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나는 부처다

색불이공 공불이색

무설자 2005. 8. 30.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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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빚은 토우를 생각해 봅시다.
흙으로 형상을 만들었으나 부숴지면 흙으로 돌아가버립니다.
또 그 흙으로 말 모양을 만들면 말이라 부르고 소를 만들면 소라 부릅니다.
그게 부서지면 또 흙이 되지요.

존재는 그렇게 보여지고 불리워지지만 인연이 다하면 허물어집니다.
중생은 보이는 형상에 집착해서 그기에 얽매어 삽니다.
불보살은 그 형상에 얽매이지 않고 보였다가 인연이 다하면 허물어질 수 있는 그 무엇-이걸 공이라고 하지요-을 보지요.

겨울나무가 봄이 되면 싹이 트고 여름에는 짙푸른 잎으로 보이다 가을이 되면 단풍으로 물들어 겨울이면 다시 나목이 되는 그 흐름을 이라 하는거지요.
겨울나무에서 여름의 성성한 잎을 볼 수 있는 도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닐런지요.

인과란 원인이 있으면 그만큼의 결과가 있다는 것이니 그걸 두고 가타부타 이야기를 할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결과만을 볼 뿐 그 원인을 알려고 하지않으니 때가 되면 스러지는 것에 우울해하는 것이 중생심이라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꽃에는 관심을 가지다가 시들면 외면하는 것이 우리네 중생의 마음이지요.

봄에는 꽃을 보고, 여름에는 잎을 보고,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나목을 보면서도 나무가 가지는 본성을 느낄 수 있는 지혜를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불이공 공불이색의 도리라고 합니다.
색은 계절 별로 보이는 모습, 공은 그렇게 흐르는 나무와 시간과의 관계에 의한 전체적인 맥락이지요.

이 도리를 알면 여름에도 겨울을 느끼고, 겨울에도 여름을 알 수 있지요.
연기법은 부처님이 깨달으신 가장 큰 도리이니 지금 내가 있는 그 이전과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을 통한 내일을 볼 수 있으면 중생에서 부처로 나아가는 것 아닐까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면 눈 앞의 결과에만 집착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현재의 결과는 과거의 원인에 의한 것이므로 승복하고 내일의 좋은 결과를 위해 지금 올바른 원인을 지을 수 있음으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살 수 있으므로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아란 색안경을 낀 내가 안경을 벗어버림으로서 제대로 볼 수 있으니 의문을 벗어버렸으므로 좋은 것, 나쁜 것이라는 차별관념을 버릴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제대로 볼 수 있으면 지옥이니 극락이니 하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겠죠?
극락이라 생각했는 데 조금 더 나빠졌다고 지옥이라 하는 그런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차를 처음 최고급 승용차를 탔던 사람이 버스는 멀미가 나서 못타겠다고 하는 그런 상태가 중생심이고 버스는 으례 그런 것이지하고 인정하는 사람은 불보살에 다가간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최고급 승용차는 극락이고 버스는 지옥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차별을 하면서 극락 지옥 타령을 하지요.

색불이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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