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도반에서 지은 집

화목한 식구들의 웃음이 담장을 넘는 집, 기장 양화당養和堂

무설자 2015. 6. 29.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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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건축 이야기

화목한 식구들의 웃음이 담장을 넘는 집, 기장 양화당養和堂

 

 

15년만에 건축주를 만나 기념사진 한 컷

 

 

내가 이십여 년 설계했던 작업 중에 주택으로는 두번 째 작업이었던 양화당은 2000년에 준공을 했었습니다. 규모가 그렇게 큰 집이 아니었지만 그 당시로는 이 정도로 짓는데도 호화주택이라는 소리를 들었답니다. 집의 위치는 기장군 장안읍, 인근의 장안제일고등학교에 특강을 하러 갔던 길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그 날이 평일 이었음에도 건축주 부부가 마침 집에 있어서 반가운 만남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집이 완성되어 막 입주할 무렵과 십수 년을 살고 난 뒤의 집에 대한 사용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설계자가 집에 대한 특별한 의지를 가지고 작업할수록 사용자는 불편하거나 익숙해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건축사 자격을 취득한지 오래지 않았던 때에 의욕이 넘치던 시절이었던지라 과욕이 실용성을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벨을 누르자 대문이 열리면서 건축주께서 잠깐 제 얼굴을 확인해야 했었지요. 15년 가까이 지난 세월은 나도, 건축주도 변해버린 모습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통성명을 거치니 만면한 웃음과 손을 마주 잡고 흔들면서 지난 시간을 뛰어넘어 지인知人의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두 가지나 되는 과일과 커피가 담긴 접시를 보면서 이 분들이 이 집에서 만족하며 살고 있구나하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집이 지어지고 난 뒤에 방문을 해보면 환대해 주는 건축주의 반기는 표정으로 집에 대한 점수가 매겨지는 셈입니다.

 

 

나무가 집의 높이보다 훌쩍 자란 것을 보면서 지난 세월을 가늠해 보게 됩니다

 

 

이 집의 외장은 그 당시 보급되기 시작했던 드라이비트라 부르는 외단열재, 지붕은 아스팔트 슁글이었으니 수수한 집이라 하겠습니다. 그 당시 기장군 장안읍이면 시골이었는데다 수자원 보호구역이라 주변은 거의 농가 수준의 소박한 집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허가 과정부터 호화주택이 아니냐는 담당 공무원을 설득해야 했었고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도 이웃들의 눈길을 끌었었지요.

 

 

 


공사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 감리를 나갔을 때 미장공이 제게 흙손이 잘 나가지 않는다는 말을 했습니다.

"왜요? 모르타르 배합을 너무 되게 해서 그런가요?"

"아니요. 제가 이렇게 좋은 집은 처음 지어보는지라 손이 떨려서 그렇습니다."

 

그 미장공 뿐 아니라 현장을 지휘했던 목수의 열정 또한 대단했었답니다.

"이런 좋은 집을 다시 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새로 짓는 집이라도 블록조 평슬라브집만 짓던 당시로서 그 분들을 의욕에 불타오르도록 했던 설계였나 봅니다.

 

 

양화당 모형

 

 

집의 얼개를 보면 오른쪽은 안방과 거실을 두고 왼쪽은 앞으로 돌출시켜 할아버지 방과 자매였던 딸들의 방을 두었습니다. 두 공간이 만나는 부분에 주방과 식당, 욕실을 배치하고 안방 위에는 취미실로 쓸 수 있는 다락방, 작은 방 위에는 수납용 다락이 설치되었습니다. 거실 위에는 정자 개념의 공간까지 두었으니 그럴만도 했었겠지요? ㅎㅎㅎ

 

 

넓지 않은 대지라 도로면은 박공면이 보이는데 15년을 쓴 집이지만 처마가 사면을 두르고 있어 외벽은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사방을 돌아가면서 처마가 둘러져 있어서 15년이나 지난 집이지만 외벽은 도색을 다시 하지 않았는데도 깨끗했습니다. 내부에 벽지를 새로 바르기만 했을 뿐 새집처럼 쓰고 있다며 설계를 잘 해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5년 전에 어르신이 세상을 버리셨고 아이들은 좋은 학교를 나와 큰 딸은 출가를 했고 작은 딸은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 합니다.

 

화목한 집을 이루는 집이라는 양화당養和堂이라는 당호를 쓴 그대로 잘 살았던 家歷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밤이 되면 밝혀진 방의 불빛이 마당을 밝히는 분위기가 화목한 집을 이루도록 계획의 개념을 잡았었지요. 설계자가 떠 올린 집에서 15년을 행복하게 산 흔적을 집에서 읽어내고 이야기로 들으니 저도 행복했습니다.

 

 

블록으로 쌓은 소박한 담장, 이 담을 넘어 늘 웃음이 넘치는 집입니다. 그래서 양화당...^^

 

 

우리네 삶에서 집이란 무엇일까요? 어떤 집에서 산다며 밖에서 보이는 외관을 자랑하기보다 그 집에서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저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확인한 하루였습니다. 규모도 크지 않고 외관도 수수한 집이지만 화목한 웃음이 담장을 넘는 집, 15년만에 찾았던 양화당을 뒤로 하는 발걸음은 날듯이 가벼웠습니다.

 

 

무 설 자

 

 

부산 단독주택 설계, 마당, 다락, 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