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말 없는 말

2008년 1월 1일 새벽 6시

무설자 2008. 1. 1. 11:08
728x90

새벽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승학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2008년이 열리는 첫날, 첫해가 뜨는지도 모르고 잠을 자기보다는 그 해를 맞이하기 위해 아내와 나선 길입니다. 산자락에 붙은 아파트를 지나 숲으로 들어서니 온통 캄캄합니다.

숲 사이로 길이 으슴푸레 보입니다. 달은 그믐달입니다. 그 달빛이 제법 길을 열어줍니다. 앞을 내다보며 걸으니 그 달빛에 돌부리와 평길이 구분되어 보일 정도입니다. 아주 캄캄할 것 같더니 길에 접어들어 걸어가다 보니 저 앞까지도 열리듯 보입니다.

아무리 캄캄해도 눈을 들어 내다보면 넘어지지 않고 갈 수 있도록 길이 열리는 것 같습니다. 집을 나설 때는 어두운 길을 걱정했는데 그 길을 비치는 그믐달 빛이 오히려 운치를 더해 줍니다. 새해 첫날의 여명입니다. 이 갓밝음이 점점 환해지면서 아침이 될 것입니다.


산자락을 접어들면서 집을 나설 때의 그 바람은 잦아들었습니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면서 옷섶을 파고드는 바람에 다시 집으로 들어갈 뻔 했습니다. 올해는 첫해를 꼭 보자며 잠을 청해 놓고 첫날 아침 이불을 못 빠져 나온 지 몇 해입니다. 올해는 그 유혹은 뿌리치고 나왔는데 매섭게 몰아치는 이 칼바람이 발걸음을 붙듭니다.

아내가 한마디만 거들었어도 다시 발길을 돌릴 뻔 했습니다. 다행히 아내가 씩씩하게 길 앞을 잡아주니 벌써 산중턱에 이르는 길입니다. 산자락을 굽이도는 길은 바람을 피해 길을 낸 모양입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만났던 바람은 간데없이 이곳은 교교하게 달빛만 비치는 운치를 즐깁니다.

명당은 바람이 자는 곳입니다. 장풍득수臧風得水를 줄여 풍수라고 하지요. 바람이 들지 않는 곳이 명당의 조건입니다. 그 수많은 태풍 앞에서도 기둥 두개만으로 건재 하는 산사의 일주문을 보시면 명당에 위치한 증거로 알 수 있지요.


이제 해가 뜰 모양입니다. 건너편 산등성이를 따라 해가 뜰 조짐으로 밝은 빛이 솟아오릅니다. 그 빛이 밝아질수록 그 아래 산은 더 어두워집니다. 이쪽 건너편은 벌써 길을 따라 작은 자갈까지도 보이는데 해가 뜨는 동쪽 산은 어둠이 더 짙어집니다.

해가 떠오르기 위해서는 그 전조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전조도 없이 해가 불쑥 솟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도 좋은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반드시 전조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 전조를 잘 살핀다면 좋은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을 미리 대비할 수 있지요.

해 가까이에 있는 산에서는 아직 해가 뜰 것을 모르는데 오히려 건너편에는 벌써 해가 뜰 밝음을 먼저 받고 있습니다. 진정한 가치는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만 아는 이치와 같은지 모르겠습니다. 해가 막 떠오르기 위해서 붉은 기운을 산등성이에 뿌리듯 요동을 칩니다.


해는 벌써 바다를 차고 오른 모양입니다. 산 건너편에 해가 떠올라 햇살을 비추고 있습니다. 해가 떠오르는 동쪽 바다가 보이는 산꼭대기에 이르기도 전에 벌써 해는 솟아버렸습니다. 떠 오른 해를 맞이합니다. 맑은 산의 기운을 담아 맞는 햇살은 참 청량합니다.

바다에서 솟는 해는 보지 못했지만 누워서 첫날 아침을 맞지 않는 것만 해도 참 좋습니다. 산자락을 감아 도는 여명의 길을 따라 아내와 걸으며 맞는 첫 아침의 맑은 햇살로도 새해는 행복한 시간이 예견됩니다. 행복의 전조이지요.

지난 3년간 참 어려운 날들이었습니다. 어둠이 깊어지면 아침에 다가가지요. 오늘 새벽에 맞은 첫 햇살은 깊은 어둠의 끝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하늘 높이 떠오른 해는 어둠을 지나 이제부터 밝아지는 올해를 알리는 것 같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있는 이는 항상 밝고 부지런합니다. 절망을 이고 사는 이는 전조를 의식하지 못하고 어둠 속에 숨습니다. 희망의 전조, 믿고 기다리며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다가올 행복을 그리면서 그 결실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여명 뒤에 떠오르는 해처럼 행복이 다가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