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시음기

대평보이 2020 고수차, 정진精進

무설자 2020. 6. 9.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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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차 시음기 2006

대평보이 2020고수차, 정진精進

-육바라밀六波羅蜜을 차의 향미로 음미하다 1

 

불가佛家에서 출가자의 수행과 재가자의 신행을 따로 보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가르침이 있다.

소위 육바라밀이라고 하는 공부의 지침이 있는데 그 여섯 가지는 보시, 인욕, 지계, 정진, 선정, 지혜이다.

피안의 세계, 고통이 사라진 평안의 경지로 갈 수 있는 여섯 가지의 수행과 신행의 길을 이르는 것이다.

 

2020년 대평보이의 새 차 이름을 올렸는데 육바라밀의 여섯 가지가 들어 있었다.

코로나19 시국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이 차를 마시고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길 바라는 마음일까?

피안의 세계는 저너머에 있는 것이라면 힘든 삶을 다독이는 데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일상에서 매일 마시는 차 한 잔,

그 차를 마시면서 힘든 일상을 다독일 수 있다면 그 순간은 피안의 평안함을 얻을 수 있으리라.

육바라밀의 여섯 가지  이름을 담은 각각의 차를 마시며 그 의미를 새겨볼 수 있으면 좋겠다.

 

정진精進은 육바라밀의 네번째 이름이다.

목표를 향해 부단하게 나아가라는 것이니 성실하고 근면하게 살아가라는 가르침이다.

보이차를 마시면서 향미를 온전하게 음미하는 때에 이르기 위해서는 정진바라밀의 가르침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글판 이름 포장지에 담긴 2020 대평보이차를 받으니 시음차가 다섯 종류나 함께 왔다.

대평님께서 코로나19 시국을 이겨내도록 경로 위문품으로 연세가 있으신 분들에게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경로우대에 해당되지 않은 내게는 시음차를 동봉한 건 아마 시음기를 써보라는 숙제로 주신 것임에 틀림 없다. ㅎㅎ

 

먼저 대평 육바라밀 시리즈 중 하나인 精進을 마셔보기로 한다.

 

정진의 모료는 대설산 고수차라고 한다.

차가 담긴 봉투를 열자마자 고수차 특유의 향기가 훅 코로 밀려온다.

고수차의 향미는 건차에서부터 온 감각기관을 자극한다.

 

차생활을 일상에서 즐기기 위해서는 조촐하게 다구를 쓰는 것이 좋다.

물을 끓이고 차를 내는 최소한의 공간을 차지해야 어디에서나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서재인지 차실인지 구분이 모호한 내 방은 서가에는 차와 책이 공존하고, 책상에서는 책을 읽고 차도 마신다.

 

책을 읽는 건 오랜 습관이긴 하지만 이성이 시켜야 하므로 정진의 의지가 발동해야 한다.

차는 마시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면 물을 끓이면 되니 차와 책이 한 자리에 있으니 좋다.

그러므로 책이 있는 자리에서 차를 마시면 책을 절로 읽게되니 정진의 삶에 큰 도움을 준다.

 

두툼하고 묵직한 탕감은 입안에서 농밀함을 느끼게 하니 가벼이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蘭香? 果香?  향미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둔감한 내 입맛이지만 은근한 차향에 눈을 감게 만든다.

짧은 고미가 혀뿌리를 자극하면서 단침이 나오면서 입 안에 단맛이 그득해진다.

 

초의 선사는 <다신전>에서 홀로 마시면 신령스럽고 둘이 마시면 좋은 정취를 느낄 수 있으며, 서너 명은 즐겁고 유쾌하다고 했다.

'대평보이 精進'은 홀로 차를 마시며 은근한 향미를 깊이 음미하는 차가 아닐까 싶다.

차의 향미가 자극적이지 않으니 여럿이 마시면 그 깊이를 제대로 음미하기가 쉽지 않을듯 싶기 때문이다.

 

대평보이 육바라밀 시리즈의 精進,

은근한 차의 향미는 그 깊이를 가벼이 느낄 수 없으니 정진하는 자세로 홀로 마셔야 제대로 음미하게 될 차이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