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말 없는 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무설자 2008. 6. 4.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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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재미에 푹 빠져산다고 할 정도로 컴퓨터에 시간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차와 관련된 인터넷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매일이다시피 차에 관한 단상을 짧은 글로 올린 것이 얼추 400 편이 넘습니다. 출근해서 아침 회의를 하고 난 뒤 인터넷을 켜면 안부글부터 써서 올리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렇게 열심히 글을 올리는 데는 이유가 다 있습니다. 제 글을 기다리는 분들이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인터넷 글쓰기의 묘미는 글에 대한 반응이 즉시적이라는 겁니다. 글이 부정적인 내용이거나 내용이 시원찮으면 조회 수나 댓글이 적습니다. 내용이 일방통행적이기보다는 읽는 이를 배려한 글에는 본 글보다 댓글이 더 흥미롭게 전개되기도 합니다.

 

주로 짧게 쓰는 글이지만 매일이다시피 글을 올리니 댓글로 대화를 나누는 독자들이 많아졌습니다. 그 분들은 부산뿐 아니라 서울, 대구, 남원, 광주, 여수 등 우리나라 전역과 중국의 보이차의 산지인 운남의 곤명, 상해와 이우, 이번에 지진이 난 사천성의 성도와 북경 등에도 있습니다.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교통사고로 입원해서 병원신세를 진적이 있었습니다.  사고가 난 뒤 며칠을 글을 올리지 못하고 있으니까 인터넷에서 댓글과 쪽지가 날아들어 무슨 일이 있느냐며 안부를 물어 옵니다. 매일이다시피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댓글에 답글을 달던 사람이 보이지 않았으니 궁금한 분이 있었나 봅니다.  입원소식을 알리자말자 대구와 남원에서 병실로 병문안을 왔었습니다. 그 분들이 저를 찾은 첫 문병객이었답니다.

 

이렇게 입원을 통해 온라인의 위력을 실감했습니다.  온라인은 댓글로 안부를 물어와서 답글로 상황을 알리면 그 글을 읽는 모든 분에게 실시간으로 통지가 됩니다. 그렇지만 오프라인은 직접 만나거나 통화를 통해 알려야만 알게 되니 온라인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런 특별한 정을 알 수 없겠지요.

 

3주가 지났지만 오프라인의 사람들은 입원한 사실을 모릅니다. 입원한 내내 우리나라 전역과 중국에서 안부를 묻는 댓글과 쪽지가 계속 답지해서 매일 저의 병원생활을 중계하듯이 글을 올렸습니다.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에 인터넷의 글쓰기의 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는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통행의 시대입니다. 오히려 만남의 정은 오프라인이 온라인을 따라 가야할 것 같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에 제가 다니는 절로 저를 찾아오신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몇 년을 절의 사보寺報에 글을 쓰면서 메일주소를 글의 말미에 적어두었지만 잘 읽고 있다는 메일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제 글에 대한 반응을 직접적으로 받아보지 못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그 분을 만나면서 글을 쓰는 기쁨을 큰 감동으로 받았습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사보에 연재해오던 글을 몇 회를 쓰지 못했는데 아무에게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글의 진정한 독자가 없다고 생각하여 계속 글쓰기를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절의 신도가 아닌 그 할머니께서 절로 저를 찾아오신 이유는 연재가 중단된 이유를 알기위함 이었습니다.

 

그 할머니께서 우연하게 사보를 받게 되어서 제 글을 읽기 시작한 이유로 한편도 빠짐없이 스크랩을 해두었다며 매월 글 읽는 재미로 다음 달을 기다렸다고 했습니다. 사보에 실리는 제 글을 읽는 독자들에 대한 실망이 일순간에 사라지고 글을 써야하는 이유가 분명해졌습니다. 이런 독자가 한분이라도 계신다면 제가 글을 쓸 이유가 충분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잠깐의 이야기 후에 점심공양을 하러 내려가신 뒤 부처님 오신 날의 복잡한 절 사정으로 다시 뵙지 못했지만 꼭 다시 만나서 차 한 잔 대접하면서 오래 얘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어쩌며 제게 가장 소중한 독자일지 모르는데 그렇게 보내고 나니 소중한 마음이 더해집니다.

 

이렇게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음은 삶을 제대로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중요한 일입니다. 밥이 몸을 유지하는 수단이라면 마음을 지켜가는 것은 정이라고 단정하고 싶습니다. 몸을 다치니 마음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할 때 정이 그 자리를 채워주었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고 누가 묻는다면 저는 정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게 정이 오가는 삶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정이라고 흔하게 쓰는 말이지만 그 정을 마음에 담고 사는 분은 얼마나 될까요?

 

일 없이 전화를 주고받는 분이 몇이나 되는지, 일 없는 만남을 이달에는 몇 번이나 있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정을 마음에 지니고 있어야만 일 없는 통화, 일 없는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그 정을 전화로, 만남으로, 메일로, 댓글로 주고받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부뚜막에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지는 이유와 같지 않을까요? 오늘도 인터넷으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또 다른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

 

승보종찰 송광사 부산분원 관음사 사보 늘 기쁜 마을 2008, 6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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