. 같은 산지가 표기된 차라도 10만 원으로 파는 차가 있는가 하면 100만 원이 넘는 차도 있으니 보이차가 알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게 된다. 아무튼 생차는 더 고급화되어 구입 가격은 한 해 다르게 치솟고 있다.
매일 마셔도 물리지 않는 차, 수천 편, 수만 편이라도 다 다른 차가 되는 월진월향의 매력이 있는 차, 나만 가지고 있는 희소가치에 의해 가치를 내세우는 차가 보이차
보이차 입문은 숙차를 마시면서 시작하지만 차의 가치에 매료되는 건 생차라고 할 수 있다. 산지마다 다르고 모료의 급수에 따라 다른 차, 보관 장소와 기간에 따라 천변만화하는 향미의 변화를 감지하게 되면 그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구입해서 시간만 지나면 가치가 오르는 건 틀림없지만 차의 선택이 잘못되면 쓰레기가 되는 함정도 있다.
매일 마셔도 물리지 않는 차, 수천 편, 수만 편이라도 다 다른 차가 되는 월진월향의 매력이 있는 차, 나만 가지고 있는 희소가치에 의해 가치를 내세우는 차가 보이차이다. 한통 가격으로 한 편을 구입해야 한다는 소장所藏의 의미를 투자 개념으로 삼아야 하는 선택의 어려움이 있는 차가 보이차이다. 넓고 깊은 보이차의 세계는 생차에서 한정되지 않는다. 발효의 기술이 개발되면서 달라지는 숙차 이야기를 다음 편에서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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