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설자의 에세이 차 이야기 0934
차 한 잔 올립니다
참 무서운 세상입니다. 세상을 바꾸어 놓겠다는 큰 뜻을 펼쳤다가 스스로 세상을 버리고만 분이 생각납니다. 보장되었던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시며 생사를 알지 못하면서 왕의 자리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하신 붓다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삶이 무엇인지 알고 나면 분명히 세상과 다투지는 않을 것입니다. 삶을 알지 못하고 죽음 뒤의 일을 궁금해 하지 말라고 하신 붓다의 말씀도 항상 되새겨 봅니다. 지금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보면 지난 날을 반성할 수도 있고 미래를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하는지도 알 수 있지요.
출근해서 하루를 여는 차의 첫 잔을 붓다께 올립니다. 사무실 제 방의 테이블 앞에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조그만 불상을 모셔놓고 들뜨거나 흔들리는 마음을 바칩니다. 차 한 잔, 두 잔, 석 잔...분노도 담고 원망도 담고 욕심도 담아서 마셔버립니다.
신맛·쓴맛·매운맛·단맛·짠맛...오미가 담겨 있다는 차 한 잔 마시면 잠시나마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단맛만 즐기려하나 쓴맛을 버릴 수 없고 신맛이 없다지만 느끼지 못할 뿐이겠지요. 맵거나 짠맛이야 차 맛에 얼마나 들어 있겠느냐만 늘 먹는 음식에서 가져온 맛을 다스려주지요.
일 없이 마시면 차 마시는 것이 일거리가 되고 바쁠 때 마시면 서두를 일을 다잡아 줍니다. 심심할 때 마시면 벗이 없으니 차맛이 오롯하게 다가오고, 벗과 함께 마시면 정을 도탑게 해주지요. 차를 모르는 이와는 좋은 인연을 맺게 해주고 차를 잘 아는 이와 마시면 다담이 정겹습니다.
퇴근해서 차를 마시지 않는 분들은 하루를 어떻게 마무리할까요? 가족과 함께 있어도 TV를 쳐다보느라 서로 얼굴 마주 하며 대화할 시간도 없이 그냥 잠자리에 드시나요? 지난 하루를 돌아보며 얘기를 나누면서 차 한 잔의 시간을 가지며 마무리를 하시나요?
茶禪一味,
차를 마시며 살다보면 삶의 크고 작은 문제는 시간이 해결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세상은 욕심으로 살기보다 나누면서 살아야 행복해지듯이 차도 나누면서 마시면 늘 만족할 수 있습니다. 늘 그렇게 차 마시는 다우님들께 차 한 잔 올립니다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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