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마음을 먹었다. 그가 주장할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무엇인가 태워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 큰일을 저질러버렸다. 참 어이없게도 이 시대의 서울 한복판에서 그 큰집이 타는 것을 중계방송으로 보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마른 장작이 불타듯 지나고 보니 한 순간이었다.
일을 저지른 그 사람의 마음처럼 일을 저지른 후의 과정도 그렇게 되어 버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진행이 되었다. 불을 댕기면 그 다음에는 그 불이 진행이 되지 않도록 조치가 따라가야 하는데 마치 누군가 시작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되어버렸다. 늘 그렇듯이 또 잘잘못을 따지는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분명히 누군가는 그 책임을 질 것이고 그 몇 사람이 희생양이 되면서 시간이 지나면 또 잊혀진 일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는 불안함이 머리 속에 맴돈다. 우리나라에 있는 대부분의 목조건축물이 다 이런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니 비단 이 일만을 가지고 나무랄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이 시대의 옛집들이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다.
문화재라고 하면 마치 그 기능을 상실한 유적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하긴 그 안에 사람이 살지 않으니 기능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지만 문화재라고 그 역할을 부여 받으면 이 시대에 당당하게 서있을 새로운 기능을 부여 받은 것이다. 국보, 보물, 유형문화재 등등 그 가치에 어울리는 격에 맞는 보전대책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
옛집을 보고 싶어서 찾아 가노라면 제대로 관리인이 상주하는 경우는 참 드물다. 그러다보니 철없는 사람들은 함부로 이곳저곳을 들락거리는데다 손을 댄 자국들로 훼손되어가는 것이 참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창호지는 구멍이 나있고 문을 함부로 여닫아서 문짝이 제멋대로 흔들리는 것은 보통이다. 그 근처에서 함부로 담배를 피우는 이를 보면 불이 날 위험성에 늘 노출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꼭 불을 낼 마음을 먹고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이런 참사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의 고찰들은 이런 위험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종교 건축물이라는 특성상 이교도의 방화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이교도에 의해 화재의 피해를 입은 예가 얼마나 많은가? 그렇지만 그 위협에 제대로 방비된 곳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위험이 아니더라도 초 한 자루에도 그렇게 된 쌍봉사의 경우나 산불에 희생된 낙산사처럼 언제든지 당할 수 있는 경우이다.
전국에 수많은 사찰들이 이 경우에 대한 대비책이 얼마나 마련되어 있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숭례문 복원에 200억원이 들어간다고 하는데 돈을 들여 다시 복원을 한다하더라도 이미 금액적인 환산치를 따질 수 없는 가치를 잃어버린 후가 될 것이다. 그 대비에 만전을 기한다면 문화재를 지켜냄은 물론 비용적 측면에서도 유지관리를 잘 하는 것이 훨씬 적게 들어가게 될 것이다.
숭례문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불자들은 낙산사와 쌍봉사의 지난날을 떠 올려 보아야 할 것이다. 불전에 초를 계속 켜야 한다면, 전국의 모든 산이 다 산불이 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면 하루 빨리 그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고 그 방안대로 소방시설과 그 관리가 철저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타 버리고 난 뒤의 후회와 다시 수십억 수백억을 들여 복원한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이야기하면서도 다시 되풀이 되는 안타까움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이미 타 버린 것은 다시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보여주는 뼈아픈 교훈이다. 타 버린 것을 보면서도 아직 타지 않았으니 두고 보자는 식의 어리석음을 다시는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나니 복원된 문화재들은 소방대책이 마련되어 있는지 정말 궁금해진다. 쌍봉사에는 초를 켜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낙산사 주변의 나무들이 자라면 부처님 도량을 외호하는 역할을 할지 전처럼 위협하는 존재가 될지 생각해보게 된다.
타 버린 것이 잊혀지기 전에 탈 수 있는 것에 대한 대비책이 충분히 나오길 바란다. 우리 절이 문화재라는 사실보다는 불법을 지켜나가는 도량이라는 점에서 우리 스스로 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제 타 버린 것을 보면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전철을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다.
타 버린 것이여.
타 버린 것이여
타 버린 뒤의 흔적을 감추고 곧 잊어버리는 어리석은 우리들에게
또 다시 탈 수 있음을 잊지 않도록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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