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삶, 상담과 답변

채권자와 채무자

무설자 2005. 9. 5.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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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처음에는 내가 선택한 죄라고 생각 했습니다

한 건 한 건 드러날 때마다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그러다 그만 두겠거니 하고.

그러고도 또 계속되는 남편의 바람기, 한 40 넘으면 그만 두겠거니 했습니다.

아직도 만나야할 연이 많이 남은 사람이라 인연이 많으면 풀어야 되겠지 하는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


나를 살펴보면,

나이보다 10년은 더 되어 보이는 얼굴, 멍하니 흐려진 눈빛....

그렇게 살다가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지 않아 올 초에는 봉지쌀을 사다 먹었습니다.

이런 형편이니 바람은 피지 않겠지 했습니다. 돈은 없지만 바람만이라도 안 피면 좀 살겠다 싶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칠 줄 몰랐습니다.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 제가 죽을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아이 둘을 보면서 이러다간 저 아이들 20살도 못 되서 내가 먼저 죽겠다하는 생각이 들더이다.

이제 초등학교 다니는 애들을 보면서 살아야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데요.


그런데 도저히 용서가 안 되어서 간통고소 안 하는 대신 합의 이혼을 했습니다. 아이들 양육권 제가 갖는 조건으로요. 그러고도 또 한번만 더 노력해보자고 다시 살았습니다.

그래도 안 되네요. 기본으로 나오는 말이 거짓말인사람, 뻔히 들키면서 들키는 그날까지 거짓으로 사는 사람.


내 보냈습니다. 나간 지 이제 한 열흘 되어갑니다.

밥이 안 넘어 가네요. 밥은 먹고 사는지... 그래도 걱정되는 이 마음은 도대체 얼마나 더 당해야 하나요?


이사 간 집도 안 가르쳐줄려는 거 억지로 물어서 가 봤습니다. 냉장고에 애들 둘 데리고 있는 제집보다 먹을 거 더 많네요.

이젠 걱정 안 해도 될 거 같습니다. 그래도 밥이 안 넘어 갑니다.

애 아빠 마음은 애들이랑 저랑 같이도 살고 싶고 자유롭게 바람도 피고 싶고 그런 거 같습니다.


이렇게까지 쫄딱 망하고 나이 40중반이나 됐는데요. 참으로 기가 찹니다. 전 이제는 더 이상은 그 꼴 보고는 못 살겠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다시 참고살수 있을까 되묻습니다.

답은 인제는 더는 못 하겠다 입니다.


마음은 많이 힘듭니다. 그래도 남편 바람 피는 꼴 보고 살 때 보다는 덜 힘듭니다.

심심하면 줄줄 울면서 전화 옵니다. 그러면서도 바람은 피고 싶고 한편으로 자기도 이 나이에 이게 무슨 꼴인가 하는 생각도 드는 모양입니다만 눈앞에 여자만 있으면 그런 생각은 싹 달아나는 가 봅니다.


낮에 하루 종일 여자랑 바람피우고 저녁에 집에 혼자 있는 그 시간이 싫어서 울며 전화하는 사람. 도대체 무슨 인연으로 버리고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 건지요.

도대체 무슨 연이 아직도 남아서 내보내고도 이때까지 밥 한술을 제대로 못 넘기는 건지...

그래도 현장을 보는 거보다는 덜 힘드네요.

저는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는 것일까요?


무설자의 답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라 여기며 몇 자 적어 보겠습니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분명히 있습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 있다는 얘기처럼 배필이 되었다면 그건 엄청난 인연의 결과인 것은 말 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부모자식,형제, 부부는 악연이던 선연이던 주고 받는 관계입니다.
특히 부모자식 관계나 부부의 관계는 채권자 채무자의 관계입니다.

부모는 간절하게 자식에게 주고자 하는데 자식은 그것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속 만 썩이는 경우, 부모는 자식을 돌보지 않는데 자식은 그와 관계없이 효도를 다하는 경우가 주변에 있습니다.
부부의 경우에는 이와같은 관계가 대부분입니다.
에전에 우리 어른들의 경우를 보면 평생을 남편, 시부모, 시동생, 자식을 돌보면서 한평생을 지낸 여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법구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악인도 복을 받는다. 악의 열매가 익기 전까지는,
선인도 화를 만나다. 선의 열매가 익기 전까지는,

악인은 벌을 받는다. 악의 열매가 익고 나면은,
선인은 복을 받는다. 선의 열매가 익고 나면은.


님께서는 전생에 남편에게 지금과 같은 잘못을 저질렀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생에서는 남편이 그 갚음을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 채무관계를 열심히 청산하셔야 합니다. 내가 채무자인데 채권자가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 갈등은 그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옛 이야기로 글의 끝을 맺을까 합니다.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낮에는 그렇게 금슬이 좋을 수 없는데 남편이 술 만 먹고 들어오면 아내를 두들겨 패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술이 깨면 그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는 것입니다.
아내는 괴로움을 겪으며 사는데 하루는 스님이 한 분 탁발을 나와서 그걸 짚어 주시는 것입니다.
'방 한 쪽에 수수대를 묶어서 군데군데 놓아 두시오'
아내는 스님이 시키는대로 수수대를 군데군데 놓아 두었습니다.
그날도 남편은 술을 먹고 들어와서는 눈에 보이는 수수대로 아내를 때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수수대는 아프지 않거던요. 실컷 맞았지만 예전보다는 아픔이 덜하지요.
그렇게 몇 번을 하더니만 거짓말처럼 그 병이 없어졌습니다.
며칠 후 그 스님이 오셔서 아내는 그 연유를 물었습니다.
'전생에 당신은 소를 부리는 사람이었고 남편은 소 였지요. 그래서 전생에 이랴 이랴 하며 소를 끌며 때리던 그 매를 이 생에서 앙갚음을 하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수수대 묶음 하나에 수십대를 맞는 결과가 되었으니 평생 맞을 매를 다 맞은 것이요' 하더랍니다.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찾을 수 밖에 없었지만 원망하는 마음만은 부처님 앞에서 삭이시고 아이들 잘 거두시면서 생활의 방편을 잘 만들어 나가신다면 언젠가는 좋은 부부의 연을 회향해 나가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남자의 입장에서 여자의 큰 아픔을 모르고 드리는 말씀인줄 모르겠으나 비록 이혼을 했으나 원망을 하면서 살아간다면 근본적인 대책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육바라밀의 인욕과 정진의 가르침으로 볼법의 도리에 맞는 삶을 살아가시길 축원 드리옵니다.
 
무설자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