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에세이 건축 이야기
화목한 식구들의 웃음이 담장을 넘는 집, 기장 양화당養和堂
내가 이십여 년 설계했던 작업 중에 주택으로는 두번 째 작업이었던 양화당은 2000년에 준공을 했었습니다. 규모가 그렇게 큰 집이 아니었지만 그 당시로는 이 정도로 짓는데도 호화주택이라는 소리를 들었답니다. 집의 위치는 기장군 장안읍, 인근의 장안제일고등학교에 특강을 하러 갔던 길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그 날이 평일 이었음에도 건축주 부부가 마침 집에 있어서 반가운 만남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집이 완성되어 막 입주할 무렵과 십수 년을 살고 난 뒤의 집에 대한 사용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설계자가 집에 대한 특별한 의지를 가지고 작업할수록 사용자는 불편하거나 익숙해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건축사 자격을 취득한지 오래지 않았던 때에 의욕이 넘치던 시절이었던지라 과욕이 실용성을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벨을 누르자 대문이 열리면서 건축주께서 잠깐 제 얼굴을 확인해야 했었지요. 15년 가까이 지난 세월은 나도, 건축주도 변해버린 모습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통성명을 거치니 만면한 웃음과 손을 마주 잡고 흔들면서 지난 시간을 뛰어넘어 지인知人의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두 가지나 되는 과일과 커피가 담긴 접시를 보면서 이 분들이 이 집에서 만족하며 살고 있구나하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집이 지어지고 난 뒤에 방문을 해보면 환대해 주는 건축주의 반기는 표정으로 집에 대한 점수가 매겨지는 셈입니다.
이 집의 외장은 그 당시 보급되기 시작했던 드라이비트라 부르는 외단열재, 지붕은 아스팔트 슁글이었으니 수수한 집이라 하겠습니다. 그 당시 기장군 장안읍이면 시골이었는데다 수자원 보호구역이라 주변은 거의 농가 수준의 소박한 집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허가 과정부터 호화주택이 아니냐는 담당 공무원을 설득해야 했었고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도 이웃들의 눈길을 끌었었지요.
공사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 감리를 나갔을 때 미장공이 제게 흙손이 잘 나가지 않는다는 말을 했습니다.
"왜요? 모르타르 배합을 너무 되게 해서 그런가요?"
"아니요. 제가 이렇게 좋은 집은 처음 지어보는지라 손이 떨려서 그렇습니다."
그 미장공 뿐 아니라 현장을 지휘했던 목수의 열정 또한 대단했었답니다.
"이런 좋은 집을 다시 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새로 짓는 집이라도 블록조 평슬라브집만 짓던 당시로서 그 분들을 의욕에 불타오르도록 했던 설계였나 봅니다.
집의 얼개를 보면 오른쪽은 안방과 거실을 두고 왼쪽은 앞으로 돌출시켜 할아버지 방과 자매였던 딸들의 방을 두었습니다. 두 공간이 만나는 부분에 주방과 식당, 욕실을 배치하고 안방 위에는 취미실로 쓸 수 있는 다락방, 작은 방 위에는 수납용 다락이 설치되었습니다. 거실 위에는 정자 개념의 공간까지 두었으니 그럴만도 했었겠지요? ㅎㅎㅎ
사방을 돌아가면서 처마가 둘러져 있어서 15년이나 지난 집이지만 외벽은 도색을 다시 하지 않았는데도 깨끗했습니다. 내부에 벽지를 새로 바르기만 했을 뿐 새집처럼 쓰고 있다며 설계를 잘 해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5년 전에 어르신이 세상을 버리셨고 아이들은 좋은 학교를 나와 큰 딸은 출가를 했고 작은 딸은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 합니다.
화목한 집을 이루는 집이라는 양화당養和堂이라는 당호를 쓴 그대로 잘 살았던 家歷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밤이 되면 밝혀진 방의 불빛이 마당을 밝히는 분위기가 화목한 집을 이루도록 계획의 개념을 잡았었지요. 설계자가 떠 올린 집에서 15년을 행복하게 산 흔적을 집에서 읽어내고 이야기로 들으니 저도 행복했습니다.
우리네 삶에서 집이란 무엇일까요? 어떤 집에서 산다며 밖에서 보이는 외관을 자랑하기보다 그 집에서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저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확인한 하루였습니다. 규모도 크지 않고 외관도 수수한 집이지만 화목한 웃음이 담장을 넘는 집, 15년만에 찾았던 양화당을 뒤로 하는 발걸음은 날듯이 가벼웠습니다.
무 설 자
부산 단독주택 설계, 마당, 다락, 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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