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1906
보이차로 선후배에서 다우라는 벗이 되니
나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대학후배가 다녀갔다.
후배가 차를 마시기 전에는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고선 따로 만날 기회가 없었다.
남자들 사이는 술자리를 청하면 마다하지 않는데 내가 술을 즐기지 않으니 개인적인 교분을 나누지 못하고 지냈다.
우연한 기회에 대학 동문 밴드에서 정모로 차강의를 요청해서 사무실에서 자리를 가졌다.
그 자리 뒤에 후배는 차를 마시고 싶다며 가이드를 부탁하면서 다우로 지내게 되었다.
후배는 sns를 통해 수시로 차에 대해 물어오다가 차 구입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니 다우가 되었다.
아는 사이는 수백 수천 명이 될 수 있지만 안부를 묻는 사이는 얼마나 될까?
후배와 건축사업을 공유한지 수십년이 되었지만 그냥 아는 사이일 뿐이었다.
차생활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면서 선후배를 넘어 벗이 된 것이다.
책상에 앉아 일을 하는 시간이 많은 우리 직업은 스트레스를 풀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퇴근 후에 술자리를 자주 가지기 쉬운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건강 걱정이 스트레스로 더해진다.
후배도 쉰 후반에 접어드니 술을 대신해서 차를 마실 생각을 했는가 보다.
다반사茶飯事라는 말이 이 시대에는 쉬운 일이 아니라 어려운 일이라 풀어야 한다.
차 마시기도, 밥 챙겨 먹기도 어려운 세상이니 쉬운 일이 뭐가 있을까?
다행히 다반사로 차도 마시고 밥도 제때 챙겨 먹으니 이만한 복도 드물지 싶다. ㅎㅎㅎ
후배가 숙차를 한참 마시더니 이번에는 고수차와 청차, 홍차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 숙제는 대평보이에서 다 해결할 수 있으니 고수차는 차랑재, 청차와 홍차는 라오상하이를 추천했다.
차랑재에서 고수차를 구입하고 라오상하이에서 아리산우롱차와 일월담 홍옥이 도착했다며 찾아왔다.
후배는 의외로 적극적이다.
차를 구입하면 개봉도 하지 않고 같이 마셔보자며 찻자리를 청한다.
차도 마시고 사는 얘기도 하면서 선후배 정을 나누니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다.
자리를 파하면서 구입했던 차를 덜어주고 간다.
내가 가진 차도 나누니 주고 받는 정이 차만큼 향기롭다.
"형님, 차 한 잔 하입시더."하며 찾아주니 차가 '정情'이다.
점심시간에 찾아온 그와 콩국수를 먹고 찻물을 끓였다.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건네니 한 마디를 놓칠세라 메모하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
그동안 몇 번 가졌던 찻자리에서 한 얘기도 그의 차노트에 정리를 해두었다고 했다.
보이차는 공부를 해가면서 마셔야 길을 잃지 않는다.
아는 후배에서 다우라는 관계에 들어서니 얼마나 귀한 사이인가.
세 시간이 어느새 훌쩍 지나 자리에서 일어나니 우리는 신선이 되었는가? ㅎㅎㅎ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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