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에세이 차 시음기

'09 운보연 곡화(고수)차 시음기

무설자 2010. 5. 3.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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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자의 차 시음기 100503

곡화차를 입하를 앞두고 마시니

'09 운보연 곡화(고수)차

 

 春來不似春

그렇게 봄은 그냥 가버렸나봅니다

오늘은 30도에 가까운 기온이 여름이 와버렸음을 알게 합니다

 

바깥은 겨울 같은 봄이라고 했지만 우리집의 작은 정원에는 꽃이 예년처럼 피어납니다

아파트 베란다를 확장하지 않고 바닥에 벽돌을 깔고 화분을 들여 놓았습니다

벽돌이 물을 머금어서 화분이라는 작은 틀 안에서 크는 녀석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했습니다

 

 

 

풍란을 벌써 피었다가 지고 또 다른 풍란은 꽃대를 올립니다

게발도 발마다 꽃을 달고 군자란도 한껏 자태를 뽐냅니다

꽃이 피는 화분에는 해마다 걸르지 않고 꽃이 피니 이 곳을 바로 꽃밭이라 하나요?

 

 

 

 

 

 

조금이라도 더 큰 집에서 사느라고 다들 이런 공간을 없애고 맙니다

베란다를 확장해버리면 집의 처마를 없애는 것이라서 여름에 비가 오면 문을 닫아야 합니다

이런 자연과 함께 하는 공간도 없어지지요

 

아파트의 베란다는 외부공간과 만나는 매개영역입니다

비가 오면 빗소리도 듣고 바람이 불면 이 공간에서 꽃과 놀다가지요

철마다 피는 꽃들도 햇살이 담기는 곳이라 즐겁게 피고 집니다

 

매개체, 삶의 여러가지와 바로 맞닥뜨리는 것의 중간 완충 장치라고 할까요?

아파트에서 베란다가 있으면 꽃이 피는 것처럼 같이 우리 생활에도 생업과 맞닥뜨리는 중간이 필요합니다

차를 마신다는 것보다 더 좋은 매개체가 있을까요?

 

살아가면서  만나게되는 많은 것들이 완충장치가 없으면 정면대결을 하게 됩니다

그 대결은 이겨도 져도 스트레스라는 부산물을 남깁니다

상생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삶의 방법이 차를 마시게 되면 저절로 나오게되지요

 

오늘도 차를 마시면서 상생의 삶을 생각해 봅니다

차 마시기를 권하는 것은 '차 한 잔의 여유'를 나누는 삶의 방법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 여유 속에서 스트레스는 완화되고 행복이 가까이 있음을 깨닫게 되길 빕니다

 

 

 

오늘 마시는 차,

운보연의 '09 곡화차입니다

가을 고수찻잎으로 만든 보이생차지요

 

운보연의 차로서 곡화차는 처음입니다

차는 이미 만들어졌지만 운남에서 안정을 시켜 제맛을 올린 후에 보내기로 했답니다

그래서 차를 기다리는 분들을 위해 한편씩 보내온 차입니다 

 

 

두 종류의 차를 한편씩 종이 상자에 넣어서 보내왔습니다

명품차로 자존심을 가지고 만드는 운보연의 차를 담는 상자로는 아주 수수합니다

때로는 내용물보다 포장이 중요할 수 있기에 브랜드의 격에 맞는 포장이라면 한편씩 선물하는데 도움이 되겠지요 

 

 

곡화차의 포장지는 韻이라고 크게 새겨 놓았습니다

'韻'은 운치韻致, 정취情趣를 의미하는데 보이차를 마시면서 느껴야 하는 아주 중요한 맛입니다

흔히 回韻, 陳韻이라고 표현하는 맛의 깊이로 차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입니다

 

회운이란 차를 마신 후에 입안에서 돌아나오는 뒷맛을 이릅니다

단순한 혀끝의 맛이 아니라 목구멍에사 올라오는 향미나 입맛을 다신 후에 느껴지는 맛입니다

잘 만들어진 차라야 이 맛을 독특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진운이란 차가 만들어져서 어느정도 지난후 발생하는 운미韻味를 말합니다

