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말 없는 말

파랑새 찾기

무설자 2008. 3. 2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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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상에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늘 지닐 수 있는 그것이 추구하고자하는 근본 경지라는 것이지요. 파랑새를 찾아 헤매다 집에 오니 뜰에 서있는 나무 위에서 그 새가 지저귀고 있더라는 이야기의 그 파랑새 찾기입니다.

 

이 시대는 되도록 많은 돈을 버는 것이 누구나 바라는 가장 큰 일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이는 남이 부러워 할 정도로 돈을 벌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못해 그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나 노심초사하고 삽니다. 그런데 왜 돈을 그렇게 많이 벌고 싶은지 물을라치면 그건 그 뒤에 생각해봐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선 돈만 쳐다보고 달려갑니다. 그러다보니 일의 가치나 직업에 대한 정체성도 사라지고 공부를 하는 것도 오로지 돈을 많이 버는 영역으로 쏠립니다. 정말 해보고 싶은 일이나 세상에 도움을 주는 가치가 있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기란 이 시대에는 참 어렵습니다. 

 

저는 집을 설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건축사라는 직업이지요. 직업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안타깝게 느껴지는 일이 참 많습니다. 우리가 저녁이 되면 돌아가는 사람이 사는 둥지인 주택만 해도 그렇습니다. 주택이라는 용도의 절반이상이 이제는 아파트가 되어 버렸습니다. 내가 살고 싶은 집에 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집에다가 내 삶을 맞추는 것이지요.

 

아파트는 사람이 살기에 좋은 집이 아니라 부동산적인 가치에 중심을 두고 만든 집입니다. 그러다보니 집값이 떨어지기 전에 다른 아파트로 철새처럼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삽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우리 동네라는 개념이 희박합니다. 무슨 아파트 몇 동 몇 호는 기억을 할지 모르지만 내가 사는 곳에 대한 추억은 아마 돌아볼 것이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머지않아 우리나라 어느 곳이던 잠을 자는 곳은 다 아파트가 될 것입니다. 아주 시골이 아닌 이상에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집에 대한 생각을 그렇게 가져간다면 다른 것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이유도 다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만약 원하는 돈을 모으고 나면 그 다음에는 그 돈으로 행복을 만들 수 있을까요? 그렇게 묻는다면 지금 돈이 없어서 힘들지 않으냐고 되물어 올 수 있습니다. 힘들다는 것과 불행하다는 것은 다르지요. 그러면 부유하다는 것과 행복하다는 것이 또 다릅니다. 행복과 불행을 돈이 많은 것과 모자라는 것으로 비교하는 분이 있다면 그가 과연 행복이라는 것의 의미를 알고 있을까요?

 

돈의 많고 적음을 바로 행복의 척도로 알고 사는 게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아파트 평수나 승용차의 크기가 바로 그 기준으로 얘기되고 연봉으로 사람의 우열을 평가하는 생각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부자가 천국을 간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기보다 어렵다는 성경말씀이 가난한 자는 하늘나라로 가기 쉽다는 말로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재물에 팔려 사는 이는 선하게 살기 어렵다는 말은 아닐까요?

 

지금 돈이 삶의 목적이 아니라 다른 것을 삶의 의미로 살아가는 이는 어떤 사람일까요? 이 시대의 아웃사이더, 이방인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돈은 삶을 살아가며 필요한 수단이며 내가 설정한 삶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그 방편이 되는 돈을 버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삶의 의미를 모르고 돈만 추구하는 이들은 파랑새를 찾아 헤매는 이와 무엇이 다를까요? 파랑새를 미리 알았다면 집을 떠나 그렇게 온 세상을 돌아서 올 필요가 없었을 텐데요. 파랑새를 먼저 알고 찾아나서는 이, 그가 바로 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집을 구하되 그 기준은 나와 우리 가족이 편안히 쉴 수 있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하는데 투자가치가 높아 집값이 빨리 오를 수 있는 데를 찾습니다. 투자에 대한 가치가 성취되면 재빨리 팔아서 또 다른 가치가 있는 아파트로 옮겨 갑니다. 부모는 돈을 벌고자하는 목적을 성취했지만 아파트를 옮겨 다니며 사는 아이들은 되돌아볼 추억을 만들지 못하는 속이 빈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일상에서 찾는 행복, 오늘 행복하지 않은 이가 내일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제는 이미 지나가버렸지만 지금 행복한 이는 어제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가 행복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상에서 만족함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상심을 잘 지켜가는 것이 바로 얻고자 하는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만 늘 마음이 불안한 사람과 비록 가진 것은 적지만 웃으며 사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어느 쪽일까요? 만약 많은 것을 가졌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과 가진 것이 적어서 불행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가진 것의 많고 적음의 차이가 아니라 가진 적에 대한 만족함의 정도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이나 불행에 대한 생각보다는 덜 가지고 더 가진 차이를 의식하고 살 것입니다. 그래서 더 가져야 한다는 목표만 있을 분 지금 가진 것에 대한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없겠지요. 만약 지금 가진 것을 바르게 살펴서 분수껏 살아가는 이가 있다면 그는 집 앞의 파랑새를 보는 분일 것입니다.

 

차를 한잔 놓고도 내 주는 이의 마음을 담아 마신다면 어떤 차라도 만족스럽겠지만 그 단지 차의 가치를 따진다면 형편없는 차가 될 수도 있겠지요. 오늘 먹어야 하는 밥상 앞에서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가족들과 맛있는 찬이 없어서 투정을 하는 가족은 어떤 차이가 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만족함이 곧 행복이요 그렇지 않다면 결코 만족한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소욕지족少欲知足이라는 옛 말씀을 생각해보는 봄날 오후입니다. 꽃이 곧 지천으로 피어나지만 사람들이 좋아라고 피지 않습니다. 그저 나무는 때가 되어 그렇게 꽃을 피우고 그 꽃이 가을이 되면 열매가 될 것입니다. (2008, 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