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행복한 삶을 담는 집 이야기

손님이 며칠이라도 머물고 싶은 단독주택-가랑비와 이슬비

무설자 2017. 10. 10.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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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님이 며칠이라도 머물고 싶은 단독주택

  -문으로 열려 내외부가 하나 된 우리집

 

주인의 입장에서는 마뜩잖은 손님이 영 돌아갈 기색을 보이지 않는데 때마침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주인은 어서 가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실어 ‘가랑비’가 내린다고 했더니, 손님은 그 뜻을 알아차렸는지 ‘이슬비’가 내린다고 응수하면서 더 있고 싶다는 의중을 전했다고 한다. 손님의 왕래가 잦았던 시절의 우스개 얘기라서 요즘 같은 아파트 살이에서는 실감이 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예로부터 집에 손님이 자주 들어야 흥하는 기운이 돌고, 객의 발걸음이 끊어지면 기운이 쇠한고 여겼다. 한옥 대문을 보면 안으로 향해 여닫게 되어 있다. 이것은 들이기는 하되 내보내지 않겠다는 뜻이 숨어 있는 것이다. 열고 닫히는 방향이 집 안으로 향하는 옛집의 대문과 집 바깥으로 향하는 아파트 현관문을 비교해서 생각해 본다. 안으로 여닫는 옛집은 어쩐지 그 집에 들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지만 밖으로 향해 여닫는 요즘 집은 사람을 밖으로 내모는 듯하다.

예로부터 집에 손님이 자주 들어야 흥하는 기운이 돌고,
객의 발걸음이 끊어지면 기운이 쇠한고 여겼다

 

식구들이 많았던 대가족 구성원이 있었던 옛날에는 누구라도 집을 지키는 사람이 있었다. 그 시절의 집은 잠깐 나갔다가 돌아오는 곳이어서 집이 사람을 기다리는 정서가 있었다. 가족 구성원 모두 밖에서 지내다시피 하는 요즘 아파트에서는 사람을 반기는 정서가 담기기 어렵다. 그래서일까 아파트 현관문은 주인을 구별하지 않고 무조건 사람을 뱉어내는 것 같다.

 

자식도 손님인 요즘 아파트에서는 노후를 행복하게 보내기 어렵다. 조손祖孫의 인연을 지을 수 있어야 다복하다 할 수 있으니 자식도 손님이 되어버린 세태에 누구라도 머물고 싶은 집을 생각해 본다. 며느리와 사위가 편히 머물 수 있는 집은 어떻게 지어야 할까? 

 

경주 양동마을 관가정 
관가정 사랑채와 사랑 마당 

 

관가정 사랑채-마당과 마루, 방이 마당이라는 외부와 대청이 내부에서 다시 대청은 외부가 되고 방이 내부가 된다 

 

관가정觀稼亭으로 우리집의 원형原形을 본다

 

경주 양동마을의 대표적인 반가班家인 관가정觀稼亭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조선시대의 사대부가의 전형을 보여준다. 급한 경사지에 입지 하기에 담장이 없이 사랑마당과 사랑채를 두었다. 어차피 담장과 대문은 바깥과의 경계를 삼기 위함인데 급경사의 언덕에 터를 잡았으니 따로 담을 칠 필요가 없음이라.

 

관가정의 사랑채는 누각 형태로 멀리 벌판을 바라볼 수 있도록 앉혔다. 사랑채에 오르면 기둥만 있는 마루든 문을 열고 보는 방이든 이 공간은 정자처럼 세상을 향해 열려 있다. 경계 없는 공간이므로 손님이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었고 며칠이라면 묵어갈 수도 있었다고 한다.

 

안채는 중문으로 출입구를 삼아 바깥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중정中庭을 끼고 미음자로 배치되어 있다. 하늘로 열린 중정을 향해 대청마루와 안방과 건넌방이 접하고 있다. 중정에 면한 안채의 내부 공간은 창이 없이 모두 문을 통해 두 개의 방에서 대청마루로 출입하며, 안방에서는 마루방으로 전체 벽면이 문으로 이루어져 문을 열면 하나의 공간이 된다.

 

관가정 안채-안마당과 대청, 방이 안과 밖으로 첩첩으로 이어진다

 

관가정의 사랑채는 당호처럼 멀리 안강 벌을 향해 열려 있다. 사랑채의 방은 창이 없이 문으로 누마루와 사랑마당으로 이어진다. 안채도 중정을 향한 벽은 문을 통해 하나의 공간체계를 이루고 있다. 문살과 창호지로 된 한옥의 문은 닫혀 있어도 소통이 이루어지는 벽이었다. 들어열개문은 공간의 확장성을 보여주는 열린 벽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한옥의 문은 궁극적으로 불통不通의 장벽이 아니라 소통疏通의 통로이다

한옥의 문은 궁극적으로 불통不通의 장벽이 아니라 소통疏通의 통로였던 것이다. 사랑채는 바깥세상과 열리는 공간이며, 안방은 식구들의 삶을 하나로 엮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한옥의 문은 벽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필요하면 항상 열릴 뿐 아니라 들어 올려져 가면서 까지 공간을 확장할 수 있었다. 한옥의 문은 벽이 되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천정에 올라가 없어지기도 하면서 필요한 공간이 만들어지는 소통의 매개체였던 것이다.

 

문이 없는 아파트창으로 막히다

 

창窓은 벽의 연장으로 본다. 그러므로 창의 역할은 안팎을 구획하는 경계로서 철저하게 불통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시선은 이어주되 한기와 열기의 이동은 물론 동선의 출입도 막아야 하니 구동驅動이 가능한 벽이라 하겠다.

