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사람을 이어주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천 냥 빚을 대신 갚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잘못 전해진 말은 큰 싸움을 부르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마음에 있는 생각이 말로 잘 다듬지 않고 내보내면 전혀 바라지 않는 화답으로 돌아옵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의 반은 내 자랑이고 나머지 반은 남의 흉을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녹음기를 허리에 차고 하루 내 내가 하는 말을 한번 들어보고 싶습니다. 대충 기억나는 것만 떠 올려보아도 그럴 것 같습니다. 내 자랑은 해놓고 남을 흉보면 돌아오는 것은 그 내 자랑이 거짓임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될 것입니다.
사람을 상대하며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말을 하기 싫어도 해야 하며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합니다. 말을 하다보면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없고 말을 듣다보면 상대방의 나의 말이나 행동을 오해한 이야기를 들을 수고 있습니다. 그 말에 대해 반박하는 이야기를 해도 오히려 변명으로 여기기 쉽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는 그만큼 많은 말들이 오갑니다. 그 말 중에서 잘 들어 새길 말도 있지만 안 들음만 못한 말도 있습니다. 잘 들어 새길 말보다 안 듣는 것이 나은 말이 많은 곳이라면 바람직하지 않은 모임이라 하겠습니다.
지금은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모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모여서 같이 도모하고 있는 그 달에 있었던 일을 돌아보고 다음 달의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였습니다. 그 모임을 주최하는 분이 이런 제안을 하였습니다.
“오늘은 이 자리에 참석한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평소에 느낀 그 분의 장점을 이야기 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 명씩 일어나서 ‘모씨는 이런 점이 참 보기에 좋았습니다.’, ‘모씨는 이런 말을 제게 해주어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이후 자리의 분위기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그 시간 내내 즐거움 속에서 환한 기쁨이 꽃피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상대방을 칭찬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찡그린 얼굴이 될 수 없고 남을 비방하는 말을 하는 얼굴에서 웃음이 피어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대중들의 말과 행동을 어떻게 제어했을까요? 부처님 회상에 들어오는 과정을 경전을 통해 살펴보자니 당대의 지성인들과 수행자들이 모여듭니다. 이들 모두 부처님과 어깨를 겨룰 정도의 지식과 수행의 이력을 갖춘 이들입니다.
그들이 모두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면 부처님께서 일일이 통제를 할 수 없으므로 그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수많은 말들이 오갔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신구의身口意로 짓는 열 가지의 악 중에서 망언, 양설, 기어, 악구라는 입으로 짓는 네 가지의 업을 들어 말을 조심하라고 경책했을 것입니다.
안거가 끝나는 날 대중이 모두 모여 수행 도중에 생긴 일을 서로 반성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고백하여 참회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자자自恣라고 하는 행사이지요. 대중 모두 모인 자리에서 한 사람씩 앞으로 나가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잘못을 지적해달라는 요청을 합니다. 항상 그 첫 번째는 부처님입니다.
“대중들이시여, 이제 자자를 행하노니 지난 안거 동안 내가 몸으로나 입으로나 생각으로나 무엇인가 비난받을 일을 했거나 그렇게 보이도록 미심쩍은 일을 하지는 않았는지요? 혹시 그런 일이 있다면 나를 불쌍하게 여겨 지적해 주소서. 그러면 이 자리에서 참회를 하겠습니다.”
부처님부터 자신의 잘못한 점을 대중에게 지적받기를 요청합니다. 이렇게 부처님께서 솔선수범하여 자신을 돌아보는 모습이 승가를 화합청정의 교단으로 이끌어 갈 수 있게 하였을 것입니다. 구성원의 말과 행동이 제어되지 않으면 화합은 깨어지게 됩니다.
이 화합을 깨뜨리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말일 것입니다. 말은 발이 달리지 않아도 아주 빨리 멀리 퍼져 버립니다. 누가 그랬는지 확인할 수도 없는 말은 그 모양과 성품을 바꾸어가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서 화합을 깨뜨려 버립니다.
우리 주변에 떠도는 수많은 말들의 진원지는 내가 아닌지요. 생각 없이 하는 말, 그 사람을 생각해서 한다는 말, 누구를 비방하기 위해 만든 말들이 바로 나로부터 시작한 말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십악 중에서 네 가지의 입으로 짓는 구업은 나의 공덕을 무너뜨리고 다른 이의 덕행까지도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대중 앞에서 자자를 행하지 않더라도 저녁이면 스스로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집에서부터 직장, 내가 속한 어떤 모임에서도 나로 말미암은 말로 지어내는 업이 없는지 살펴야 할 것입니다. 무심코 던진 나의 한 마디가 일파만파로 퍼져 나갑니다. 오랜 시간을 통해 애써 쌓아놓은 인간관계와 공덕의 탑을 세치 혀로 무너뜨려 버립니다.
나의 말이 화살이 되어 다른 이의 마음에 꽂히면 그 어떤 것으로도 뽑아낼 수 없다고 합니다. 부처님을 닮는 많은 수행 중에서 말을 조심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우선해야 할 것입니다. 좋은 말을 할 자신이 없다면 말을 아껴서 할 것입니다. 듣는 이가 좋아하는 말이 골라할 수 있다면 그는 이미 대중에게 사랑받는 사람입니다.
오늘 만난 오랜 지기가 제게 건네준 따뜻한 말씀이 하루 종일 저를 행복하게 하였습니다.
'사는 이야기 > 말 없는 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8년 1월 1일 새벽 6시 (0) | 2008.01.01 |
---|---|
싸우는 삶, 받아들이는 삶 (0) | 2007.07.18 |
수선화, 존재 그 자체로 피어나라 (0) | 2007.03.31 |
은근하게 차를 마시니 (0) | 2006.11.20 |
秋情雜談 (0) | 2006.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