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보이 숙차 이야기

숙차에 대한 소견

무설자 2012. 7. 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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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에세이 숙차 이야기

숙차에 대한 소견

 

 

 

 

숙차熟茶,

1973년에 세상에 이름을 달고 나온 차,

생차는 적자이며 숙차는 서자로 구박을 받는 분위기지만

나는 보살茶中菩薩로 부르고 싶습니다  

 

물론 출신성분과 성장환경이 확실한 숙차라야 그런 자격을 가질 수 있겠지요

조수악퇴발효를 통해 급속으로 만들어지기에

발효관리에 따라 마시기에 거북한 차가 될 수도 있습니다

후발효차라는 특성 때문에 보관 환경이 차의 미래를 결정하게 되기에 보관 환경도 중요합니다

 

출신 성분만큼 성장 환경도 중요한 보이차,

생차보다 숙차를 마시는 분들이 더 많지만 만족한 숙차를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래된 숙차는 포장지나  판매처에서 매기는 연식을 확인할 수도 없기에

차의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숙차의 향미가 있습니다

그 향미를 판단하는 요소는 탕색, 향과 맛, 엽저의 상태입니다

생산 차창도 중요하고 진기도 고려하지만 일단 마셔보고 차의 가치를 판단합니다

 

 

-탕색-

숙차의 표준 탕색은 검붉은색이지만 밝아야하고 황색을 띄면 경발효,

검붉지만 어두운 색은 과발효되었거나 보관 과정에 문제가 있는 숙차입니다

경발효 숙차는 생노차의 맛을 닮으려 하지만 숙차의 풍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과발효 숙차는 풍부한 맛을 잃어버려 이미 후발효차의 가능성을 상실했다고 보아야합니다

 

 

 

-차향-

숙차의 향은 흔히 숙향(미)이라고 하는 거북한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악퇴발효 과정에서 생성되는 숙향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사라지지만

예민한 사람들은 이 향 때문에 숙차를 마시지 못합니다

나는 오히려 어느 정도 숙향이 남아있을 때 숙차의 풍미와 함께 더 맛있게  차를 마실 수 있더군요.

 

숙향은 거북하지만 숙차의 독특한 밀향이야말로 최고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로 삼습니다

잔을 비우고 문향을 해보면 달콤하게 다가오는 숙차 특유의 향기는 다른 차에서는 없습니다

이 밀향을 담은 최고의 숙차는 열 편 중의 한 편? 백 편 중의 한 편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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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차의 맛은 어떠해야 할까요?

조수악퇴과정에서 생차엽의 뾰족한 특성을 거의 잃어버린 숙차의 맛은 펑퍼짐해져 버립니다

좋게 표현하면 부드러워지면서 두터운 맛이 되어 밥같이 늘 마실 수 있는 차가 됩니다

 

그 두터운 맛에 밀향이 더해지면서 숙차의 독특한 단맛이 드러납니다

모차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맛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겠지만

숙차에서 맛의 관심은 어떤 단맛이냐에 달렸다고 봅니다

단맛을 바탕으로 쓴맛이 적절하게 뒷맛으로 받쳐주면 회감을 살려주는 최고의 숙차가 됩니다

 

 

-엽저-

이제 엽저로 숙차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봅니다

생차든 숙차든 엽저는 갈색으로 부드러운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엽저가 검은색을 많이 띌수록 조수악퇴 과정에서 과발효가 되었거나 습한 곳에 보관되었다고 봅니다

 

검은색으로 목질화된 숙차를 마셔보면 목넘김에서 불편해지고 목마름 현상이 느껴집니다

맛이 두텁지 않고 칼칼한 느낌이라 매끄럽지 않아서 숙차의 편한 맛이 없습니다

제가 숙차를 선택하는 가장 단순한 판단기준은 엽저의 목질화 비율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저에게 숙차는 밥같은 차입니다

아무 때나 누구하고나 어떤 자리에서도 마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이 마셔도 물리지 않고 그냥 편하게 손이 가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숙차는 제가 재시財施로 나눌 수 있는 즐거움을 주는 차입니다

비싸다거나 싸다거나 하는 가격대비 향미에서 차를 마시는 초기에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3년 정도된 차를 사서 2-3년을 보관하면 귀중한 나눔의 매개체가 됩니다

 

숙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기에 공덕이 있는 차로 부릅니다

발효 과정에서 순화되어 누구에게나 부담을 주지 않으며 늦은 시간에 마셔도 수면에 큰 지장이 없습니다

 차를 우릴 수 있는 다관만 있으면 뜨거운 물을 부어 다섯 번이상 열 번까지도 편하게 우려 마실 수 있습니다

 

 

숙차로서 좋은 차는 꼭 비쌀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숙차를 오래 마셔서 그 묘미를 느끼기 시작하면 선택의 폭이 좁아집니다

10년 이상된 노차는 숙차에서도 귀하기에 제대로 나이를 먹은 차를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차는 더불어 마시는 사람과의 관계의 매개체로 삼아야 합니다

차 마시기에 탐닉하기보다는 차를 함께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것을 즐긴다면 마실 수 있는 차가 많습니다

제가 선택하는 좋은 숙차가 귀하지는 않지만  선택의 조건에 부합하는 차가 흔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정한 몇 가지 조건에 맞는 3년 전후의 숙차가 있으면 여유있게 소장합니다

마음을 담아서 나눌 수 있는 선물을 늘 준비하고 있으니 든든합니다

표일배와 함께 하는 숙차 선물은 누구나 반가워하고  다음에 만나면 차 마시기를 시작했다는 분이 많습니다

 

차는 혼자 마셔도 좋고 둘이 마주 앉아 마셔도 좋습니다

여러 명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매개체로도 차 만한 게 있을까요?

나누고 더하고 함께 하는 삶을 위한 최상의 매개체로 제게는 숙차가 있습니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