맛을 보고 느끼는 감성미感性美로 어느 정도의 차에 대한 경험이 필요하지요

이 진운이야말로 후발효차가 가지는 진정한 깊이라고 합니다

 

 

 

 

포장지를 벗겨서 차의 병면을 봅니다

대지차와 고수차를 구별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잎이 다양하게 섞여 있는 것을 보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대지차는 비슷하게 자라는 조건이라 일정한 크기를 가지는 반면 고수차는 키 큰 나무에서 다양한 잎을 채취할 수 밖에 없지요

 

운보연 병차의 긴압도는 아주 적정한 압력으로 만들었음을 보여줍니다

병차의 모양도 예쁘게 나오고 한 잎 씩 조심스럽게 떼어낼 수도 있습니다

기계로 누르면 병면은 그야말로 떡처럼 되고 차를 떼어내기도 어렵지요

 

 

 

이렇게 한 잎씩 떼어내어 개완에 담았습니다

약 4g 정도 되겠습니다

짙은 암녹색으로 쇄청모차임을 보여줍니다

 

 

집에서 차를 마시는데 쓰는 차살림입니다

작은 잔에는 제가 마시고 아내와 딸아이에게는 큰 잔에 듬뿜 담아줍니다

차는 그야말로 다반사로 마실 수 있어야 하기에 격이나 형식은 아직 제게 중요치 않습니다

 

 

어린 잎이기에 유리 숙우에 끓는 물을 한번 담아서 한소쿰 식혀 개완에 붓습니다

쇤 잎으로 만든 차는 뜨거운 물을 바로 쓰지만 어린 잎은 온도를 살짝 낮추는 것이 좋더군요

차향이 코끝을 간지럽힙니다

 

 

 

노란 탕색이 아주 먹음직스럽습니다

봄차에 비해서 향미는 조금 덜하지만 맛은 아주 묵직하게 다가오는듯 합니다

봄차가 여성스럽다면 가을차는 남성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수차를 평상시에 마신다면 아무래도 봄차가 좋을지 모르지만 입에 담기는 맛으로 본다면 곡화차도 좋습니다

맛으로 본다면 봄차가 열에 일곱이면 곡화차는 여덟 아홉일 것 같습니다

고수차를 자주 즐기는 사람에게는 맛만큼 향도 중요하지만 입안에 머금어 목으로 넘긴 뒤의 회운은 어떨까요?

 

 

엽저를 봅니다

큰 잎 작은 잎이 섞여있는 걸 보면서 저 잎을 따기 위해 나무를 올라간 이를 생각해 봅니다

차 한 잔을 대하면서 차를 만든 이의 노고를 생각해보면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겠지요 

 

 

 

여름을 지내고 다시 새잎을 낸 찻잎으로 만든 곡화차

혀끝으로 채 알지 못하는 숨어있는 맛은 마시는 사람의 미각이나 후각 등 감각의 차이가 되겠지요

봄차는 봄차대로 가을차는 가을 차대로 만들어내는 차맛을 즐기는 봄같지 않은 봄날의 재미입니다

 

 

노랗게 우러난 탕색은 우리 가족의 행복한 색깔입니다

가족 사진 앞에 건배하듯 차를 비추니 그 속에 찻물처럼 쓴맛, 단맛을 음미해 봅니다

달기만해도 안 되고 쓰기만 해도 못한 조화로운 차의 맛을 생각해 보는 시간입니다

 

가족들과 차 한 잔 우려서 이런 저런 하루 일과를 나누면 이보다 더 바랄 행복이 있겠습니까?

오늘 아침에도 딸래미는 가방에 차를 우려서 출근했습니다

차와 어우러지는 일상, 차와 나누는 삶을 제공해주는 운보연이 그저 고맙고 따뜻합니다

 

차 한 잔 올립니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