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이야기

보이차와 월진월향

무설자 2021. 10. 23.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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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는 후발효차로 분류하는데 후발효란 처음에 만들어진 차가 시간과 함께 긍정적으로 변화한다는 의미이다. 같은 산지의 차를 해마다 달라지는 성분과 마실 때 구감에서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성분과 구감을 알아본다는 건 보이차를 즐겨 마시는 입장에서는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의 내용은 다음 카페 죽로재 보이차의에 운영자인 다향님이 올린 글인 '보이차의 저장과 성분 변화'의 댓글에서 옮겨와 정리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보이차의 성분은 어떻게 변화되나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보이차는 만들어진 그해에 마셔도 되지만 시간의 변화와 함께 달라지는 향미에 더 가치를 두는 차이므로 이 글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보통 보이차는 생차와 숙차로 대별되고, 다시 생차는 보관 환경에 따라 건창과 습창으로 구분하게 된다. 보이차는 차의 주성분이라고 할 수 있는 폴리페놀 함량이 녹차에 비해 큰 차이가 있어서 쓰고 떫은맛이 많아 만든 그해에 바로 마시는데 부담이 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 폴리페놀 성분이 낮아지는 시점이 되면 마시기 좋은 상태가 된다.

그래서 오래 묵은 보이차의 가치가 높게 평가되어 만든지 70 년 가까이 되는 홍인은 억대를 호가하고 있다. 그렇지만 몇 십 년동안 보관된 차가 대중적으로 유통되기는 어렵다. 그래서 시간을 다툴 수 없으니 습도를 높이거나 물을 뿌려 미생물을 이용한 발효라는 공정으로 익힌 차가 나오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홍콩으로 가져간 생차가 고온다습한 기후에 급속도로 익어 차의 향미가 그 쪽 사람들의 구미에 맞았다. 소비가 적어서 저렴했던 생차는 홍콩에서 급속도로 수요가 일어났다. 미생물 발효로 차가 익는 홍콩창 보이차, 습창 보이차의 인기는 그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운남성에서 바라보면 기가 찰 일이 홍콩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습창으로 생차를 익히는 기술이 발전되면서 보이차의 새로운 시대가 열린 셈이지만 운남성에는 별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운남성에서는 미생물 발효 기법을 연구개발하기 시작하여 1973년에 숙차라는 새로운 보이차를 출시하게 되었다.

기실 보이차가 중국 변방의 이름없는 차에서 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된 건 미생물 발효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때는 홍제에게 진상품이었던 때도 있었지만 중국 사람들도 잘 마시지 않던 차가 보이차였다. 그러다보니 미생물 밣효기법을 접목하게 된 것도 값싼 차를 누구나 마실 수 있도록 연구 개발하게 된 것이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도대체 해마다 봄이 되면 새 차가 나오고 그 때까지 소비되지 않은 지난 차는 폐기처분되고 마는데 보이차는 왜 오래될수록 몸값이 올라가는 것일까? 건창 보이차로 70 년이 지난 홍인이라는 차는 억대를 호가한다니 과연 그 정도의 돈을 지불할만큼 특별한 맛이 있기는 한 것일까?

죽로재 보이차의 다향님은 2년 정도 보관된 건창차와 습창차, 숙차를 대상으로 시간과 차의 변화를 실험해서 차 성분 중 중요한 몇 가지를 살펴 보았다고 한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

1. 보이차의 발효, 즉 악퇴발효, 습창보관은 차의 폴리페놀과 아미노산의 함량을 보두 감소 시킨다. 그리고 차갈소는 증가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즉, 악퇴 습창 건창은 세 가지 성분을 모두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2. 악퇴와 습창은 보이차의 폴리페놀, 아미노산 및 수용성 침출물, 차홍소의 함량을 초기에 감소시킨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더 감소시킨다. 반대로 차갈소와 카페인의 함량은 증가하는데 이런 규칙은 악퇴와 습창에서 같은 추세를 보인다. 즉 미생물의 참여가 활발한 악퇴 습창에서 화학성분의 변화가 같다는 것이다.

3. 건창 보관과 습창 보관, 그리고 악퇴 발효 때 나타나는 변화가 같은 것은 폴리페놀, 아미노산, 차갈소의 감소이다. 건창 보관과 악퇴 발효는 차황소를 소량 증가시켰다. 그리고 건창 보관을 할 때만 보였던 변화는 수용성 침출물과 차홍소 함량의 증가이다. 카페인은 천천히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4. 보이차의 보관, 혹은 악퇴 중 차에 착생하는 미생물의 수량은 온도, 습도와 관계가 있다. 습창, 건창 보관 방법과 악퇴 발효 시에 발생하는 미생물의 수량은 차의 화학성분의 변화 속도와 깊은 관계가 있다. 즉, 악퇴 발효에서 가장 빠른 변화가 보이고 습창 보관이 다음으로 빠르다. 마지막으로 건창 보관이 가장 느린 성분 변화를 보인다.

이 자료를 보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미생물의 수량에 따라 차의 성분 변화가 빠르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기온과 속도가 높으면 미생물이 대량으로 번식해서 차의 변화가 빨라진다. 반대로 우리나라의 겨울처럼 기온과 습도가 낮은 환경에서는 천천히 변화한다고 보면 되겠다.


여기까지 다향님이 정리한 자료인데 댓글에서 폴리페놀의 변화는 2년 간 1%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 것을 주목하고 숙차에서 감소폭이16%와 비교하면 30년 정도가 되어야 비슷한 수준이 된다. 폴리페놀이 쓰고 떫은맛으로 감지되니 생차와 숙차로만 비교하면 왜 숙차를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 생차를 습창으로 보관하는 것도 결국 폴리페놀 성분을 감소시켜 맛을 순화시키는데 그 목적을 둔 것이다.

쓰고 떫은맛을 줄여서 바로 마실 수 있는 보이차로 숙차가 개발되었지만 묵은 차에 대한 환상에 가까운 기대는 습창 발효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생차는 묵혀서 마셔야지 바로 마실 수 없는 차라는 고정 관념은 고수차에서 무너지게 된다. 발효 기법을 접목하지 않고 자연적인 산화 과정을 거쳐 향미의 변화를 즐길 수 있는 차로 고수차가 지금의 보이차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고수차는 만든 그 해에도 녹차처럼 향미를 즐길 수 있지만 5년 차 정도부터 산화 과정에서 차 성분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산지마다 다른 성분의 차이로 꽃 향기나 꿀 향기 등등 다양한 향미가 더해지는 걸 즐기는 건 고수차만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산지, 같은 해에 만들어진 차가 보관환경에 따라 , 얼마나 오래 되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후발효차의 특징은 오직 생차의 산화 과정에서만 찾을 수 있다.

보이차를 월진월향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습창차처럼 시간을 임의로 당겨서 일어난 성분 변화에서는 담을 수 없는 묘미 때문에 없어서 못 파는 차가 된다. 또 숙차는 후발효차의 특성을 담을 수 없는 지금 마시는 차라고 할 수 있어서 보이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나 편하게 마시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차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