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시음기

대평보이 정진 시음기-차의 쓴맛을 음미하면서 차 이름을 생각해보며

무설자 2020. 10. 5.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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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지의 에세이 차 시음기 2010

차의 쓴맛을 음미하며 차 이름을 생각해보며

-대평보이 정진精進 시음기

 

 

집콕으로 보내셨겠지만 한가위 명절은 잘 지내셨는지요?

 

지루하던 장마로 올여름은 견뎌내기가 쉽지 않았는데 코로나는 아직 우리 곁을 떠나지 않네요.

제법 한기寒氣가 도는 조석으로 부는 바람이 이 사태를 버텨가는데 위안을 줍니다.

우리 아파트에 사는 고양이 한 마리가 바람을 즐기려고 나무에 올라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연휴를 마치고 출근해서 처음 마신 차가 精進입니다.

시월을 시작하는 첫주라서 올해의 4/4분기를 마음을 가다듬으며 차를 마셨습니다.

그 마음을 표현하는 말이 '精進'이라고 하면 딱 맞겠습니다.

 

요즘 대평보이에서 출시되는 차이름의 의미가 무게감이 다릅니다.

차 이름을 정하면서 그냥 생각나는대로 붙이는 건 아니겠지요?

정진이라는 이름을 어떤 의미를 담아서 붙이게 되었을까요?

 

 

샘플이라고 하기에는 넉넉한 양을 보내주셔서 몇 번을 우려 마셨는데도 아직 이만큼 남아 있습니다.

마실 때마다 차이름의 의미를 짐작해보았지만 오늘 출근해서 마시면서 글을 쓸 가닥을 잡았습니다.

맛을 표현하는 다섯 가지 맛 중에서 쓴맛, 그 맛이 특별하게 다가왔거든요.

 

 

五味는 단맛, 짠맛, 쓴맛, 신맛과 감칠맛을 이릅니다.

그 중에 단맛, 짠맛, 감칠맛은 받아들이는 맛이고 쓴맛과 신맛은 내치는 맛이라고 합니다.

차맛에서 단맛은 다 좋아하지만 쓴맛은 선택적으로 좋아하게 되지요.

 

사실 차 맛의 정도는 단맛과 쓴맛이 다가오는 어떤 비율로 다가오느냐의 취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단맛에 민감하면 쓴맛이 더 많은 차를 좋아하고 쓴맛을 잘 느끼면 단맛이 많은 차를 선택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쓴맛에 민감해서 포랑산 계열의 차보다 임창 차구의 차를 더 즐겨 마시게 됩니다.

 

노반장은 단맛보다는 쓴맛이 많은 차인데 어떤 분은 단맛이 좋아서 마신다고 하니까요.

쓴맛이 많이 도는 차를 즐기는 분들은 임창 차구의 차는 심심해서 별로라고 합니다.

고수차의 두 봉우리라고 하는 노반장과 빙도는 쓴맛을 바탕으로 하는 차인데 빙도가 더 인기가 많지요.

 

저도 노반장보다 빙도를 즐겨 마시는 이유는 쓴맛과 단맛의 비율에서 단맛이 더 많이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사실 차맛에서 쓴맛이 부족하면 회감을 즐길 수 없어서 심심한 차가 되기 쉽습니다.

쓴맛을 바탕으로 하면서 단맛이 풍부한 차가 될 때 첨미甛味와 회감回甘으로 풍부한 맛을 즐기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

 

 

정진을 마시면서 입안에서 쓴맛이 주는 풍부한 회감을 즐기게 됩니다.

자극적이지 않은 쓴맛이 바로 회감으로 단맛을 더해주니 입안이 깔끔하게 잔향으로 번집니다.

제게 정진은 단맛이 좋은 차이기보다 쓴맛이 매력적인 차로 다가옵니다.

 

 

제가 쓴맛에 민감한 입맛이라 포랑산 계열의 차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쓴차를 마시려고 애를 썼지요.

넓게 차를 마시기 위한 일종의 수행처럼....

쓴맛은 받아들이기 위해 애를 쓰지 않으면 익숙해지기 어렵다고 합니다.

음식도 쓴맛을 내는 식재료로 만든 고들빼기 같은 음식은 자주 먹으면서 익숙해져야 즐기게 됩니다.

 

쓴맛의 차도 익숙지기 위해서 자주 마시게 되면 회감으로 풍부해지는 풍성한 단맛을 즐기게 되지요.

정진은 단맛을 첨미로 먼저 느끼게 되고 이어지는 회감이 매력적인 차입니다.

제가 쓴맛에 익숙해지기 위해 수행처럼 마신 쓴차로 얻게 된 단맛의 매력을 글로 옮겨 보았습니다 ㅎㅎㅎ

 

 

한가위 연휴를 보내면서 다녀온 통도사 극락암,

이 절은 제가 경봉스님께 1975년에 계를 받아 마음의 고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극락암의 산정약수는 영취산의 정기가 서린 물이라 갈 때마다 찻물로 길어옵니다.

 

 

茶禪一味라고 쓰는 사자성어를 굳이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집중해서 차를 즐기다보면 문득 차맛이 더 좋게 다가올 때가 있지요.

그 때 다가오는 소소한 희열이 바로 그런 상태가 아닐까 합니다.

 

오래~~~ 자주~~~ 차를 마시다보면 별 생각을 다하게 되나 봅니다. ^^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