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이야기

보이차를 마시며 행복해질 수 있는 마음가짐

무설자 2021. 4. 2.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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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210402

보이차를 마시며 행복해질 수 있는 마음가짐

 

 


모든 것을 맛보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맛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지식에도 매이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하며,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야 하고, 소유하지 못한 것을 소유하려면 자신이 소유하지 않은 곳으로 가야 한다. 모든 것에서 모든 것에게로 가려면 모든 것을 떠나 모든 것에게로 가야 한다. 모든 것을 가지려면 어떤 것도 필요로 함이 없이 그것을 가져야 한다.           -ST. John Joseph of the Cross(십자가의 성 요한)

 

2006년부터 보이차를 마시기 시작했으니 벌써 15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차가 좋아서 무턱대고 마셨지만 이제는 알아가면서 가려가면서 마시고 있다. 어떤 것이든 보이는만큼 알게 되다가 차츰 아는만큼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동안 무엇을 보았으며 본만큼 무엇을 알게 되었을까?

 

보이차는 물보다 더 자주 마시며 또 더 많이 마시게 된다. 물도 지나치게 많이 마시면 해롭다고 하는데 보이차는 마시는 양을 조절하기 어렵다. 일어나면 유리숙우로 하나를 마시니 300cc, 일하면서 마시는 양은 줄잡아 2000cc 이상일 테고 퇴근하고 마시는 양도 500cc는 더 되는가 싶다. 이러니 하루에 3000cc 이상 되지 않을까 싶다. 하루에 3리터 이상을 15년 가까이 마셨는데 몸에 무리가 없었지만 이제 많이 마시기보다 잘 마셔야겠다고 생각한다.

 

보이차를 매일 십년이상 마시는 사람이라면 소장하고 있는 양도 만만찮을 것이다. 보이차를 알아가는 초창기에는 매달 한통이상 구입했던 것 같다. 만약 일년에 열 통을 구입했다고 하면 15년이면 백오십 통이 소장되었다는 얘기이다. 소장하고 있는 양을 파악하고 있지는 않지만 백 통은 가지고 있지 않나 싶다. 두 달에 한 편씩 80세까지 마셔도 120편이면 되는데 700편이면 너무 많아보이는가? 보이차는 마시면서 차생활을 권하기 위해 쓰고 자식들도 대를 이어 차를 마실 수 있으니 넉넉하게 마련해 두는 게 좋다.

 

그동안 보이차를 알게 되었다면 어떤 쪽으로 방향을 잡아 마셔야 하는가 생각해본다. 처음에는 생차에 대한 편견때문에 거의 숙차만 십년 가까이 마시다가 고수차로 방향전환을 하게 되었다. 물론 숙차는 지금도 즐겨 마시지만 고수차로 생차를 더 많이 마시고 있다. 숙차보다 생차, 생차보다 숙차라는 경계선보다 아는 그만큼 맛있는 차를 즐겨야 한다. 물을 끓이며 지금 선택하는 차가 가장 맛있는 차이기 때문이다.

 

보이차는 아무리 많이 소장하고 있다해도 바닷가의 모래 한줌에 지나지 않는다. 남의 떡이 더 맛있어 보이는 게 아니라 더 맛있는 차는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내가 가지고 있는 차도 다른 사람에게는 마시고 싶은 차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더 맛있는 차를 마시고 싶다면 다우와의 교우를 폭넓게 가지면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가진 차를 나누는 건 쉽지만 내가 마시고 싶은 차는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으니까.

 

차를 십오 년동안 매일 그만큼 마셨는데도 질리지도 않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술이나 담배를 좋아하는 사람과 비교한다면 어떨런지 모르지만 이제는 밥을 대하듯 차를 마신다고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차가 좋아서 마시는 시기가 지나면 차는 생활의 좋은 매개체가 되어 다양한 에피소드를 가지게 해준다. 사람과의 관계도 매개체가 없으면 이해관계로만 만남이 이루어지니 차만한 게 또 있으랴.

 

차를 즐기려 하는 사람은 어떤 맛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차를 알고자 한다면 어떤 편견에도 매이지 않아야 한다. 온전한 차생활을 하려는 사람은 차도, 사람도 소유하려고 하지 않아야 하며, 차를 마시며 행복해지려고 한다면 어떤 차에도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
차의 깊이를 알고 싶다면 자신이 마셔보지 않은 차를 받아들여야 하고, 넓이로 차를 마셔보고 싶다면 다우들과의 교유를 즐겨야 한다. 내가 가진 차에서 만족할 수 없다면 차에 대한 분별을 버려야 그 누군가로부터 차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차는 차일 뿐이라고 하는 건 옳은 말이 아니다. 차는 필요로 함이 없이 행복할 수 있으니 차보다 더 행복할 수 있는 삶의 매개체가 또 있을까? 그래서 차는 오로지 차이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