 

문門은 벽을 여는 통로이다. 벽의 일부를 터서 내부와 외부, 실과 실의 공간을 잇는 통로이다. 그러므로 문은 고정된 벽과는 반反하는 역할을 한다. 때로는 공간을 구획하는 벽이 되기도 하지만 필요에 따라서 벽안에 매몰되거나 공중에 매달려 존재가 없어지기도 한다. 문이란 일시적으로 막기도 하지만 그 본질은 열어서 소통하는 데 있다.

벽과 창으로만 이루어진 아파트,
그 공간의 성격은  불통의 공간, 내외부 공간은 물론이고
방과 방의 관계도 단절되어 있다

 

벽과 창으로만 이루어진 집이라면 그 공간의 성격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불통의 공간, 내외부 공간은 물론이고 방과 방의 관계도 단절되어 있을 것이다. 발코니 확장이 적법하게 되어 거실 앞이 창으로 된 요즘 아파트가 바로 불통의 공간이다.

 

앞뒤 발코니가 넉넉하게 살아있던 초기의 투베이 아파트는 거실은 외부공간으로 문이 열려 정자 같은 공간이다. 뒷발코니로 문이 열리던 아파트는 앞 뒤로 공간이 이어지는 열린 개념의 집이었다. 외부로 열리는 문이 있어 최소한의 외부공간인 발코니는 나무를 심고 꽃을 가꿀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발코니를 매개공간으로 삼아 거실의 큰 문을 통해 바깥세상과 호흡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왜 발코니를 없애 버렸을까?.

 

문으로 소통하는 우리집  

 

필자 설계 경남 양산 심한재-외부 공간과 내부 공간은 문으로 바로 드나들게 되어 있다
마당과 거실은 목재데크, 작은 정원과 한실은 툇마루로 드나들게 되어 있다 

  

단독주택을 지어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왜 편리하고 안전한 아파트를 떠나 단독주택에서의 삶을 로망처럼 여기는 것일까? 이런 분위기를 반증하듯 매달 온갖 매체에 잔디가 깔린 마당에 눈길을 끄는 디자인으로 반짝이는 단독주택이 근사한 사진으로 소개되고 있다.

 

만약 단독주택을 지어서 살고 싶다면 ‘왜 나는 단독주택에 살고 싶어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 보아야 한다. 답이 바로 나오지 않을지 몰라도 아마 아파트에서는 살기 싫다는 한 가지 이유는 뚜렷할 것이다. 아파트는 벽과 창으로 이루어진 폐쇄된 공간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잠재된 위기의식 때문이지 않을까? 우리 식구들만의 집이라는 바람에 대한 요구치가 아파트에서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 큰 이유일 것이다.

누구라도 ‘우리집’으로 지어야 한다는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서 단독주택은
아파트와 달리 창이나 벽으로 막힌 집이 아닌
열리는 개념이 적용된 얼개의 집이라야 한다


필자 설계 경남 양산 심한재-일층의 모든 내부 공간은 밖으로 드나들게 되어 안팎이 하나되는 공간 얼개를 가진다

 

누구라도 ‘우리집’으로 지어야 한다는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서 단독주택은 아파트와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창이나 벽으로 막힌 집이 아닌, 가능한 문으로 열리는 개념이 적용된 얼개의 집이라야 한다. 열린 집, 받아들이는 집으로서 해결책의 팁은 한옥에서 찾을 수 있다.

 

외부공간과 내부 공간이 하나 되어 집의 얼개가 구성되는 우리 한옥은 소통의 집이다. 결국 우리집은 담장으로 에워싼 영역 전체를 벽과 창을 줄이고 내외부 공간을 문으로 소통시키면 된다. 거실은 큰 마당과 이어지고 서재는 조용한 안뜰과 하나가 되며, 주방은 다목적 공간과 이어지고 식당은 햇살이 잘 드는 테라스와 한 공간이 되면 좋겠다.

 단독주택은 일층의 모든 내부 공간이 문을 통해
외부공간과 적절한 관계 맺기를 해야 아파트와 다른 ‘우리집’이 된다

 

단독주택은 단지 잔디 깔린 넓은 마당만 있는 집이어서는 안 된다. 일층의 모든 내부 공간이 문을 통해 외부공간과 적절한 관계 맺기를 해야 아파트와 다른 ‘우리집’이 된다. 이층도 방이 베란다와 발코니를 통해 외부공간과 하나 되면 창이 아닌 문으로 열리는 공간이 된다. 아파트는 벽과 창으로 닫힌 누구의 집도 아닌 집, 단독주택은 문을 통해 내외부가 하나의 공간이 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집’이 된다.

 

어떤 손님이라도 며칠 머물고 싶은 집, 가장 중요한 손님인 며느리와 사위가 기꺼이 찾고 싶은 집이라야 한다. 가족이 자주 모일 수 있는 여건을 집이 만들어준다면 손주도 자주 볼 수 있다. 손님을 배려한 집이라야 단독주택이며 손주와 함께 노후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무 설 자

 

무설자(김정관)는 건축사로서 도반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집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어서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건축설계를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어쩌다 수필가로 등단을 하여 건축과 차생활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글로 풀어쓰면서 세상과 나눕니다.

차는 우리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만한 매개체가 없다는 마음으로 다반사로 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준비하는 분들이나 이 글에서 궁금한 점을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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