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도반에서 지은 집

세계 최고의 어린이안경, 토마토안경 사옥 설계를 시작하면서

무설자 2022. 1. 10. 17:52
728x90

貴人을 만난다는 말이 있다.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특별한 분과의 인연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어쩌면 건축사로서 만나게 되는 건축주는 다 귀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인연이 된 건축주는 예사로운 분이 아니어서 설계를 하게 된 건축물에 대한 부담이 밀려온다.

 

일을 의뢰하고 싶다는 전화 한 통화와 길을 물어서 찾아온 한 번의 만남으로 건축주와 인연이 닿게 되었다. 건축물의 중요도로 본다면 설계자를 선정하는데 있어서 많은 공을 들였어야 하는데 세 번째 만남으로 설계 계약을 할 수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인연으로 만나야 할 사람들이 서로 맺어지게 된 일이라고 보아야 할까?

 

건축주의 회사는 우리 사무실에서 십 분이면 오갈 수 있는 길이니 어쩌면 몇 번은 스쳐 지난 사이일 수도 있겠다. 큰 인물은 고향에서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 그 얘기는 가까이 있는 사람은 소홀히 여기게 된다는 말이다.

 

회사의 미래와 가족의 행복을 담아야 할 집

 

건축주는 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지명도를 가지고 있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 분이 그 분야에서 일가견을 이루어서 회사의 사옥을 짓게 되었다. 사옥에는 그 분의 주택이 포함되어 있어서 더 발전할 회사의 미래와 가족들의 행복한 삶을 담아내야 한다.

 

건축주의 회사는 토마토안경이라는 어린이 안경 전문 브랜드이다. 토마토안경은 일본, 영국, 터키, 뉴질랜드 등 세계 시장에서 단연 톱브랜드로 지명도를 얻고 있다. 어린이 안경 분야에서는 수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어서 타 업체의 추종을 불허하는 유망회사이다.

 

천신만고 끝에 안정적인 경영 단계에 들어와서 사옥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회사가 안정권에 들기까지 가족들과 회사 직원들의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이제는 번듯한 사옥을 지어서 힘들게 달려온 지난 시간을 보상하고 더 큰 미래를 기약하자는 포부를 밝혔다.

 

사옥의 최상층에 사택을 짓는 이유도 단순히 주택을 짓는 게 아니었다. 건축주는 이 회사의 CEO이지만 제품을 연구하고 브랜드 파워를 일구어내는 디자이너라고 했다. 그의 업무는 일상에서 잠 자는 시간까지 이어지기에 집과 회사가 한 건물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어떻게 설계자로 나를 택했을까?

 

건축주 부부가 우리 사무소로 찾아왔던 그 날 사옥을 지을 땅의 토지비 잔금을 치렀다고 한다. 설계자를 여러 경로로 찾을 수 있었지만 회사 주변에서 찾아보자며 인터넷을 보다가 우리 사무소를 확인했다고 한다. 나와 잠깐 나눈 대화에서 일을 의뢰해도 좋겠다는 깊은 신뢰가 생겼다고 한다.

 

건축주의 얘기를 듣자니 사옥을 지을 수 있게 된 지금까지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의 길을 걸어왔었다. 특히 일본으로 안경을 수출하는 길을 열기 위해 500 차례가 넘는 비행기를 탔다고 하니 그 힘든 여정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그 과정에서 일본 사람이 안경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해 주기도 했다는 얘기에서 건축주가 얼마나 진심으로 사람을 대했는지 알 수 있었다.

 

눈물과 땀으로 이루어낸 결실은 매년 수출에서 지속적으로 연 20%씩 매출 성장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그 성장의 비결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성심을 다하는데 있다고 했다. 사옥의 설계자도 스타 건축사가 아니라 자주 만나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내려고 했다고 한다.

 

회사와 집이 하나가 되는 사옥, 일과 일상이 나누어지지 않는 건축주의 생활은 건축사의 손 끝에서 설계가 마무리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대화를 나눌만한 건축사를 원했고 첫 만남에서 나를 낙점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한다. 그의 과거를 내 마음에 담아 회사의 미래와 가족의 행복을 집으로 응축시키는 일에 동참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가슴 설레는지 모른다.

 

토마토안경은?

 

 

건축주를 처음 만났던 날에 그의 얘기를 듣고 짧은 동화를 썼다. 그가 어린이안경을 만들게 된 이유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 때문이었다. 아들의 시력이 너무 나빠졌지만 알맞은 안경을 구할 수 없어 손수 만들기로 했고 마침내 어린이안경 분야에서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워냈다고 했다.

 

엄마 아빠는 아이를 위해 정원에 토마토를 키웠어요.

토마토가 빨갛게 익으면 아이는 너무 너무 좋아했지요.

토마토를 너무 좋아하는 아이를 보면서 엄마 아빠도 행복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토마토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데요.

탐스럽게 자란 빨간 토마토는 날마다 아이를 기다렸습니다.

토마토는 아이가 보이지 않아서 풀이 죽어 시들어갔습니다.

 

아빠는 눈이 나빠진 아이를 위해 안경을 찾으러 다녔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우리 아이에게 딱 맞는 안경을 찾지 못했지요.

생기를 잃어버린 정원의 토마토는 아이를 기다리고 기다렸답니다.

 

아빠는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안경을 직접 만들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아빠의 아이를 위한 사랑으로 안경을 만드느라 얼마나 많은 밤을 새웠는지 모른답니다.

마침내 아빠는 아이에게 딱 맞는 안경을 만들어내게 되었답니다.

 

아이는 아빠가 만들어 준 안경을 끼니 다시 잘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안경을 낀 아이는 정원으로 달려나가 토마토를 찾았습니다.

시들어서 빨간 색을 잃었던 토마토가 다시 싱싱해지지 않겠습니까?

 

아빠가 사랑으로 만든 안경으로 다시 토마토를 잘 보게 된 아이는 너무 기뻤습니다.

아이가 찾아온 정원의 토마토도 다시 기운을 차리게 되니 더 탐스런 열매를 맺었습니다.

아빠가 만든 안경으로 아이와 토마토는 다시 행복하게 살게 되었답니다.

 

 

아이를 위한 사랑으로 어린이안경을 직접 만들어서 아내와 함께 지금의 기적같은 성과를 만들어낸 건축주, 직원들과 함께 세계를 무대로 회사를 반석 위에 올린 노고의 결정체로 사옥을 짓는다. 건축주의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과 직원들을 회사의 미래와 함께 하겠다는 진한 애정을 잔잔한 얘기로 들을 수 있었다. 건축물은 한 사람의 인생이 응축되어 지어져서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지며 일과 일상의 행복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사람과의 만남은 인연이다. 설계를 시작하면서 건축주의 지난 삶을 여섯 시간에 걸쳐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지난했던 삶을 어찌 그 짧은 시간에 들은 얘기로 이해하고 집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또 건축주는 일과 가족에 관한 얘길 누구에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 설계가 마무리되는 그 때 쯤에는 내가 그의 삶을 가늠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설레는 마음을 다잡으며 토마토안경 사옥 설계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