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세상 이야기

천사들의 목간

무설자 2005. 11. 19.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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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에 새 목욕탕이 생겼습니다. 경사지에 짓는 아파트 지하층의 도로변 쪽 공간을 이용하여 만든 것 같습니다. 목욕탕 이름이 눈에 쏙 들어옵니다. ‘천사들의 목간’입니다.

그 목욕탕 간판이 도로에 세워지고 난 뒤 출근 때마다 저곳에 가봐야지 하는 마음을 냅니다. 그렇게 먹었던 마음이 막상 퇴근길에는 간판이 보이지 않으니까 지나쳐 버립니다. ‘천사들의 목간’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간판의 예쁜 글씨체와 하트가 날아다니는 디자인이 천사들의 목간이라는 상호를 충분히 커버해 주고 있습니다. ‘천사목욕탕’도 아니고 ‘천사탕’도 아닌 ‘천사들의 목간’이라는 목욕탕의 이름은 제게는 참 신선하고 정겹습니다. 목간이라면 목욕간沐浴間의 줄임말로 목욕하는 공간이라는 것이지요. 그래도 목욕탕이라는 어감보다는 훨씬 좋은 것 같습니다.

바깥은 아파트 지하부분이 드러난 쪽에 출입구가 있는 꼴이니까 특별히 모양을 낼 수는 없도록 되어 있지만 안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천사들의 목간이라는 이름과 그 이름에 걸 맞는 간판이 주는 궁금증은 날로 더해 갔습니다.

그런데도 출근길의 마음과 달리 퇴근 시간에는 그 곳을 스쳐지나가게 됩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더해지는 기억력의 한계 때문이겠지요. 그래도 ‘천사들의 목간’은 그곳에 있습니다. 작은 트럭에 싣고 다니는 가게같이 그날 놓쳐 버리면 언제 볼지 모르는 상황은 아니니까요.

드디어 그 목간을 방문하는 날이 왔습니다. 그 안에 천사들이 있다거나 천사 같은 사람들만 들어가는 집이 아니니까 목간에 있는 사람은 나 같은 보통 사람이겠지만 분위기는 다를 것이라 기대가 한껏 부풀어 있었습니다.

일요일이라 우리 동네 목욕탕을 가야했는데 볼일을 보고 오면서 들러야지 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침 비가 오는 날이라 분위기도 괜찮았지요. 비 오는 바깥 분위기가 배경처리가 된 셈입니다.

드디어 입장입니다. 그런데...... 그냥 우리 동네 목욕탕이랑 다를 게 없는 집이라니요. 최소한 ‘탕’이라도 원형으로 되었으면 좋았을 걸. 아니면 타일 색깔이라도 분홍색이거나 벽에 천사라도 그려져 있었으면 최소한의 마음풀이가 되었을 텐데 그냥 목욕탕입니다.

이름과 간판만 ‘천사들의 목간’입니다. 왠지 속은 기분이 듭니다. 정말 ‘천사들의 목간’을 이름만 도용한 집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름값을 못하는 목욕탕입니다. 잘 지은 이름처럼 그에 걸 맞는 분위기를 가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00빌라, 00맨션같이 잘못 붙인 집이름을 보며 실소를 금치 못하는 것처럼 이름만큼 예쁜 집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00파크라고 호텔에도, 연립주택에도 이름을 붙였지만 정작 파크는 없는 우리의 현실은 이름이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